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의 <박하사탕>은 망각의 더께에 쌓인채 아득히 흘러가는 우리들의 오랜 기억들에 마치 면도날처럼 상처를 내었다. 면도날의 상처는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금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곧 그 금 사이로 붉디붉은 피가 점점이 배어나온다. 낡은 기차를 타면 떠오르는 얼굴들처럼, 그 역시 시간의 기차를 태운채 우리들의 현재가 서있는 바로 이곳으로부터,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해져버린, 이름조차 아물아물한 첫사랑의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70년대 학번이면 누구나 한번쯤 탔을 그 기차… 피와 눈물에 젖은 청춘들이 우울한 날개를 접고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라는 샌드페블스의 노래에 실어보냈던 그 검고 흰 추억들을 실은 야유회행 기차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이창동,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매서운 눈
나는 이창동이 뛰어난 영화감독으로 다시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그가 소설가였을 때부터 알고 있다. 그는 흥분 잘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나와는 과가 다른 인간이다. 선이 굵은 사각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그리고 곰같이 웅숭한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날카롭고 매서운 눈을 가졌다. 그 눈은 어둠에 익숙하며 어둠 속에서 야생의 동물이 내는 빛을 낸다. 그리고 그 눈은 언제나 약간의 냉소와 허무와 방외자적 오만에 젖어 있다. 그는 말수가 드물고 좀체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너무나 냉정하고 차갑고, 결말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그에겐 따뜻한 구석이 어디 하나에도 보이지 않는다. 수준급인 그의 바둑 역시, 나같은 물 5급이 평하긴 좀 뭣하지만, 갑갑할 정도로 치밀하고 장고형이다. 그가 영화를 만든 것이다. 이미 국제적인 평을 얻은 <초록 물고기>, 그리고 이번의 <박하사탕>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2000년 1월 13일. 나는 그 <박하사탕>을 피카디리에서 보았다. 강원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고, 대관령과 미시령에는 교통이 마비되었다지만 서울에는 아침부터 찬겨울비만 진눈깨비와 섞여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추억의 열차를 타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사실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는 그의 <박하사탕>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씨네21>의 조선희 편집장이 내가 그 영화를 보면 느끼는 바가 많을 거라고 꼭 가서 보고 한마디 해달라고 해서 간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선입견도, 줄거리에 대한 정보도 없이 좌석에 앉았다. 그저 <박하사탕> 같은 사랑이야기겠거니 했다.
우리의 황무지, 이래도 인생이 아림다우나
영화의 처음은 어수선하게 시작되었다. 40대 아줌마 아저씨들의 강변 야유회. 그리고 느닷없이 나타난 양복쟁이 사내의 난장판 만들기. 평범한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언지 모를 불협화음 같은 것이 느껴지는 장면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했고, 나는 사가지고 들어간 팝콘을 열심히 씹었다. 하필이면 양복쟁이람…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양복이 어떤 양복인지 영화를 거의 다 보았을 때야 알게 되었는데 그런게 바로 이창동의 냉정한 측면이다.)
그러나 일막의 마지막, 주인공 사내가 달려오는 열차에 온몸을 열고 절규하는 순간 나는 어떤 예감에 먹고 있던 팝콘을 접어두었다. 적어도 그렇게 절규하면서 이 폭발하듯이 달려오는 열차의 검은 대가리에 온 몸을 열어야 했다면 그것에는 필시 엄청난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든, 아니면 집단이든 간에… ‘나 다시 돌아갈 거야!’ 핏발 선 눈동자의 외침과 분열증의 극단에서 드러난 몸짓을 통해 무언가 말을 시작하려는 이창동 감독의 서두에 나는 목이 말랐다. 말수 적은 그가 또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나는 그의 기차를 탔다. 그리고 그 예감은 갈수록 어떤 힘으로 몰아닥쳤다. 기차가 종착점에 도달할 때까지, 아니 기차가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표시로 불이 들어오고 벨이 울릴 때까지도 내내 나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면서 화면을 노려보았다. 막이 닫히고 다음 막이 열릴 때 나는 미친 듯이 따뜻함을 찾을려고 애를 썼다. 그가 선량한 주인공 남자의 파멸해가는 모습을 통해 지난 시절의 흔적, 그들 ‘가해자’였던 진압군과 형사였던, 한 사내의 처절한 내면을 보여주는 동안 나는 그 반대편에 서있던 우리들의 또다른 황무지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김영호가 운동권 청년을 고문하면서 수조통에 머리를 쳐박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몸을 비틀며 의자의 손잡이를 꼭 잡았다. 손바닥엔 땀이 축축하게 차올랐다. 지프를 탄 채 끌려가는 노여움에 불타는 수배자의 피묻은 눈동자와 두 형사의 극명한 대조, 그리고 들꽃 핀 강변의 아득한 기차소리…
말하자면 그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아니 이제는 아들 낳고 딸 낳고 그럭저럭 중산층의 대열에 끼어들어 ‘안전지대’에 ‘안착하여’ ‘안심하고’ 살아가고 있던 우리들 마흔살내기, 같은 동시대의 경험을 나누었던 서른살 꼬투리의 가슴에 깊이 감추어져 있던 상처를, 그 어둠을, 그 빛나고도 처절했던 기억들을 모조리 들쑤셔 놓았던 것이다. 그 영화는, 적어도 내게 있어선, 먼지 앉은채 서랍의 맨구석에 숨어있던 낡은 일기장을 다시 들쳐보는 것 같았다.
