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난 새 천년의 시작을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새 천년 시작하자마자 답답하고 끔찍스런 일만 계속되어 우울증 증세마저 도지는가 싶더니 이젠 같은 원고를 두 번씩이나 쓰게 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다. 며칠 전 원고 써달라는 전화받고 죽기보다 쓰기 싫은 것을 뭐라도 하는 게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되지도 않는 글을 적어 보냈더니 오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내 인생의 영화’는 비디오 소개 코너인 만큼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만 대상이 되지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써달란다. 애당초 내가 쓰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정한 원칙도 아니며, 더구나 <TABOO>가 비록 합법적으로 출시되진 않았지만 불법적으로나마 출시(?) 혹은 카피되어 돌아다녔던 포르노 영화인데… 애당초 나는 ‘내 인생의 영화’라고 꼽을만한 영화를 고민 끝에 대충 이런 글을 써 보냈었다.
…공개적으로 밝히기에 남세스럽긴 하지만 아주 오래 전, 삐죽삐죽 돋아난 턱수염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만져보던 까까머리 시절에 잘 사는 집 아들을 친구로 둔 덕택으로 나는 적지 않은 포르노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당시 또래들은 감히 상상도 못했던 포르노 영화를 그것도 이름조차 생소한 비디오를 통해 눈자위에 시뻘건 핏발이 서도록 보고 또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압권은 역시 <TABOO>라는 포르노 영화다(반항기로 똘똘 뭉쳤던 그 시절에 TABOO라니 제목마저 멋져 보일 수밖에). 고백컨대 내 일생을 돌이켜 그만큼 간절히 보기를 원하고,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그리고 그처럼 오랫동안 자주 보았던 영화가 과연 또 있을까? 그전까지 홀딱 벗은 여자의 모습을 사진으로나 훔쳐보며 씩씩대던 내게 <TABOO>는 무엇에 비할 바 없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세상에! 한두명도 아니고 저렇게 떼로 나와 그짓을 해도 되는 거야? 우리는 그후로도 오랫동안 친구의 집이 비길 간절히 기원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놓치지 않고 보고 또 보길 반복하였다. fast forward로 보고 rewind로 보고 그것도 모자라 pause로 보고 꿈에서도 보고. 갈수록 우리의 몰골은 피폐해졌고 마침내 주변 어른들에게 공부도 좋지만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양심 찔리는 말까지 들어가며 우리는 그 영화를 보고 또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영화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비디오의 제목이 <TABOO 3>라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3이라니? 그럼??!! 우리는 그후로도 더 오랜 세월을 어딘가에 있을 것임에 분명한 1과 2를 찾기 위해, 그리고 충분히 있을 것만 같은 4와 5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경주하였던 것이다.
결국 난 <TABOO>가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에 한함’이라는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같은 원고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난 여전히 “불법출시도 출신디”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맴이 하나같지 않으니 어쩌랴. 그냥 뭐라도 하는 게 이 깊은 우울증을 벗어버리는데 약이겠거니 생각해야지.
그래서 떠올린 것이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라는 영화이다(이번엔 분명히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만일 지금 다시 본다면 부르주아 의회정치인의 영웅담에 불과하다고 생각될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한참이나 어렸던 나는 이 영화를 흑백TV를 통해 손에 땀을 쥐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있다. 충격 정도나 영향 평가라는 측면에선 앞서 말한 <TABOO>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단한 감동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보이 스카우트 단장 출신인 상원의원 스미스(제임스 스튜어트)에 반해 보이 스카우트에 들게 해달라고 하루종일 떼쓰다 결국 할머니에게 엄청 두들겨맞았던 기억이 선명하니 말이다. 등록금도 제때 못내 허구한 날 교무실로 불려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맞아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멍청해보일 정도로 순진했던 스미스가 상원의원이 된 후 의회를 가득 메운 적들과 홀로 맞서던 라스트 씬은 비록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나의 가치관 형성에 크게 기여했던 것 같다. 까까머리 시절 잠시 동안이나마 ‘늘푸른 모임’이니 ‘베데스다 선교회’ 같은 봉사모임을 쫓아다녔던 건 순전히 이 영화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요즘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꾼들과 그나마 올바른 정치꾼을 가리겠다고 나선 시민단체 간의 대립이 흥미로운 뉴스 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니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는 시간 내어 다시 한번 봄직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우리 국회의 의원 나리들과 스미스 같은 정치인을 비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이번 총선에서 스미스 같은 정치인 몇몇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택도 없는 기대도 해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너무 기대할 일은 아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만 커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