프랑스의 한 평론가가 묻고 답했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와 <달콤한 인생>의 공통점을 아는가? 그건 바로 미술감독 류성희다. 비상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목에 힘을 주고 말했지만 <씨네21> 역시 이미 궁금증을 갖고 있던 터라 오히려 외국의 평자에게도 이 점이 보인다는 것이 어떤 확인 차원의 경험이 되었다. 류성희 미술감독 역시 <씨네 21>에 실린 그 인터뷰(호수와 제목)를 보았다며 말한다. “영광이죠.” 그러나 다시 되묻는다. “근데 묶인다는 거 말고 뭘로 묶이는지 말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게 뭘까요? 뭔가요?” 그 질문이 만남의 이유가 됐고, 그래서 사실 류성희의 인간극장보다는 미술감독 류성희를 하나의 화두로 놓고 보았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자, “오히려 그런 거라면 다행”이라고 시원하게 응대한다. 류성희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과연 류성희는 누구이며, 왜 류성희인가? 미술감독 류성희에 대한 소개와 영화 속에 기입된 그녀의 인장, 류성희와 몇몇 감독들의 미학적 합의점을 찾아보고 혹은 그 감독들의 미학적 무의식의 공유지점으로서 류성희의 좌표를 본다.
도예가, 영화에 홀려버리다
류성희가 미국에 있는 영화학교 AFI로 유학을 간 것은 필연이었다. 류성희는 도예를 전공하여 대학원을 나오고 전시회를 열고 나서야 그 길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확신을 굳혔다. “정지되어 있는 조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도예가로서의 미학적 책무였지만, 오히려 그녀의 욕망이 쳐다보고 있는 것은 “스토리텔링이고, 움직이는 이미지”였다. 그래서 도예를 하면서도 “작품 자체의 독자성이 아니라 어떤 공간과 결부되고 스토리텔링이 생기는 작품들을 많이 했다”. 완벽하게 취해지지 않는 스토리텔링과 운동성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예 작품을 시리즈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끝내 영화처럼 움직이지는 못했다. “결국 내가 생각하는 걸 할 수 있는 건 영화밖에 없구나” 깨닫고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류성희는 공부를 마친 뒤에도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인디영화 작업을 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웠고, 게다가 한국 영화계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 중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본 몇편의 아시아영화가 그녀의 욕망을 “앓게” 만들었고, 결정적으로 귀국할 마음을 굳힌 건 송일곤 감독의 단편 <간과 감자>와 <소풍>을 보고나서였다. 영화도 영화지만, “그 사람도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인데 한국에 가서 저런 영화들을 만드는 걸 보면, 이제 어떤 식으로든 나도 돌아갈 때가 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돌아온 류성희는 지인들의 소개를 거쳐 무작정 송일곤 감독을 찾아갔다. 그와 만나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을 계기로 첫 작품 <꽃섬>을 하게 됐다.
사실 류성희의 첫 작품은 박광수 감독의 <빤스 벗고 덤벼라>다. “그러나 돌아온 지 일주일쯤 돼서 한 작품이고, 기본적인 설정없이 워크숍처럼 한 거라서 내 거라는 생각이 잘 안 든다”고 한다. 그래서 “첫 작품은 그냥 <꽃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 말에 따르면 <꽃섬>에서의 미술은 자신의 “미학적 자의식이 과잉되어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과의 다음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는 “상업영화인 만큼 예술적인 자의식을 많이 자제하고 정해진 형식 안에서만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렇게 상업영화 전초전격인 <피도 눈물도 없이>가 끝나고는 류승완 감독의 소개로 <살인의 추억>을 하게 됐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봉준호 감독은 “80년대의 공기를 잡아내고 싶다”고 주문했고 류성희는 충분히 그걸 만족시켰다. 이후 류승완 감독이 봉준호 감독에게 소개했듯, 다시 박찬욱 감독과 연이 닿아 하게 된 것이 <올드보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에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에서 자신의 역할은 좀 다르다. <살인의 추억>은 관객으로서 한국영화를 볼 때 느꼈던 아쉬움, 즉 “때깔 안 좋고 톤이 불안정한 기술적 저열함을 촬영 파트에만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미술적으로 상쇄하겠다는 야심 때문에 시작한 영화”였다. 반면 <올드보이>는 “어떤 미술감독이 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이는 것이 재미”였다. 여하간 <올드보이>에서의 작업은 단편 옴니버스 <몬스터> 중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컷>의 미술을 맡는 데까지 이어졌다. 만약 <달콤한 인생>과 <괴물>이 연이어 있지 않았다면, <친절한 금자씨>도 함께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HD 프로젝트’에는 이미 류성희의 자리가 내정되어 있다. 한편으로 가장 최근에 완성한 <달콤한 인생>은 전적으로 김지운 감독을 믿고 한 영화다. “감독의 질문을 지지하고 싶었고, 그가 던져주는 중심적인 것을 죽 따라가는 식으로”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의 서울이기보다는 90년대의 서울 강북 같은” 혹은 “남루한 환경을 위해 오히려 엄청난 비주얼 이펙트를 쓰는” <괴물>에 참여 중이다. 봉준호 감독과의 두 번째 작업인 것이다. 이제 류성희는 같은 감독들과 두 번째 일하거나, 세 번째 일할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손길은 매직이다
류성희는 말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 영화의 미술을 할 생각은 없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시각에 다른 사람의 자의식과 경험이 들어갔을 때 그 영화는 왠지 성립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참여한 작품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의 자의식이 포함된다.” 류성희의 이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지금까지 작업한 영화들에 미술감독으로서 류성희의 손길이 어떻게 닿아 있는지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그 예들이 있다.
