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나의 결혼원정기> 촬영장을 찾아 떠난 우즈베키스탄 원정기
2005-07-20
글 : 문석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시윰까! 결혼원정대의 우여곡절 모험담

어둠과 함께 찾아온 시원한 바람에 반가워하고 있을 때, “티쉬나!”라는 낯선 외침이 들린다. 일순 웅성거림이 잦아드는 걸 보면 러시아말로 ‘조용하라’는 뜻인가보다. 쉬잇. <나의 결혼원정기>의 27회차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7월2일 밤의 이곳은 한국에서 비행기로 7시간 거리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시의 아불 카심이라는 사원 안마당. 꽃과 음식과 술을 그득하게 차려놓고 떠들썩한 결혼식 장면을 막 찍을 참이다. 감독이 “슛!”을 외치자 이내 “시윰까!”라는 러시아말이 뒤따른다. ‘찍는다’는 뜻이란다. “하나”-“아진”(1), “둘”-“드바”(2), “액션!”-“나찰리!”(시작)라는 말에 하객들은 일제히 “고리까”(러시아어로 ‘맵다’는 뜻이지만 우즈벡에서는 ‘키스하라’는 의미도 갖는다. 키스가 그만큼 짜릿하단 얘기일까)를 연호하고 가운데 테이블에 앉은 신랑과 신부가 인사를 한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현지 엑스트라 70여명 사이로는 정재영, 수애, 유준상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이 이 먼 곳까지 날아온 사연에 대한 힌트는 <나의 결혼원정기>라는 영화 제목 안에 들어 있다. 정재영이 연기하는 만택과 유준상이 맡은 희철은 경북 영천에 사는 서른여덟 동갑내기 노총각으로, 신부를 찾기 위해 이곳 우즈베키스탄까지 ‘원정’왔다. 수애는 이들을 데려온 결혼정보회사 소속의 통역관 라라 역을 맡았다. 이날 촬영분량은 만택과 희철보다 앞서 원정에 성공한 한국 농촌 총각의 결혼식 장면. 그저 기쁘기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만택은 결혼을 성사시키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마음에 켕기고, 희철은 이곳에서까지 바람둥이 기질을 발휘하다 뒤탈이 난 상태다. 게다가 만택의 마음은 맞선 상대가 아니라 서서히 통역관 라라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어지는 촬영에서 정재영은 과음을 하고 ‘깽판’을 치다가 화려한 카펫 위에 토사물을 쏟게 될 것이다.

더워서 기절해보셨나요?

<나의 결혼원정기> 제작진의 우즈베키스탄 ‘원정기’는 한달 전쯤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다른 자연환경 안에서 다른 공기와 물을 마시며 지낸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이번 경우는 더욱 남달라 보인다. 대륙성 기후인 이곳의 여름 평균기온은 섭씨 40도를 넘어간다(우즈벡은 기온이 42도를 넘어가면 일을 안 하도록 법제화돼 있어 나라에서 재는 ‘공식기온’은 항상 38도 선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인 6월 말에는 50도를 훌쩍 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날 낮 눈을 빼놓을 것 같은 햇빛과 온몸을 휘감는 열기를 경험한 터라 쉽게 공감이 간다. 습도가 매우 낮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지만 외지인이 적응하긴 쉽지 않을 터. 특히 원래 땀이 많은데다 하복부에 10여 킬로그램을 찌운 정재영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웰컴 투 동막골> 때는 추워서 고생했는데 이번엔 너무 더워서 고생이다. 아예 만택이란 캐릭터를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 것으로 설정을 바꿨을 정도다. 지난주 쿠일륙시장에서 달리는 장면을 찍을 때는 50도를 넘겨 너무 힘들었다.” 유준상 또한 촬영 초반 더위 때문에 잠시 실신하기도 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영화 관련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우즈벡에서 촬영을 했던 일본 영화팀이나 미국과 연락을 취해 사전준비를 했지만, 만에 하나 있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모든 제작진과 장비를 옮겨 테스트 촬영을 했다. 그 결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장비라곤 돌리카(수평이동 촬영을 위한 장비) 정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명을 위한 필수요소인 발전차도 서울에서 제작해 옮겨야 했다. 현지 음식도 배우와 스탭의 입에 맞지 않아 한국에서 ‘밥차’ 조리사를 공수해야 했고, 시나리오 심의에서 허가가 나기까지 4개월씩이나 걸린 것도 힘든 점. 그리고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 어려움 아닌 어려움이 한 가지 더 있다면 이곳 여성들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허리와 다리의 비율이나 신체의 굴곡이 남성들의 판타지 속 그녀들과 비슷한 우즈벡의 젊은 여성들에게 혈기방장한 한국의 스탭들의 시선이 꽂히는 건 정말 공감되는 일이다. 정재영도 “제부시카(아가씨)들이 너무 예뻐서 집중이 안 된다”고 말하며, 유준상 또한 “솔직히 다들 마음이 흔들리실 거예요”라고 이야기할 정도니까.

