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은 전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개봉을 앞둔 불안일까 짐작해 보았지만, 늦게까지 밑줄 쳐가면서 희곡을 읽다보니 그랬다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을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이 전국관객 200만명을 넘기면서 <박수칠 때 떠나라>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어쩌면 이렇게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걸까. “다들 별점을 잘 줬더라고. 나는 별 두개나 두개 반도 많을 것 같은데.” (웃음) 혹독한 자기 비판을 거쳤기 때문에 어떤 혹평이나 칭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장진 감독은 48시간 안에 살인범을 찾아내야 하는 미스터리 <박수칠 때 떠나라>를 두고 마치 남의 영화를 이야기하듯 장점과 결점을 찾아내곤 했다. 마지막이 정말 처연하잖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하지 말걸. 그러나 그가 가장 생기를 보이는 순간은 다음 작품을 이야기할 때였다. 30회를 숨가쁘게 촬영하고 개봉까지 해치우고선 곧바로 “스케일이 큰 영화” <거룩한 계보>가 하고 싶어 죽겠다는 장진 감독. 그를 둘러싼 어떤 설왕설래에도, 타고난 이야기꾼 장진 감독은 이야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웰컴 투 동막골>이 첫주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원작자고 제작자이긴 해도 긴장되겠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엔 제작자로서의 개념은 없다. <웰컴 투 동막골>은 대단한 경쟁작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영화 보고 나서 쓰레기통 찰지는 몰라도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은데, 스크린 수가 훨씬 적어 걱정이 된다. 선호도에선 자신이 있었다. 관객이 차승원에게 가지는 신뢰가 생각보다도 강하더라.
-차승원은 지금까지 당신과 함께 작업해왔던 배우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배우가 해내야 하는 몫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캐스팅에 들어간다. 제작비가 큰 영화라면 그걸 책임지는 안전한 캐스팅을 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런 게 찝찝하긴 하지만 이번엔 영화가 대단히 언어적이어서 능수능란한 언어망을 가지고 있는 배우를 원했다. 설경구를 캐스팅하고 싶었지만, 얼마 전 제작기에도 썼듯이(<씨네21> 514호), <공공의 적2> 이후여서 “에이씨, 또 검사야? 나 안 해!” 그러더라. 한석규에게도 시나리오를 넣었었고. 차승원은 차선이었고 이 정도 다이얼로그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다. 내 바람 이상으로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
-당신의 영화는 어느 정도 챕터를 나눈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처럼 챕터를 잘게 나누고 제목까지 붙이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어떤 점이 달랐던 건가.
=<박수칠 때 떠나라>가 연속성이 있는 이야기로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절된 알레고리를 주워모으다보면 살인을 둘러싸고 있는 눈요깃거리에 정신이 팔려 가장 밑바닥에 놓인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자극만 좇는 현상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TV 중계는 욕심을 낸 부분이었을 텐데 많이 삭제됐다.
=최연기(차승원)가 김영훈(신하균)을 심문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되풀이되는 대목을 편집했고 그 밖에도 TV 카메라로 촬영한 부분을 몇 군데 없앴다. 스크린으로 보니까 디지털로 찍은 부분이 떡이 돼서 못 보겠더라. 대신 살인범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끝까지 붙였다. 그게 오히려 속이 편했다. 연기와 영훈이 세게 붙는 사이에 코미디가 들어가니까 과잉 같았거든. 너무 장난스럽지 않은지, 불편했었다.
-<킬러들의 수다>가 끝난 다음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젠 바람 부는 숲속에 누군가 잠시 들어왔다 나가기만 해도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이 영화에 정말 그런 장면이 나오던데.
=아, 그랬나? (웃음) 나도 왜 그 이미지를 부여잡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군대의 기억이다. 내가 복무했던 지역 숲속에 은사시나무, 특히 겨울 은사시나무가 있었다. 은사시나무 잎사귀는 플라타너스와 비슷하지만, 색이 다르다. 앞쪽은 녹색이고 뒤쪽은 은백이어서 바람에 팔랑이면 반짝거리는 게 참 아련했다. 초자연적으로 평화로웠다. 허공에 붕 뜬 느낌이랄까. 군대는 평화로울 수 없고 평화로워서도 안 되는 곳인데 말이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유독 스타일을 강조했다. 당신이 약속했던, 지금까지 보지 못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나.
