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성현아
2005-08-25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나는 스스로를 ‘인디’라고 생각한다”

성현아는 요즘처럼 바빴던 때가 없다. 호러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신작 <애인>의 촬영 때문에 새벽 5시만 되면 헤이리로 가야 한다.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날도 <첼로…>의 VIP 시사가 열리는 강남의 한 극장에 들러 무대인사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밤 9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은 11시나 되어야 겨우 끝날 참이다. 그렇게 바쁘게 달리다가는 넘어진다는 기자의 말에, 성현아는 어물쩍 웃어넘긴다. “그냥 꾸준히 계속 이렇게 하려고 한다. 영화 찍을 때가 제일 좋다. 나는 쉴 줄도 모른다. 쉬면 고민만 는다. 게다가 작품 출연할 때마다 출연작 DVD 하나씩 쌓이는 재미가 있으니까.” (웃음)

그러고보면 지금처럼 성현아의 이름 앞에 영화배우라는 명패가 자연스러웠을 때도 없었던 듯싶다. 그는 <보스상륙작전>과 <주글래 살래>의 자신을 영화배우라 여기지 않았고, 뒤이어 터진 스캔들은 성현아라는 이름에 주홍글씨를 찍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주홍글씨>가 찾아왔다. 성현아는 부활했고, 화려했다. 물론 그런 순간에도 그는 ‘A.one’이라는 이름으로 싱글을 내고 쇼프로그램의 무대에 서는 데 주저하지 않었다. 솔직하고, 부끄러움 없고, 후회없다는 성현아로부터 영화배우로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첫 단독주연이라. 조바심이 나겠다.

=많이 긴장하고 있다. 솔직히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들은 흥행 자체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연기한 것들이었다. 약간 마니아 위주의 영화였다고 할까. <첼로…>는 아무래도 여름용 호러영화이고 상업영화라 흥행에 상당히 신경쓰인다. 호러영화는 아무래도 처음이라서, 이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을 연기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호기심과 열정으로 뛰어들었던 영화다. 그런데, 열심히 찍었는데도 찍고나니까 이제야 감이 온다. 아쉬운 느낌도 많이 든다.

-어떤 부분이 그리 아쉬운가.

=<우주전쟁>의 주연은 톰 크루즈였지만, 그 영화의 속성상 톰 크루즈의 연기가 빛났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느낌의 아쉬움이다. 공포영화니까 무서운 게 가장 중요하지만, 내가 연기한 부분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보고 나니까 별로 한 것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랄까. 영화 하나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영화는 하면 할수록 어렵고. 처음 영화배우가 되었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 그저 감독님 오케이 사인만 나오면 이게 맞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케이 사인이 나와도 그걸 못 믿겠다.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

-영화를 굉장히 빨리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굉장히 빨리 찍어서 정신이 좀 없었다. 총 33회차에 100신을 다 찍어냈으니까. 예정되었던 신은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찍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당신은 첼로를 배워야 했고, 역을 혼자서 이끌어가야 했다. 노곤한 현장이 연상된다.

=제목부터 ‘홍미주’ 아닌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안 나오는 장면이 없다. 이전 작품을 찍을 때는 좋은(웃음) 배우들과 연기를 했기 때문에 배울 것도 많았고, 또 역할 분담도 어느 정도 확실해서 결과물에 대한 책임감도 나눠가질 수 있어 부담이 덜했다. 하지만 <첼로…>는 조연배우들이 모두 신인이니까 정신적으로도 적지 않게 부담되었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아역들의 연기가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이런 경우에는 엄마 역을 하는 것도 골치아픈 일이었을 텐데.

=뭐 그거야. 아역들이 원래 그렇지 뭐. (웃음) 특별히 많이 생각한 건 없다. 꼬마들이야 아무리 잘해도 꼬마들이고, 촬영장에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잘했던 애들이라 큰 부담은 없었다. 조카들이 있어서 그애들 생각하며 연기하기도 했고. 내가 다코타 패닝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조카 하나가 다코타 패닝이랑 쏙 빼닮았다. 그런 딸 하나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좀 무섭지 않나. 다코타 패닝.

