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정대의 레퍼런스 DVD - 2005년 7월 (1)
2005-08-01
글 : 김정대

이 코너는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컨텐츠로서 그 달의 레퍼런스(화질, 음향, 부록 등에서 모범이 될만한) 타이틀을 엄선해, 주요 장면의 AV적인 우수성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을 정리하는 코너입니다. (DVDTopic)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7월의 출시작 중 최고의 화질을 자랑하는 타이틀은 바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다. 아마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 타이틀의 영상은 ‘표준 레퍼런스급 타이틀’의 화사한 영상과는 완전히 다른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둡고 답답한 느낌의 색톤이 지배적으로 사용되었고, 섀도우가 마치 ‘제 3의 캐릭터’처럼 활용되어 적지 않은 장면에서 ‘암부의 디테일이 선명치 않다’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한 마디로 DVD 유저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산뜻하고 정제된 느낌의 영상’과는 거리가 먼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계산된 컨셉’에 의한 것이며 디스크의 퀄리티와는 관계가 없다. 극장 상영 시 이 영화의 특징을 유심히 관찰하신 분들은 이 부분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근래 개봉한 모든 영화를 통틀어 절제된 조명의 활용이 가장 돋보인 작품이다. 영화 속의 명암과 섀도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 혹은 배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적 분위기의 창출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플롯의 흐름과 인물의 심리 상태의 변화, 장래에 있을 사건에 대한 복선 등이 모두 이러한 섀도우의 활용을 통해 제시된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잘 안보여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부분’과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부분’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본 디스크의 영상 퀄리티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기본 영상 컨셉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에서 평가를 하면, 본 타이틀의 퀄리티는 기실 대단한 수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입자와 색감의 표현 상태가 대단히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해상도와 선명도도 매우 뛰어나 인물의 땀구멍이나 주름에서부터 체육관의 낡은 벽의 먼지까지 표현이 쉽지 않은 모든 디테일이 거의 완벽하게 구현된다. 복싱 시합 장면 등 격렬한 액션 장면에서도 디테일이 흐트러지는 따위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떨림 현상이 간혹 보인다는 점인데, 이 역시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본 타이틀의 또 하나의 특징은 코드 1번 타이틀에 없는 DTS 트랙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유난히’ DTS 트랙을 선호하는 국내 DVD 유저들의 심리를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DTS 트랙이 DD 5.1 트랙에 비해 음량이 약간 크긴 하지만 엄격하게 퀄리티만 따진다면 두 트랙이 그다지 큰 차이를 보여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사운드트랙의 퀄리티 역시 영상 못지않게 만족스럽다. 물론 이 영화는 ‘액션 영화’나 ‘스포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음향 자체가 ‘무시무시한 공격적 성향’을 보여주도록 설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트랙이 내뿜는 에너지는 기대 이상이다. 대단히 폭넓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자랑하며 서라운드 채널의 활용과 분리도도 돋보인다.

글쓴이가 뽑은 ‘베스트 장면’은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매기(힐러리 스웽크)에게 ‘영원한 휴식’을 선사한 후 떠나는 장면이다. AV적으로 돋보이는 액션 신들 대신 이 장면을 고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영상 컨셉’이 기막히게 활용된 대표적인 신이기 때문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작곡한 미니멀한 느낌의 음악이 유난히 가슴을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2005년 7월 7일 KD 미디어 출시)

남극일기

7월의 국내 DVD 시장을 둘러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한국 영화 타이틀이 유난히 강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 달에는 <주먹이 운다>를 비롯해 <남극일기>, <달콤한 인생>까지 할리우드 대작 타이틀 못지않은 출중한 완성도를 지닌 한국 영화 타이틀이 무려 세 편이나 출시됐다. 지금 언급한 세 편은 AV 퀄리티뿐만 아니라 부가 영상의 양과 질, 패키지까지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우수한 타이틀들이다. 그리고 이 세 편중 AV 퀄리티만 따졌을 때, 국내 DVD 유저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타이틀은 바로 <남극일기>다.

임필성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DVD 마니아이기도 한데, 이번 DVD 출시를 위해 미리 부가 영상을 따로 편집하여 준비해 놓는 등 많은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시 ‘한국형 레퍼런스 타이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주먹이 운다>와 비교했을 때, <남극일기>의 화질은 보다 화사하고 선명한 느낌의 ‘표준형 레퍼런스 타이틀’의 그것에 가깝다.

