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 시각효과 현장
2005-08-04
글·사진 : 전정윤 (한겨레 기자)
100℃르포 - 7초짜리 7일 끙끙 앗, 진짜 귀신이닷!
▲ 지난 31일 오후 서울 홍대 앞 한 빌딩에 자리잡은 시각효과팀 모빅스의 사무실에서 공포영화 <첼로>의 시각효과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흰 소복, 긴 생머리 가발, 핏빛 물감만 있으면 공포영화 한편이 ‘뚝딱’ 만들어지던 때가 있었다. ‘수공예’ 공포영화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고소영이 구미호로 등장했던 ‘본격적인 한국형 특수효과(SFX) 공포영화’ <구미호>가 나온 지도 벌써 11년이 지났다. 특수분장은 여전히 공포영화의 ‘앙꼬’지만, 컴퓨터 그래픽 시각효과 없는 특수분장은 이제 밀빵 없는 앙꼬와 같다. 18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우철 감독·성현아 주연의 공포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막바지 시각효과 현장을 찾았다.

실사촬영전 ‘사전시각화’, 3D로 형태 만드는 ‘모델링’, 사물에 색 입히는 ‘맵핑’
빛에 따른 음영조절 ‘라이팅’, 장면 합성 ‘랜더링’ 끝내니, 짜잔∼진짜보다 더 진짜 탄생

31일 오후 서울 홍대앞 엘지팰리스 빌딩 16층에 있는 시각효과팀 모비딕의 사무실. 모비딕은 영화 시각효과를 전문적으로 하는 20여개 팀 가운데 한해에 4~8편을 찍는 중견 업체다. 컴퓨터 여섯대가 나란히 놓여있는 작업현장에서는 컴퓨터 숫자만큼 2D, 3D 아티스트들이 모니터 난반사 방지용 우드락 속으로 얼굴을 들이댄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쾌적하고 학구적인 피시방 처럼 보이지만, 이 공간을 채운 컴퓨터들은 대당 가격이 1천만원에 이르는 고가 장비다. 모비딕은 지난 한달 반 동안 이 컴퓨터들을 이용해 전체 10분 분량의 시각효과 장면을 거의 마무리했다.

문병용(39) 시각효과 감독은 이날 처음으로 <첼로> 시각효과의 하이라이트를 공개했다. 홍미주(성현아)가 슬로모션으로 흩어지는 자동차 앞유리창 파편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본네트로 위로 시체가 떨어지는 초현실적인 장면이다. 7~8초 가량 되는 170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을 쏟아붇고 이제 막바지 작업만 남겨놓은 장면이었다.

첫 단계는 이름하여 ‘사전시각화’.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이 합성된 시각효과 장면을 연출하기에 앞서 3D로 먼저 씬을 그려보는 것이다. 3D 애니메이션 등 시각효과 소프트웨어인 ‘마야’ 프로그램이 사용됐다. 홍미주가 운전 중인 자동차의 동선과 내부, 운전자의 위치와 움직임, 쪼개진 파편의 모양과 개수와 흩어지는 모양은 물론 카메라 앵글까지 최종 완성될 장면과 최대한 흡사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의 어긋남을 최소화해 질을 높이고 돈과 시간을 아끼기 위한 절차”라는 문 감독의 설명이다.

실사 촬영은 사전시각화 다음 단계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시각효과팀은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시각효과 작업의 첫 단계는 ‘모델링’. 물체를 만드는, 그러니까 3D로 사물의 형태를 그리는 과정이다. 컴퓨터 하드에 저장해 둔 유리파편의 스틸 사진과 3D 애니메이션을 총동원해 파편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델링’이 끝난 유리파편에 세부적인 색감과 질감을 입혔다. ‘맵핑’이다. 이어지는 과정은 ‘라이팅’. 도로의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달빛 등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빛’을 감안해 음영효과 등을 조절했다.

‘사전시각화’부터 ‘라이팅’까지는 ‘마야’를 사용했지만 마지막 단계인 ‘랜더링’에서는 합성 프로그램인 ‘쉐이크’로 작업틀을 옮겨갔다. 전 단계에서 시각효과를 준 장면들에 마무리 효과를 주고 이를 하나의 장면으로 합성해내는 것이다. 컴퓨터 속에서 형체를 얻은 유리 파편들은 ‘랜더링’ 단계를 거친 뒤, 홍미주의 눈 앞에서 깨진 유리파편인 양 실사감을 뽐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시체 분장을 한 채 소파 위로 쿵쿵 몸을 던졌던 배우 역시 ‘랜더링’ 단계에서야 비로소 절묘하게 본네트 위로 떨어진 완전한 시체가 됐다.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한장면

공포영화의 백미 ‘귀신장면’에서도 어김없이 시각효과가 활용됐다. 긴 생머리를 수평으로 뻗은 귀신이 스멀스멀 희생자에게로 다다가는 장면이었다. 이 섬찟한 장면의 실사는 이랬다. 스태프들이 귀신의 머리카락을 집게로 고정시킨 뒤 이를 수평으로 떠받쳤다. 그리고 수레에 올라탄 귀신을 희생자 쪽으로 슬금슬금 들이밀었다.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런 장면이지만, ‘랜더링’까지 끝낸 완성장면은 진짜 귀신이 등장하는 듯 등골이 오싹했다.

여기서 잠깐. 1994년부터 이 일을 시작한 문 감독은 한국 영화 시각효과 1세대로 <내추럴 시티> <바람의 파이터> <연애의 목적> 등의 시각효과를 연출했다. 헉! <연애의 목적>에도 컴퓨터 그래픽이 쓰였다고? ‘아, 진짜 시디(CD)만했던 강혜정의 얼굴, 그게 시각효과였나보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크하하!’ 질투에 불타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문 감독이 말한다. 수학여행 장면에서 차창 밖으로 쌩쌩 지나가던 버스들이 몽땅 컴퓨터 그래픽이었다고. 영화 초반 강혜정과 박혜일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갈 때 흩날리던 낙엽이 컴퓨터 그래픽이었고, 영화 말미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던 눈밭도, 여관골목도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었단다. ‘오, 놀라워라~시각효과!’ 문 감독이 말하는 진정한 시각효과란 이런 것이다. “실사가 아닌 장면을 실사로 보이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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