=걔가 올해 할리우드에서 제일 돈 많이 번 여배우라더라고. (웃음)

-언제나 뭔가 음침하고 숨겨진 사연을 가지고 있는 여자 역이다. 왜 그럴까.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어버렸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역할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데 매력을 느끼는 게 분명히 있기도 하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음침한 이미지로 가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하신다. 하지만 이미지야 관객이 만드는 거 아닌가. 아직은 나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다양하지 않으니까 좀더 다양한 걸 하고 싶은 욕심뿐이다. 지금 찍고 있는 영화도 그렇고.

-기획시대에서 제작하는 <애인> 말인가.

=거기서는 평범한 여자다. 집안도 학력도 그냥 평범하고 결혼할 남자도 있고, 그냥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이 평범한 여자가 가장 일반적인 일탈을 꿈꾼 뒤에 진짜로 실행한다는 내용이다.

-<애인>은 어디에 끌려서 출연하게 된 건가.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장르나 캐릭터에 대한 편식이 없는 사람이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만 어떤 한 캐릭터 때문에 못하겠다, 이런 것 없이 도전하는 스타일이다.

-무모한 사람인가, 모험심이 강한 건가.

=영화를 찍는다는 게 그런 것 같다. 나는 영화라는 틀 안에서만 가장 자유롭다. 나라는 걸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영화라는 게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거니까. 기쁘기도 하고. DVD가 쌓일 때마다 기분이 좋고.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당신을 봤는데 왠지 모르게 조금 불편해하는 표정이었다.

=불편해하는 표정이 아니라 진짜로 불편했다. 물론 나에게는 앞으로도 있을까 말까 한 좋은 경험이긴 했다. 그런데도 불편했다. 정말 진정한 영화인이 되어서 연기도 좀더 잘하고, 그래서 기사가 하나 나도 ‘쟤가 걸친 옷이 얼마라더라. 다이아몬드가 얼마라더라’가 아니라 ‘쟤 연기가 어땠다더라’가 더 화제가 되는 배우. 그런 입장으로 갔다면 그렇게 어색한 자리가 아니었을 텐데. 사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나의 첫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영화로 칸에 간 것은 인생 최고의 경험 중 하나지만, 첫 영화이니만큼 부족하고 창피한 느낌이 안 들 수 없는 것 아닌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첫 영화로 여긴다면, 홍상수 감독에게 선생님 같은 느낌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그전에도 <오! 수정>과 <생활의 발견>을 위한 미팅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연이 되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볼 기회가 있을 거라고 항상 말씀하시더라. 뭐 처음부터 인상도 좋으셨고. 말씀이 거의 없으신데 하나에 꽂히면 말도 많고 갑자기 흥분하고, 그러다가 스스로 다시 컨트롤을 하고. 이제 그만하자, 혼자서 이러신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선화 캐릭터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여성단체는 최악의 여성 캐릭터로 꼽기도 했고. 이런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나.

=“깨끗하게 해줘”라는 대사도 아마 최악으로 꼽혔을 거다. 그거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 아닐까.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여성 캐릭터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살아 있는 캐릭터이고 자기 주장도 강한 캐릭터였다. 사실적인 인물이다. 찍으면서도 불편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분명히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이면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태우 방과 유지태 방을 오가는 장면 말인데, 그건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거다. 선화가 정말로 두 사람 모두와 잤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다. 나는 자지 않았다고 믿었다.

-당신은 몸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배우다. 그건 어디서 나오는 건가.

=베드신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만약 연기하기에 욕심나는 캐릭터가 있는데 베드신이 있는 경우. 정말로 필요가 없는 거라면 감독이랑 이야기해서 없애면 되는 거다. 충분히 항의할 수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장면이라면 아무런 창피함 없이 찍을 수 있다. 정말 좋은 영화를 그것 때문에 놓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놓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나는 몸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주홍글씨>에서는, 단단한 객체라기보다는 감독의 오브제로 쓰인 느낌이 있다.