왜 하필 우즈벡이냐고요?

이런 어려운 조건에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황병국 감독이 이 영화를 떠올린 것은 2001년 한 친구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그 친구는 KBS <인간극장>의 ‘노총각 우즈벡 가다’ 편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며 영화화하겠다고 했다. 그걸 보니까 내가 정말 하고픈 이야기더라. 한달쯤 뒤에 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아이템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술 한잔 사주고 아이템을 받았다.” 한 농촌 노총각이 우즈벡을 찾아 맞선을 보고 결혼하는 과정을 담은 그 다큐멘터리는 아마도 그때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총각인 그에게 남다른 감흥을 줬을 것이다. 하긴 최근 통계청도 지난해 결혼한 농촌 총각 중 27.4%가 외국 신부를 맞았다고 발표했으니 공감대가 충분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도 있는데 왜 하필 우즈베키스탄이었을까. “사실 배경을 필리핀이나 옌볜으로 바꾼다고 해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 우즈벡의 빛과 이국적인 느낌이 좋았고, 언더그라운드 인생이라 할 수 있는 만택과 희철이 원정가는 곳은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우즈벡이라는 게 어울릴 것 같았다”고 황병국 감독은 설명한다.

사실, 더위 등 몇 가지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제작진들은 우즈벡 원정을 만족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우선, 한국인 스탭 50명과 함께 일하고 있는 30여명의 현지 스탭의 실력이 만만치 않단다. 최문수 PD는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듣고 갔는데, 막상 와보니 영화하는 사람들은 전문성이 있고 일도 잘한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1년에 10여편밖에 안 만들어지지만, 자연풍광과 싼 인건비 때문에 러시아 등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차 많이 찾아와 스탭들의 숙련도가 높다는 것이다. 제작사인 튜브픽쳐스의 황재우 이사는 “특히 현지 제작 파트너인 우즈벡필름의 세르게이 김 대표가 고려인인 덕에 동포애 차원에서 많은 협조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 환경 또한 한국보다 좋은 면이 있다. 아무리 넓은 길도 척척 막아주고, 경찰관들이 현장 주변을 정리해줘 진행이 수월하다는 것. 황병국 감독은 “길가에 마음에 드는 모양의 버스가 지나가기에 손으로 가리켰더니 경찰이 그 버스를 바로 세우고 사람을 다 내리게 하더니 안을 둘러볼 수 있게 해줬다”고 감탄한다. 아무리 경찰국가의 특성이 발휘된다고 해도 비자 연장처럼 까다로운 문제를 척척 급행으로 처리해주는 등 정부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 제작진의 마음은 흐뭇하다고 한다.