<꽃섬> 때는 “주인공이 아기를 낳는 화장실에 벽지를 붙여서 톤을 낮추고 낡아 보이게 만들었다. 날개나 아기를 낳는 숭고한 행위를 뺀 주변은 모두 남루하고 폐쇄적인 공간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의 투견장은 “많은 액션이 생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류승완 감독의 주문을 따라 주인공들의 육체적 체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살인의 추억>의 취조실은 이미 여러 차례 알려진 것처럼 “깊은 우물의 느낌을 내달라”는 봉준호 감독의 주문을 미술적으로 재현해낸 사례다. 특히 경찰서의 경우는 이 영화 속에서 류성희 미술감독이 “끝까지 우긴 몇 안 되는 부분”이다. 세트를 싫어하는 봉준호 감독은 되도록 실제 경찰서를 섭외하도록 종용했다. 하지만 “전국에 있는 경찰서를 다 돌아다녀봐도 후지고 재미없는 공간만 있었다. 그 밋밋한 관공서의 공간에서 원하는 액션과 동선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봉 감독은 영화 시작 전까지 세트를 한번 만들어보라고 말했지만, 사실 연출부들에게는 여전히 헌팅을 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트로 가게 된 경우다. 하지만, 세트의 질을 떠나서 그 부분은 지금도 잘한 것 같다”고 류성희는 말한다.
혹은 오대수의 감금방에서 미도의 옷으로, 그리고 우진의 펜트하우스로 이어지는 <올드보이>의 유사 반복적 문양들은 시나리오상에서 펜트하우스를 묘사하던 “미니멀한 공간에서 많이 봐왔던 패턴이 있다”는 문장을 최대한 시각적으로 재현해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오대수는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우진이 모든 걸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디자인의 연속이었다. 혹은 우진의 펜트하우스 이미지를 단번에 결정지었던 ‘수로’는 전적으로 류성희의 제안이었다. 그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한 박찬욱 감독은 그 공간에 맞게 콘티를 고쳐서 다시 그려넣기도 했다. 오대수의 감금방에 걸려 있던 예수상의 그림도 원래는 “웃으면서 조롱하고 있는 피에로 그림”이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따라 광대 그림을 리서치하던 류성희는 “외국에서 많이 본 듯한 것이 싫었고, 훨씬 덜 직접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앵소르 그림을 박찬욱 감독에게 제안했고, 그것이 채택된 것이다. <올드보이>의 펜트하우스에 맞먹는 <달콤한 인생>의 스카이라운지 역시 류성희의 손길이 닿아 있다. 두 적수가 만나는 순간이 서부극처럼 운명적인 만남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김지운 감독의 말을 따라, “패션쇼할 때 모델들이 걸어다니는 단상 사진”을 참조로 했다. 또한 그 공간의 전체 붉은색 톤의 과감한 사용은 류성희의 적극적인 제안이었다. 김지운 감독도 제작 중 류성희의 제안을 적극 수용한 것 중 첫 번째로 스카이라운지에서의 이 붉은 색조의 쓰임을 꼽는다. 적어도 류성희는 지금까지 자신의 역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감독과는 일하지 않았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