=비주얼이나 편집의 관점에서만 스타일을 말한다면 머리쓰기 나름일 것이다. 나에게 한 시간만 줘봐, 그러면 그 한 시간 동안 뭐든 할 수 있는 거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타일의 의미는 테크니션들의 머리쓰기다. 물론 내가 거기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지만. 나는 이야기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스타일을 찾고 싶었다. 관습적이지 않고 정석을 피해가는 발상, 충돌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스타일 있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살인범 인터뷰다. 사람 죽인 놈이지만 어떤 점에선 범상한 경지를 초월한 사람이다. 리서치 한번 안 했어도, 그 남자가 진짜 칼을 찌르는 순간, “죽어라, 죽어라” 하지 않고 “살아라, 살아라” 했을 것 같았다. 이런 발상은 유별나고 독창적인 상상 같았고, 결국 이게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1막 전체가 심문장면인 것도 과감한 스타일이다. 정말 지루하게 늘어지잖아. 내가 이렇게 늘어뜨렸으니까 잘 들어봐봐, 이런 뜻이었다. (웃음)
-<박수칠 때 떠나라>의 김준영 촬영감독은 신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영화라 어려웠을 테고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포커스를 맞추지 못한 장면이 있다. 그는 촬영감독으로서 카리스마가 있어서 뭐든 하나 이상하다 싶으면 스스로 NG를 부르는 사람인데…. 그래서인지 영화 찍고 하도 속상해서 이민가겠다고 하더라.
-그분, 유학갔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민 가는 게 더 쉽겠지. (웃음) 내가 가지 말라고 했다. 한국에선 포커스가 안 돼서 이민 가는 거냐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김준영 촬영감독하고는 한번 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죽어도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미스터리는 처음인데도 단서를 배치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이 탄탄하다.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을 것 같다.
=그러게, 언제 추리소설 써보려고. (웃음) 한번 더 미스터리영화를 만든다면 일상적인 미스터리가 아니라 감히 근접하기 힘든, 호러 필이 팍 나는 미스터리를 하고 싶다. 지금 기획 중인 영화도 있다. <시스터>라고 원안을 각색 중인데, 세 자매 이야기다. 새어머니와 의붓딸 두명, 친딸인 막내가 아버지 장례식에서 조각처럼 잘생긴 남자를 만난다. 고등학생인 둘째가 그 남자에게 반해서…. (아직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감정과 느낌을 살린 장진 감독의 이야기가 한참을 이어지고) 재미있겠지? 저예산으로 카메라가 노는 맛을 살려서 만들고 싶다.
-누군가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걸 좋아하나보다.
=그렇지! 영화 안 해도 돼, 이걸로 벌써 영화 한편 한 건데 뭐. (웃음) 근데 이렇게 이야기 듣다가 전화하고 통화하면 정말 짜증난다. 누가 내 영화보다가 극장에서 전화기 들고 나가는 것처럼. (웃음) 이야기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게 있다. 영화로 안 만들어도 상관없고 누구한테 전화 걸어서 박진감 있게 이야기 들려줄 때가 재미있다. 그런데 영화로 만든다고 지지부진하기 시작하면 그게 싫은 거다. 프리 프로덕션을 오래 못하는 것도 빨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씨네21>에 연재했던 ‘이창’도 유독 혼자만 픽션으로 썼다. 매번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짧은 글이었지만, 나는 이야기 쓰는 게 재미있다. 아주 작은 이미지에서 출발하더라도, 내가 쓴 거 재미있지 않았나? 그걸 쓰고 있는 동안 정말 힘든 게, 단서를 느끼고 이미지를 잡기 위해 내내 그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 프린트한 따끈따끈한 종이를 연출부한테 주고 나서 애들이 재미있어하면 그 어떤 순간보다도 좋았다.
-그렇다면 소설을 써도 되겠다.
