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벼락같다. 김성수 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지자 분당 디자인센터 지하에 마련된 취조실 세트가 흔들리는 게 아닌가 싶다. 취조실 안으로 들이닥친 강력반 형사 장도영(권상우)이, 이제 막 설렁탕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려던 용의자 비계(박재웅)를 먼지나게 두들겨패면서 소리친다. “배광춘 어디 숨었어! 말해 새끼야!” 의자에서 끌어내린 것으로도 모자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밟고, 다시 일으켜세우고… 이것이 바로 무슨 일이든 주먹이 앞서는 장도영의 화법이다. 그러나 몰라보게 그을린 피부, 까칠한 수염, 웃자란 머리, 핏발 선 눈 안에 그간의 멀끔한 이미지를 감춘 권상우는, 계속되는 리허설과 테이크 끝에 “아, 차라리 맞는 게 낫겠다”며 중얼거린다. 취조실 밖에선 유지태가 예상외로 길어지는 동갑내기 동료배우의 촬영분량을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이제, 주먹보다는 이성과 법을 우선시하는 냉철한 검사 오진우가 되어 장도영의 폭주를 막게 될 것이다. 문득 취조실 세트 한구석에 적힌 표어가 눈에 띈다. ‘조사 중 폭력과 협박성의 수사는 행하지 않습니다.’
장도영과 오진우는 거대 폭력조직의 보스인 유강진(손병호)을 검거하기 위해 한배를 탔다. 살면서 한번도 만나지 않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손을 잡았지만, 버디영화에서 볼 수 있는 끈끈한 우정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남성미 물씬 풍기는 어두운 누아르 액션을 데뷔작으로 택한 김성수 감독(<무사>의 김성수와 다른 동명이인)에 의하면 <야수>는, “행복하고 싶었으나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복수심만 남은 남자, 악에 대한 혐오에서 에너지를 얻는 검사, 야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실천에 옮겼던 조직 보스. 끝내 화해하지 못하는 세 남자가 서로를 파괴시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캐릭터가 충돌하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영화라는 면에서, “권상우가 몸으로 하는 액션이라면, 나는 말로 하는 액션”이라는 유지태의 설명은 적절하다. 권상우는 “장도영은 절대로 화려하고 폼나게 싸우지 않는다. 왜 저렇게 만날 맞아야 되는지 싶을 정도”라고 말한다. 주영민 무술감독 역시, “처절한 액션이 컨셉”이라고 귀띔한다.
그러니 도리가 없다. 일단 오늘은, 지금 이 순간은 컷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혹은 평생 이성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오진우가 자기도 모르게 폭력을 행사하기 전까지, 장도영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는다. 만류에 나선 오진우의 부하들까지 제압할 정도로 고삐가 풀린 장도영은 “당신이 안 하니까 나라도 할 거야. 옷 벗으면 될 거 아냐!”라며 절규하고, 보다 못한 오진우는 그의 뺨을 때린다. 여기까지의 상황을 테스트한 분량을 모니터로 확인하던 유지태가 권상우에게 말한다. “이 앵글로 가면 너 진짜 맞아야겠다.” “응.”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종 앵글이 변경되면서, 오진우의 몇 안 되는 액션신은 흉내내는 수준에서 그칠 수 있게 됐다. 이를 바라보던 무술감독은 팀원에게, “지태씨가 진짜 때리는 것처럼 잘 맞춰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몸싸움, 눈싸움을 벌이는 두 남자가 뿜어내는 기가 촬영장에 가득하다. 누가 이들을 궁지에 몰려 울부짖는 야수로 만든 것일까. 아마도 이 장면의 앞뒤로, 둘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할 거대한 권력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맞설 것인가. <야수>의 정체는 오는 12월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