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는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컨텐츠로서 그 달의 레퍼런스(화질, 음향, 부록 등에서 모범이 될만한) 타이틀을 엄선해, 주요 장면의 AV적인 우수성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을 정리하는 코너입니다.(DVDTopic)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두 편(<시계 태엽 오렌지>, <아이즈 와이드 셧>)이 드디어(!) 지난 8월 19일에 국내 출시됐다. 그것도 무삭제, 무수정 버전으로 말이다(솔직히 이걸 기뻐해야 하는 한국 DVD 유저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지각출시’된 탓에 이 두 타이틀은 국내 DVD 유저들에게 ‘혼란’을 던져주기도 했다. 이유인즉, ‘최신 출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시계 태엽 오렌지>는 비아나모픽의 1.66:1 와이드스크린 포맷이며, <아이즈 와이드 셧>은 (황당하게도) 풀스크린 포맷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두 영화가 ‘스펙을 넘어선’ 소장가치를 지녔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혹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이런 스펙을 고집한 큐브릭을 탓하기 이전에 타이틀을 지각출시하게 만든 장본인인 ‘어떤 분들’을 먼저 탓하시길 바란다. 참고로 <아이즈 와이드 셧>은 코드 1번으로는 이미 지난 2000년에 출시됐고(이번 국내 출시판이 소스로 쓴 코드 3번 홍콩판 역시 이 때 출시됐다), <시계 태엽 오렌지>는 두 번째 큐브릭 박스 셋이 나온 2001년에 출시된 것이다.
뭐 불가피한(?) 국내 사정에 의한 지각출시야 그렇다 치고, 스펙은 또 왜 저 모양인가? 항간에 떠돌던 소문대로 큐브릭은 정말로 ‘레터박스를 혐오한’ 것인가?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이렇다. <시계 태엽 오렌지>의 경우는 사실 영상 비율이 오리지널 네가의 비율인 1.37:1과 1.66:1의 중간적 성격을 띠었다(영화를 보다 보면 인위적인 매트의 흔적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역시 비슷한 성격을 지녔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비교했을 때 <시계 태엽 오렌지>는 애당초 1.66:1 비율을 목표로 했던 작품이었기에, 이 비율로 DVD에 담긴 것이다(<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경우는 1.66:1 보다는 풀스크린 비율에 보다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영상 손실이 전혀 없는 풀스크린이야말로 큐브릭이 선호한 비율이라 볼 수 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의 경우는 <샤이닝> 때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영화는 1.37:1 비율로 찍은 오리지널 네가의 위와 아래를 소프트 매트(Soft-matted) 처리하여 와이드스크린 형태로 만든 뒤 극장에 걸린 바 있는데(물론 이것은 극장 상영의 관행을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큐브릭이 애써 만든 장면의 28%가 훌쩍 날아가 버렸다. 큐브릭은 이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따라서 그가 DVD에서 ‘사라진 28%’를 복원할 것이라는 처음부터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시계 태엽 오렌지>가 아나모픽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완벽주의’의 발로였다. <시계 태엽 오렌지>가 DVD로 제작될 당시는 아나모픽이 ‘표준 포맷’으로 완전히 굳어지기 이전이었다. DVD의 총 제작지휘를 맡은 레온 비탈리(그는 20년이 넘도록 큐브릭의 스탭으로 일했다)는 ‘아나모픽 처리를 했을 때 영상의 왜곡과 화질의 영화가 전혀 없다는 확증이 (당시로는) 없었기 때문에’ 비아나모픽 포맷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타이틀이 (하필이면) 아나모픽 포맷이 ‘표준’으로 굳어진 2005년에야 국내에 출시됐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것일 뿐이다.
이번에 출시된 <시계 태엽 오렌지>는 비탈리의 꼼꼼한 감독 아래 디지털 복원/리마스터링 된 버전으로 음향트랙 역시 5.1채널로 새 단장(본래 사운드트랙은 모노)했다. AV 퀄리티? 설마 34년 된 영화의 그것에서 최신 레퍼런스급 타이틀 급의 퀄리티를 기대하시는 분은 없겠지? 그러나 적어도 그간 ‘처참한 화질/음질’의 비짜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화를 감상해온 ‘시네마떼끄 파’ 영화광들의 눈에는 본 타이틀이 ‘기적의 레퍼런스급 타이틀’로 느껴지리라는 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 사실 이런 기념비적인(?) 타이틀에 ‘기계적인 화질/음질의 측정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고인이 된 큐브릭 감독에 대한 ‘실례’가 아닐는지? 따라서 필자는 적어도 이 타이틀에서 만큼은 ‘베스트 신’ 역시 꼽지 않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읽는 분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2005년 8월 19일 워너 브라더스 출시)
트리플 X : 넥스트 레벨 xXx 2 : State of Union
가끔은 ‘아무런 부담(?)’ 없이 서라운드 전 채널을 휘젓는 ‘입체음향의 폭풍’에 휘말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멀티채널 서라운드 시스템을 구비해 놓고도 좀체 가동도 못해 보신 분들, 가끔은 스피커도 ‘운동’을 시켜줘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라. <트리플 X: 넥스트 레벨>은 이런 용도로 그야말로 ‘딱’인 타이틀이다.
