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 언론에 첫 공개
2005-08-11
글 : 이종도
시사회장의 <첼로> 주연 배우들

8월 10일 오후, 비가 오락가락 하다가 천둥이 치기도 하다가 다시 날이 맑아지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가운데 서울극장에서 <첼로> 시사회가 열렸다. 주연인 홍미주 역의 성현아를 비롯해 감독 등이 먼저 무대인사에 올라 궂은 날씨에도 시사회를 찾은 관객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극중 성현아의 딸 노릇을 한 큰딸 윤진 역의 최지은, 그리고 막내딸 윤혜 역의 진지희였다. 최지은은 자폐증 연기를 하느라 말을 한마디도 못했는데 말을 하지 못하는 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는 어른스러운 말로 박수를 받았다. 진지희는 이제 첼로를 보면 무서울 것 같다는 홍보성 멘트를 앙증맞게 말해 더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

<첼로>는 숨바꼭질로 시작한다. 이게 어디서 본 공포영화게, 하는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진다. 테이프에 녹음된 바흐의 연주가 음산하게 깔릴 때는 혹시 <링>처럼 테이프에 마가 낀 게 아닐까 싶고, 운전을 잘 하고 가던 성현아의 차 앞 유리가 갑자기 박살나면 <가발>에서 본 교통사고가 떠오른다. 성현아의 핸드폰으로 ‘행복하니?’하는 문자 메시지가 계속 찍혀 들어오면 <착신아리>, 그리고 성현아의 이불 속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것 같으면 <주온>이 연상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숨바꼭질은 첼로의 우아한 선율과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산만하고 지루할 때가 있다.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은 오히려 가장 무서운 공포가 반복에서 온다는 견해를 제출하기 위해 빙빙 에둘러 말하는 영화다. 여기서 반복이란 무엇인가. 가령 무서운 꿈을 꾸었다가 깨어났지만 다시 자야 할 때의 공포, 혹시 그 꿈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 말이다. 그리고 그 악몽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죄의식이다. 무의식의 지하실에 꽁꽁 숨겨둔 죄의식이 표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제일 무섭지 않으냐고 영화는 묻는다.

<첼로>는 바흐의 선율을 바탕 선율로 깐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구노가 곡을 붙인 ‘아베마리아’, 그리고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가운데 마지막 악장 샤콘느를 첼로로 편주한 ‘샤콘느’, 관현악 모음곡 3번의 ‘아리아’ 선율이 흐른다. 하지만 자폐증을 앓는 큰 아이의 신경 거스르는 첼로음이 이 우아한 분위기를 산산조각낸다. 평온한 중산층의 일상 속에 숨은 불협화음이라도 되는 걸까.

음대 강사 미주(성현아)의 안온한 일상은 의문의 테이프를 받으면서, 그리고 자폐증을 앓는 큰딸에게 첼로를 사주면서 일그러진다. 학점을 나쁘게 받아 유학을 갈 수 없게 되었노라고 행패를 부리는 수강생, 남편이 들여온 말 못하는 가정부, 그리고 느닷없이 죽는 강아지. 미주는 낮에도 헛것을 보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환청에 시달린다. 급기야 함께 사는 손아래 시누이 경란이 결혼을 앞에 두고 목을 매 자살한다.

<첼로>엔 영화 종결부에서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막내딸 역을 맡은 진지희 말처럼, 이제 바흐 선율에도 피가 흐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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