=불만은 없었다. 연기는 내가 하는 거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촬영할 때는 영화를 처음 하는 입장이라 감독님 말을 그냥 수용하는 게 편했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는 원래 남자배우들도 감독님 요구에 100% 따라야 한다. (웃음) 변혁 감독님은 생각하는 그림은 확실하지만 집요하게 요구하지는 않는다. 가급적 배우가 수용해주길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내 본모습과 영화적 인물을 적절히 살려서 적절하게 중간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잘린 장면도 있지만.

-어떤 장면이 잘렸나.

=5분짜리 한 장면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처음 <주홍글씨>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가 따먹어야 할 게 두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살해장면이고 다른 하나가 5분짜리 정사장면이다. 그런데 둘 중 하나가 그냥 사라져버린 거다. 꽤 충격을 받았고 섭섭했다. 감독을 많이 원망했었다. 조금이라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개인적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시사 보고 5분 잘린 걸 확인한 뒤에 울면서 이은주에게 속상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 친구가 웃어, 웃으라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이은주와 그런 고민을 이야기할 만큼 친했나보다.

=영화배우를 하기 전에도 이은주가 좋았다. 캐릭터에 대한 편식이 없고, 다양하고, 백지 같은 배우다. 그래서 그 위에 아무 그림이나 다 그려서 채워넣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닮고 싶었다.

-‘A.one’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 <Turn It Up>. 개인적으로는 꽤 좋은 노래였다고 생각한다.

=하하하하. 고맙다. CD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그런데 문제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이후에 음악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영화계 사람들은 당신이 쇼프로그램에서 노래하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가수 데뷔 계획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찍기 이전에 이미 세워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나로서는 앞으로 영화배우가 될지 몰랐기도 하고, 또 해보고 싶었던 건데 기회도 왔고,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촬영하면서 가수 활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감독님 계약조건에 영화 촬영부터 마케팅까지 다른 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게 있더라. 그래서 데뷔가 밀렸었는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찍자마자 또 <주홍글씨>에 들어가버린 거다. 그러다보니 ‘A.one’도 영화배우가 벌인 이벤트처럼 되고 말았다. 물론 영화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완전히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고. 지금은 그냥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전혀 후회가 없나보다.

=해보고 싶은 것 해봤으니까. (웃음) 재미는 있었는데, 막상 하면서도 가야 할 길은 따로 있구나 싶었다. 가수 활동에 대한 후회는 결코 없다.

-일종의 롤모델 같은 건 없나.

=롤모델은 없다. 나는 스스로를 인디(Indie)라고 생각한다. 국내 영화제 시상식을 가서 다른 배우들을 보면, 꼭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어차피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하고 싶고 마음에 드는 영화라면 흥행에 신경 안 쓰고 해보고 싶다. 조용히 편식없이 갈 길을 가고 싶은 거다.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현아라는 이름이 그냥 배우라고 불리기만 하면 좋다. 그냥 그렇게 가고 싶다.

-그게 당신의 시나리오인가.

=나는 영화계에 들어온 계기도 남과 다르고, 가는 길도 다르고, 가야 할 길도 다를 것 같다. 성현아라는 배우. 누드도 찍고 이것도 저것도 하고, 이렇게 다른 스티커가 붙어다니지 않나. 악쓰고 그거 떼내려고는 하지 않겠지만, 점차적으로 배우라는 스티커가 더 붙게 된다면… 그런 게 내 시나리오인 것 같다.

-김태우가 성현아의 장점은 끝도 없이 솔직한 거라고 하더라.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남들은 아는 척도 하나보지만. 뭐, 단순한 거다. 모르면 모르는 거다.

-솔직하면 손해보는 게 쇼비즈니스계 생리 아닌가.

=모르고 답답해하며 지나가느니 그냥 물어보면 다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더 좋은 거다. 기분이 좋고 나쁘다, 이런 것도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게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법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