다시 촬영장. 네 번째 테이크 만에 감독의 입에서 “오케이”란 단어가 튀어나오자 엑스트라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그들의 가식없는 웃음이 가슴속에 무언가를 또렷하게 전한다. 우즈벡 사람들이 너무 착하고 순수하다는 유준상은 “경찰이 길을 막아도 웃으며 기다려주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해준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 실무적 도움뿐 아니라 <나의 결혼원정기> 제작진이 정말 얻은 것은 얼굴색이 다른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수박과 차를 대접하는 유목민 특유의 따스한 마음이 아닐까. 남은 한달 동안에도 카메라 안으로 이 친절한 속마음이 담겨진다면, <나의 결혼원정기>는 결혼원정대의 소동극을 넘어 모든 사람의 가슴을 떨게 해주는 영화가 될지 모른다.

최대한 칙칙하지 않게 그리련다

황병국 감독 인터뷰

-준비는 어떻게 시작했나.

=2002년 4월26일 그 친구와 우즈베키스탄에 함께 와서 3주간 머물며 이것저것을 취재했다. 그해 12월28일 초고가 나왔다. 애초엔 <태양은 없다> 때부터 모시던 김성수 감독님을 따라 나비픽쳐스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쪽에서 <중천>을 준비하는 바람에 튜브픽쳐스로 나오게 됐다.

-현지 연기자는 어떻게 찾았나.

=고려인 연기자를 찾기 위해 올해 초 타슈켄트 지역 신문에 모집 공고를 냈다. 몇 백명 정도가 지원을 했는데 3월경에 그 가운데 2∼3배수 정도를 추렸고 2달 정도 연기연습을 시켰다. 일반 엑스트라를 제외하고 연기자는 30명 정도 뽑았다.

-결혼 못한 농촌 총각 이야기라는 게 좀 칙칙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서른여덟인데 결혼을 못했다. 최대한 칙칙한 것을 빼려고 노력했다. 가족에 대한 정서도 넣고 싶었고 우정도 넣고 싶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농촌 노총각의 신세라는 게 참 아이러니한 거다.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고 해도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온몸으로 저지했던 그들이 신부는 외국에서 사오는 것이니 말이다.

-취재하면서 원정결혼의 문제점도 접했나.

=여기 와서 고려인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도 알게 됐다. 재외동포법에 그들은 한국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체성 문제도 있다. 또 국제결혼을 하면 상당수 이혼한다. 이 영화도 그런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었지만, 만택, 라라, 희철이라는 개인을 중심에 놓고 그리고 싶다.

-촬영과 관련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장비가 충분치 않아 서울에서 들여왔고, 현상소가 없어 매주 필름을 들고 한국을 왔다갔다해야 한다.

“우즈벡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우즈베키스탄 사그룹라예프 나스눌라 프로듀서 인터뷰

-경력을 설명해달라.

=1976년부터 90년까지 우즈벡필름에서 근무했었다. 90년부터 인솜(인간이라는 뜻)영화사를 차려서 3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했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일단 스탭이 너무 많다. 일하기 힘들 정도다. (웃음) 그리고 우즈벡에선 법적으로 9시간만 일할 수 있다. 또 일주일에 2번은 쉬어야 한다. 그래서 좀 문제다. 여기선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쉬는 날도 없으니까. 그래도 영화를 만든다는 목적은 같으니까 끝까지 도와줄 생각이다.

-우즈벡 스탭들의 불만은 없나.

=우즈벡 사람들도 한국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얘기하면 다 듣는다. (웃음) 언젠가는 우즈벡 사람들도 한국 사람들처럼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도 도움을 주고 있나.

=허가서, 세관, 비자문제 등을 잘 처리해주고 있다. 비자 연장은 우즈벡에서도 아주 이례적이다. 정부의 영화 담당 부처인 우즈벡 키노에서도 1주일에 한번씩 지원을 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타슈켄트 시민들의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

=타슈켄트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알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2주 동안이나 찍었으니까. 하루에 한번씩 뉴스에 나올 정도다. 오늘 낮 <U2TV>의 <영화>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다. 신문에도 자주 나온다.

-이 영화가 우즈벡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까.

=우즈벡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1년에 3∼4편 정도가 소개된다. 시장에 가면 한국 배우의 얼굴이 박힌 노트가 많이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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