정정훈 촬영 감독이 DI(Digital Intermediate) 과정을 직접 지휘했는데, 그 결과는 대단히 출중하다. 새하얀 눈밭에서부터 티끌 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인 설원의 풍경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지는데 색감에서부터 해상도, 디테일 표현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곳이 거의 없다. ‘탁 트인 배경을 지켜보는 것만 해도 후회 없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다. 얼음의 세세한 입자나 인물의 모공 등 표현하기 쉽지 않은 모든 부분들이 이상적으로 표현되며, CG 신 역시 실사 장면과의 이음매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게 재현된다.

이 영화는 근래 공개된 한국 영화를 통틀어 2.35:1 비율의 와이드스크린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 중 하나인데, DVD의 안정된 입자 표현 상태는 이러한 영화의 고유 매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돌비 디지털 EX 사운드트랙 역시 영상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서라운드 전 채널을 휘감는 눈보라 소리에서부터 각종 ‘깜짝 인공 효과음’, 그리고 가와이 겐지의 인상적인 스코어까지 모든 음향의 요소가 사실감 넘치게 재생된다. 음향 효과만 놓고 본다면 ‘올해의 한국 영화 타이틀 중 최고’라고 (성급하게)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출중한 주변 음향의 재현 상태에 비해 대사 트랙의 명료함이 떨어진다는 점(이 때문에 때로는 ‘한국어 자막’을 켜야 인물의 대사를 명확히 알아들을 수 있다)이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된다.

부록의 면모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는데, 비록 영화가 극장 개봉 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종국에는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감독 및 배우들의 확고한 믿음을 여러 부분에서 읽을 수 있다.

필자가 뽑은 ‘베스트 신’은 바로 라스트 신인 ‘도달 불능점’ 장면. 전술했던 이 영화의 세련된 영상미와 음향 효과, 효과적인 스코어 사용 등의 장점을 한꺼번에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2005년 7월 22일 엔터원 출시)

주먹이 운다

지난 해 ‘한국형 레퍼런스 타이틀’ <아라한 장풍 대작전>을 내놓아 DVD 시장에 ‘작은 파란’을 불러일으켰던 류승완 감독 - 이상우 PD 콤비가 <주먹이 운다>를 위해 재결합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먹이 운다>는 출시 전부터 DVD 애호가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주먹이 운다>는 극장 상영 때부터 영상 쪽에서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어서 DVD의 출시를 앞두고 기대만큼이나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주먹이 운다>는 다소 ‘파격적이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상 면에서 실험적인 기교가 많이 사용되었다. 전면적인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현상 시 은입자를 씻어내는 표백단계를 건너 뛰어 채도를 낮추고 거친 느낌의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법)의 활용으로 인해 채도가 매우 낮고 색상이 대단히 왜곡되었으며, 거친 입자가 눈에 띄는 장면도 유난히 많았다. 게다가 ‘픽스 촬영’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운동성이 강조되어(이 영화는 ‘액션 장면’과 ‘정적인 장면’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신이 ‘핸드 핼드’ 스타일로 촬영되었다) ‘편안한 느낌’의 영상과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그러나 정작 모습을 드러낸 DVD의 퀄리티는 이러한 우려를 단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출중했다. 영상의 기본적 컨셉 자체가 어두운 부분은 극도로 어둡게, 밝은 부분은 아예 날려버리는 등 극한의 콘트라스트를 강조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정된 DVD의 화소로 표현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였으나,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다. 높은 해상도와 탁월한 디테일 표현력은 물론이고, 입자 표현도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 못지않게 안정되어 있다. 역동적인 화면(기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서는 ‘역동적이지 않은’ 장면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에서도 입자 표현이 흐트러지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색상의 표현 상태도 대단히 안정됐다.

단, 앞서 언급했듯 영상 자체가 ‘표준 레퍼런스급 타이틀’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실험적인 색체를 띠기 때문에 감상자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제 국내 DVD 애호가들도 ‘화사하고 또렷한 영상만이 최고의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최고의 화질’이란 바로 창작자의 본래 의도를 ‘최선의 상태’로 구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먹이 운다>의 화질은 ‘한국형 레퍼런스 타이틀’의 대를 잇는 타이틀의 그것으로 추호도 부족함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영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향 트랙에서는 그다지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의 음향 설계 자체가 '과장된 음향’ 보다는 '실제에 가까운 음향’을 추구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인 신인왕전 결승전 장면에서 '서라운드를 휘감는 관중의 환호 소리’나 '과장된 펀치 교환 소리’등이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대신, 자신이 '링 위에서 혈투를 벌이는 선수’라고 상상하며 이 장면을 감상한다면 아마도 소름끼치는 '리얼함’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시간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부가영상 역시 어느 것 하나 놓칠 것이 없으니, 빼놓지 말고 감상하시길. (2005년 7월 14일 엔터원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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