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금기를 조롱한 행복한 아나키스트, 루이스 브뉘엘 회고전
2005-07-25
글 : 안시환 (영화평론가)
부산 시네마테크와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이 마련한 루이스 브뉘엘 회고전

부산 시네마테크(7월26일∼8월11일)와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8월16∼23일)이 마련한 ‘루이스 브뉘엘 회고전’은 시기별 작품이 고루 섞여 있어 브뉘엘 영화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회고전에서 선보이는 16편의 작품들은 국내에 익히 알려진 후기작뿐만 아니라 국내에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브뉘엘의 첫 다큐멘터리인 <빵없는 대지>(1932)나 그의 32편의 작품 중 20편을 차지할 만큼 양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멕시코 시절의 작품들까지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안달루시아의 개>

1900년 스페인에서 출생하여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브뉘엘은 아방가르드 물결이 거세던 프랑스에서 장 엡스탱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그의 데뷔작이자 초현실주의 영화의 대표작인 <안달루시아의 개>(1928)는 자유 연상에 의한 이미지의 연쇄로 구성된 작품으로, 그 속에 등장하는 ‘칼날이 그어버리는 눈’의 이미지는 이후 브뉘엘이 구축할 영화세계에 대한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다. 체제 순응적인 규율의 파괴를 원했던 브뉘엘은 즉물화된 눈, 즉 규율과 제도, 관습에 길들여져 ‘살았으나 죽어 있는’ 관객의 눈을 도려냄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것이 50여년에 걸친 영화인생 동안 가톨릭적 금기를 조롱하고, 부르주아의 욕망을 들추어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행복한 아나키스트’가 원했던 카메라 눈(kino-eye)이었다.

순응보다는 충돌을, 리얼리티보다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중요시했던 그의 작품은 언제나 논쟁적이었다. <빵없는 대지>에서 가난을 잉태하는 적으로서 교회를 비판한 반골 기질은 한 성직자의 타락 과정을 보여주는 <나자린>(1958)과 두 성직자의 여행을 피카레스크 방식으로 구성한 <은하수>(1969)에 이르면 좀더 거칠어진다. 물론 브뉘엘이 비판하고자 한 것은 신 자체가 아니라 신의 뜻을 원래의 의도에서 이탈시켜 그 아우라를 훼손하는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낸 ‘거짓 관념’이다. 그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자유스러움은 순응을 거부한 자에게 신이 내린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는 인과율의 선형적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단절된 에피소드를 연쇄시켜 구성한 내러티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류영화가 감추려는 영화의 허구성을 오히려 돌출시키는 내러티브의 특징(그의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줌 역시 이러한 효과를 창출한다)은 트뤼포가 자신만의 이야기 법칙을 창출했다고 극찬한 <범죄에 대한 수필>(1955)뿐만 아니라 현실과 꿈, 꿈과 꿈이 끊임없이 연쇄되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1972)이나 브뉘엘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메커니즘’을 모방했다고 말하는 <자유의 환영>(1974) 등에서 그 정점을 보여준다.

<자유의 환영>

브뉘엘에게 영화는 망각의 입구에서 서성이는 기억을 저장하는 보관소이기도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혹되었던 여성의 발목과 옷 등에 대한 페티시즘을 여러 작품에서 드러낸다. 특히 히치콕의 <현기증>에 영감을 주었으며 멕시코 시절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상한 정열>(1952)은 성당 미사 도중 한 여인의 아름다운 다리에 매혹되어 현실과 환상에 대한 구분점을 상실한 남성에 대한 영화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력이 돋보인다(에로티시즘을 통해 이러한 경계를 무화시키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세브린느>(1966)가 있다). 이 작품과 함께 한적한 듯 보이는 부르주아의 삶에 내재된 살인 충동을 모티브로 한 <범죄에 대한 수필>은 후기 부르주아 연작의 멕시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욕망을 즐겨 다루었지만, 언제나 그 쌍은 ‘만족’이 아닌 ‘불만’이었다.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허망한 욕망에 매달리는 인물의 모습은 매번 실패하는 만찬에 집착하는 부르주아를 다루는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과 2인1역의 여성인 콘치타에게 끊임없이 좌절하는 마티유가 등장하는 <욕망의 모호한 대상>(1977)에서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거듭된 만찬의 실패 뒤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통해 계급의 가면 뒤에 숨겨진 위선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물론 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통찰력이 웃음 뒤편의 ‘쓰디쓴 맛’이 되어 웃음을 타고 증발될 수 있는 ‘신랄함’을 붙들어 맨다. 이들 작품 외에도 파시즘에 대한 비판 속에 ‘잔 모로’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하녀의 일기>(1963)나 부조리한 질서에 도전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정원에서의 죽음>(1956) 등의 후기작과 모두가 가해자이자 희생자인 회색의 인물들을 통해 출구없는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여준 <잊혀진 사람들>(1950)과 그의 첫 코미디영화인 <멕시코에서 버스 타기>(1952) 등의 멕시코 시절 작품은 지나치기 쉽지만 결코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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