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정대의 레퍼런스 DVD - 2005년 8월 (2)
2005-09-02
글 : 김정대

카우보이 비밥 5.1 Ch 박스세트 Cowboy Bebop 5.1ch DVD-BOX

저패니메이션 마니아들의 심장 박동수를 최고치로 올려놨던 ‘바로 그 타이틀’이다. <카우보이 비밥>은 ‘마니아용 아니메’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이미 국내에서도 많은 열혈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초인기작이다. 가히 ‘대중 컬트 아니메’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할리우드 장편영화에 필적하는 ‘체감상의 스케일’, 시리즈 전편을 수놓는 칸노 요코의 주옥같은 삽입곡들, 대작영화 뺨치는 정교한 음향 설계와 다양한 효과음의 존재 등 <카우보이 비밥> 만이 가진 기막힌 특질들은 ‘5.1 채널 버전’에 대한 기대감을 일찌감치 측정 불능 수준으로 높이기에 충분했다.

이미 살인적인 지출을 하며 다양한 패키지의 기존 출시 버전(컴필레이션 포함)을 모조리 구입하신 분들 중 대다수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번 5.1 채널 박스세트를 중복 구매한 사실을 놓고 보면, 그 기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터. 그리고 이번 박스세트는 ‘기꺼이 지름신을 영접한’ 이 모든 이들의 출혈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빼어난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우선 영상 면에서, 기존판과는 달리 이번 출시판은 프로그레시브 스캔을 안정적으로 지원하여 한층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미세한 정도의 향상에 그친 영상에 비해 음향 쪽의 진보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 하다. 단순히 2채널의 음향을 인위적으로 분리한 것이 아니라, 아예 5.1채널 환경에 맞춘 새로운 녹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역시 5.1채널이었던 컴필레이션 버전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이번 박스 세트의 음향은 보다 공격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임펙트와 이동감 면에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채널 간 분리도도 매우 탁월하며, 음향 요소의 배치도 대단히 논리적이어서 감상자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한 편의 근사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 것이다.

서라운드와 우퍼 채널의 활용도도 대단히 만족스러우며, 대사 트랙의 재생 상태도 매우 좋다. 우주선의 이동 음향에서부터 각종 폭발음, 그리고 채널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여음 효과까지 본 타이틀이 자아내는 입체 음향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 수준의 청각적 오르가즘을 제공한다. 한국어 더빙 트랙 역시 5.1채널로 녹음됐는데, 상태가 매우 좋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바로 메인 타이틀 곡 ‘Tank!'가 흐르는 각 에피소드의 도입부. 5.1 채널 버전을 열망하던 팬들의 갈증을 0.1초 만에 해소시킬 정도의 탁월한 음장감을 자랑하는 부분이며, 또한 향후 펼쳐질 서라운드 음향 파티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를 가늠하게 하는 ‘황홀한 예고편 격’ 오프닝 장면이기도 하다. (2005년 8월 24일 노바미디어 출시)

어썰트 13 Assault on Precinct 13

<어썰트 13>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범접할 수 없는 AV 퀄리티 수준을 재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타이틀이다. 제작비가 2천만 불에 불과한 저예산 영화임에도, 영상과 음향의 퀄리티는 1억불짜리 영화의 그것을 훌쩍 능가한다. DI 과정을 거친 영상은 단연 최상급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찍은 촬영분을 동일한 질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이 영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다) 디지털 색보정 과정이 필수적이었는데, 그 결과가 대단히 성공적이다.