화질은?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면, ‘좋긴 하지만’ 레퍼런스급이라고 꼽기에는 2% 부족하다. 1억 달러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최신 액션 영화이고,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HD 트랜스퍼 되었음에도 ‘칼 같은 선명도’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필름 그레인도 여기 저기 눈에 띄고, 윤곽선 강조 현상도 있다. 하지만 단점은 딱 여기까지다. 이런 명백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타이틀의 영상이 기대 이상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이유는, 바로 탁월한 색 재현력과 질감 표현력 때문이다. 인물의 피부 색 톤에서부터 자극적인 폭발 신의 화염, 각종 무기와 탈것들의 질감까지 액션 영화에서 ‘감상자가 기대할만한’ 모든 요소가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서두에 잠시 언급했듯, 이 타이틀의 진짜 매력은 바로 무시무시한 입체 음향이다. 특히, 값비싼 스피커를 장만하신 분들은 이 타이틀을 통해 ‘투자한 보람’을 확실히 느끼실 것이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답게 ‘과장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본 타이틀의 입체 음향이 선사하는 몰입도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의 수준이다. 단순히 서라운드 채널의 활용도만 놓고 봐도 ‘만점’ 수준이지만, 음향 자체의 퀄리티는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스피커를 마구 휘젓고 다니는 총알 소리, 긴박감 넘치는 자동차와 탱크의 엔진 소리,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파편 소리 등 당신이 액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사운드 요소’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주인공 디(아이스 큐브)가 항공모함에서 탱크를 탈취한 뒤 벌이는 액션 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신이지만 입체 음향의 정수를 만끽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신이다. (2005년 8월 10일 소니 픽쳐스 출시)
착신아리 2 着信アリ 2
일본 공포영화의 저력은 대단하다. 비단 한국 공포영화들의 벤치마킹 ‘1호’ 대상이 되어왔고, 할리우드에서 줄지어 일본산 공포영화의 리메이크작을 내놓고 있는 등의 ‘대세’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기술적인 완성도, 특히 ‘음향 설계’의 수준 역시 감탄스러울 정도의 수준이다. 일본 공포영화의 음향 설계는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설명하기는 곤란한 무언가가 있다. 연출 패턴이나 편집 방식이 그랬듯, 일본 공포영화는 심지어 음향 설계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괴담’의 내러티브 정서가 뿌리 깊게 배여 있다. 8월 말에 출시된 <착신아리 2>의 음향에서도 이런 일본산 공포영화만의 기괴한 특징이 (여전히) 느껴진다.
우선 음향 자체의 퀄리티만 놓고 봐도 할리우드 레퍼런스급 타이틀의 그것 준할 정도로 상당히 좋다. ‘심령호러’라는 장르적 특성상, 본 타이틀에는 조금은 과장된 인공 효과음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는데, 워낙 입체감과 분리도가 뛰어나 억지스럽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비단 공포감을 부추기는 인공 효과음뿐만 아니라, 비 소리 등과 같은 주변 음향들의 재생 상태도 매우 탁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관객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음향 설계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히 ‘채널간의 분리도’나 ‘이동감’과 같은 기계적인 요소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음향 요소간의 적절한 밸런스, 영상과 맞물리는 ‘타이밍’, 그리고 감상자의 뒷골을 강타하는 ‘의외성’ 등 이것은 사실은 ‘심리적 측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착신아리 2>의 음향 설계는 이런 면에서 대단히 지능적이라 할 수 있다. 비교적 뻔한 패턴의 영상 이미지 전개에도 불구하고 감상자가 본 타이틀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유는 80% 정도가 바로 이 잘 짜여진 음향 설계 구조 때문이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쿄코가 탄광에서 리리의 원혼을 만나 그녀의 소름끼치는 과거사를 몸소 체험하는 장면. 일본 공포영화 음향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5년 8월 26일 우성 엔터테인먼트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