바깥에서 거꾸로 바라보는 광주, 탁월함!
그러나 이 영화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단지 그 어둡고 아팠던 과거를 들추어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문학 속에서는 지난 시절의 상처와 그 상처의 치유를 위한 괄목한 작업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터이다. ‘오월 광주’ 이야기라면 임철우의 장편소설 <봄날>에서부터 최근 황지우의 시극 <오월의 신부>에 이르기까지 이젠 어느 정도 식상해져 있을 만한 소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런 소재를 바라보는 이창동의 시선이다. 대체로 지금까지 문학이나 연극, 여타 장르에서 다루어진 광주는 ‘피해자’이며 ‘항쟁자’의 처지에서 바라본 것이었다. 비장하며 영웅적인 모습은 그들 작품의 도처에서 형상화된채 나타난다. 하지만 <박하사탕>은 그 반대편에 서있지만 동시에 ‘폭력과 광기의 역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희생자인 ‘권력의 하수인’의 눈을 통해 역사를 거꾸로 바라본다. 이 바깥에서 거꾸로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어둠 속에서 밝은 바깥을 바라보는 이창동의 탁월함과 냉소적인 특징이 잘 드러나는 측면인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이 영화의 어디 한구석에도 따뜻함이 없다. 영웅적인 모습도 없고, 정의로운 역사에 대한 믿음도 환희도 없다. 대신 어둠 속을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변해가는 한 인간의 광기어린 시선이 가슴 속에 송곳처럼 파고들 뿐이다. 심지어는 주인공인 김영호와 여주인공 윤순임의 <박하사탕> 같은 사랑 속에도 기댈 수 있는 다사로운 심장의 온기 하나 없다. 순임은 암에 걸려 죽어가고 그는 파멸하였다. 끝까지 관객에게 희망의 불빛을 보여주는 대신 들꽃 핀 침침한 강변의 텅 비고 외로운 절망을 보여주고 만다. 도처에 차가운 리얼리즘이 칼처럼 번득인다. 이런 가운데 하나의 대사, 운동권 청년의 일기장 속에 적혀 있던 글귀, 세 번째 막의 화두 ‘삶은 아름답다’란 말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그런데 이 거꾸로 된 차가운 시선, 역설의 미학을 통해, 이창동은 비로소 ‘광주’를, 그리하여 우리의 지난 시대를, 마침내 보편적인 인식의 장으로 올려놓았다. 그것은 더이상 지역적인 문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선명하게 나누어지는 양단논법도 아닌, 우리들의 보편적인 역사이며, 우리들의 삶의 기록이라는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인식, 회고담 아닌 예술로 마침내 승리하다
베트남의 젊은 작가 중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오 닌’이란 친구가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살의 나이로 북베트남 인민군에 입대하여 제27청년여단에서 오백명의 소년병과 함께 그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겨우 살아남은 열명 중의 하나이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전쟁 문학의 백미로 평가되는 <전쟁의 슬픔>이란 작품을 썼다. 베트남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판대에 놓여 있는 그 소설의 복사본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느 구석에도 승리한 전쟁의 전사로서의 자랑스러운 목소리는 없다. 대신 울부짖는 영혼들이 안개처럼 감도는 밀림의 우울한 풍경과 산산히 부셔진 한 젊은 영혼의 절망만이 깊은 강처럼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 과거의 깊은 심연에서 끝없이 불어오는 사랑과 자유의 슬픈 바람. 내 인생을 꿰뚫고 이 거리로, 동네로, 도시로 끝없이 불어오는… 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추억의 힘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베트남 전쟁은 그의 이 소설 <전쟁의 슬픔>으로 인해 비로소 승리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이, 예술이, 슬픔이, 파토스가 마침내 그를, 그들의 민중을 승리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이제 우리의 역사 인식이 단순히 과거 되돌아보기나 ‘회고담’이 아닌 예술을 통해 마침내 승리하였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창동 자신의 영광이 아닌 우리 모두의 영광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과 끝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는 구성이야말로 소설가 이창동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박하사탕>이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자 찬비는 싸락눈이 되어 점점히 도로에 깔리고 있엇다. 내 머리와 어깨에도 금새 하얗게 눈이 쌓였다. 신호등이 바뀌자 ‘쐬주’라도 한잔 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되어 천천히 단성사의 뒷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