=언젠가는 산문으로 갈 것 같다. 모든 게 끝난 다음에 그 결과를 정리해서 하나로 들려주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연극적이라는, 연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섯 번째 영화인데 지겹지 않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지겹지도 않나? (웃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연극을 얼마나 알고 평을 하는지 궁금하다. 정말 연극을 알고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봐온 사람들은 내 영화를 보며 연극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주류를 이루는 연극은 사실적이고 표현주의적이고 비언어적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언어적이고, 제4의 벽을 뚫고 들어간다. 연극은 제4의 벽이 있다. 배우가 그 벽을 통해 무대로 들어가면 관객은 저게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짜로 받아들이자고 마음먹는다. 물론 가끔은 브레히트적이거나 양식을 깨는 순간이 있긴 할 거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의 내레이션이야말로 브레히트적이지 않나. <박수칠 때 떠나라>는 TV적이지 연극적이진 않다. 반영화적이라는 표현은 맞을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화적인 관습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내 영화를 연극적이라고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영화적이지 않을 뿐인데 연극연출가 출신이라 그런 평을 듣는다는 것인가.
=맞다. 내가 만약 조각이나 설치미술을 했다면, 저 사람 영화는 조각적이고 조형적이라고 말했을 거다.
-단순하게 연극은 공간을, 영화는 시간을 담는다고 한다. 당신의 영화에선 시간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비판받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영화의 시간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 언젠가 제대로 된 이야기꾼이 된다면 성장영화나 전기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아직은 20년을 고스란히 다룰 수가 없다. 1시간40분짜리 영화에 1시간40분 동안 일어난 일을 담으라면 하겠는데. 영화적인 시간이 내 안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서서 그동안 걸어온 과정을 바라볼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그런 걸 할 수 있지 싶다. 15년을 촌각처럼 바라보면서 잘 배열하고 압축하여 하루라는 시간 안에 요리하는. 하지만 아직은 많이 깨달아야 한다.
-그런 순간이 오지 않으리라는 공포는 없나.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깊이를 가진 척할 수는 있겠지만 내 머리가 가는 데로 가야만 한다. <아는 여자>를 만들고 나서 8개월 정도 지나 <박수칠 때 떠나라>를 만들었는데 그 사이에 깊이가 있어지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내가 그 사이에 가정이 생겼나, 형무소에 갔다오기를 했나, 그렇다고 독한 사랑을 해봤나. 내 역사에 무언가가 생기면 달라질 거라는 희망은 있고, 그 기대는 정말 크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재가 나의 베스트라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내가 설렁설렁 일하긴 하지만 안전장치는 갖고 있지 않다. 저축도 안 하고 보험도 동창이 들라고 해서 하나 들었다. 우리나라에 간판 많지 않나. 내가 언제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한순간 한순간, 이게 나한테 다지 뭐, 그런다. 그렇다고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제작사 사장님은 화내겠지(웃음) 어떡하나, 내가 할 줄 아는 게 그게 다인걸.
-다음 작품은 스케일이 꽤 크다고 했었다. 어떤 영화인가.
=<거룩한 계보>라고 여수 순천 칼잡이들이 나오는 호남 누아르다. 사람을 찌르고 감옥에 들어간 칼잡이가 조직에 왕따를 당한다. 그래서 조직에 복수하기 위해 감옥 안에서 ‘거룩한 계보’를 만드는 거다. 시속 150km로 확 나가는 영화가 될 거고, 감옥도 전부 지을 거다. 내가 말한 스케일이라는 의미는 반드시 감옥을 통째로 짓는다, 이런 것만은 아니다. 나는 <웰컴 투 동막골>처럼 90번을 찍고 정교한 스토리보드 그리고 미리 헌팅하고 CG 계산하는 영화는 못한다. <거룩한 계보>는 대신 감정적인 스케일이 있는 영화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인물의 심정, 그 인물이 움직이면서 벌어지는 시추에이션, 감정과 감정의 충돌, 이런 것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빨리 들어가고 싶다.
-긴장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는 해도 창작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 그런 동력을 얻는지.
=밤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고 사무실과 집만 왔다갔다 한다. 운동하고, 화도 내고…. 연애가 제일 크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 영화를 보여줄 건데 짜치게 만들면 안 되지, 이런 생각은 큰 동력원이 되어준다. 생각해보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은 사랑인 듯하다. 내가 가정을 만들면 더할 거다. 내 자식이 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