주요 사건이 모두 밤 장면을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플롯의 특성상, 영상 면에서 표현하기 까다로운 요소가 지뢰처럼 널려있는 영화였으나, 정작 DVD의 영상에서는 답답함을 느낄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 탁하고 어두운 색 톤이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정돈감이 뛰어나 화사하다는 느낌마저 들며, 입자의 표현 상태도 안정적이어서 격렬한 총격 신 와중에도 흔들림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암부의 표현력 역시 수준급이며, 필름 잡티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DTS 음향은 영상 쪽보다 더욱 돋보인다. 음향 면에서 본 타이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총소리’다. 많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파워가 강조된 ‘과장된 총성’을 삽입해왔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총기 전문가의 의견을 100% 반영한 ‘실제에 가까운’ 총성을 삽입한 것이다. ‘리얼리즘의 극치’에 달한 총소리를 듣고 싶으신가? 그렇다면 <어썰트 13>이야말로 ‘모범 답안’이라 할 수 있다. 소음기를 장착한 총기의 발사음에서부터 몸싸움 시의 다양한 타격음, 각종 폭발음까지 이 타이틀이 선사하는 액션 음향은 그야말로 ‘예술적인’ 경지다.

음향의 분리도와 입체감, 이동감 역시 최고 수준이며 정신없이 액션 음향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대사 트랙이 묻히지 않는 점도 돋보인다. 저음의 밀도감 역시 탁월하여, 고급형 서브 우퍼 스피커를 가진 분은 아마도 간만에 ‘투자한 보람’을 느끼실 것이다.

AV적 측면에서, 본 타이틀은 초반 20분 정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따라서 필자는 본 타이틀의 베스트 신을 ‘모든 총격 신 장면’으로 뽑았다. (2005년 8월 10일 아이비전 엔터테인먼트 출시)

혈의 누

7월과 8월, 국내 DVD 시장 최고의 화제는 바로 한국 영화 타이틀의 선전이었다. AV 퀄리티는 물론이고 패키지 및 부가영상의 내용까지, 이제 한국 영화 DVD의 퀄리티는 할리우드 대작 영화와 견주어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급격히 향상됐다. 지난 8월 17일에 출시된 <혈의 누>는 이런 최근의 경향을 재확인시켜주는 우수한 타이틀이다.

메뉴 디자인에서부터 화질, 부가 영상의 양과 구성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합격점을 줄 만하다. 특히 화질은 한국 영화로서는 <남극 일기>와 더불어 ‘레퍼런스급’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단, ‘표준 레퍼런스급 영상’에 가까운 <남극 일기>에 비해 <혈의 누>의 영상은 탁하고 거친 질감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오해를 낳을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된 영상 컨셉의 결과일 뿐, 결코 퀄리티 상의 ‘결함’은 아니다.

<혈의 누>는 촬영 기간이 장장 240일에 달했는데, 이 기간동안 찍힌 촬영분은 대단히 불균질한 상태였다. (촬영 기간 동안 계절만 무려 세 차례나 변했다!) 문제는, <혈의 누>가 ‘5일간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플롯 상 후반 CG 작업을 요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런 태생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색보정을 통해 ‘통일된 색감과 질감’을 얻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다.

특히 괄목할만한 점은 암부의 표현력이 기대 이상으로 빼어나다는 점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도 어두운 편이지만, 주요 사건들 역시 거의 밤을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암부의 표현력은 영상의 퀄리티에 있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성공적으로 구현됐기 때문에, 감상자가 답답함을 호소할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CG 이미지와 합성된 몇몇 쇼트에서 굵은 디지털 노이즈가 보이고 배경이 흐려지는 등의 약점이 있긴 하지만, 결코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입자의 표현 상태도 대단히 안정되어 있으며 색감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탁월한 화질에 비해 음향 쪽은 다소 실망스럽다. (기실, 음향은 본 타이틀의 거의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공간감과 임펙트감이 떨어진다는 것. 서라운드 채널이 활용되고 있기는 하나, 음향 설계 자체가 그다지 다이내믹하지 못해 감상자를 관통하는 수준의 입체 음향을 창출하지는 못한다. 우퍼의 활용도도 실망스러운 편이어서, 무게감 넘치는 사운드를 선호하는 감상자에게는 큰 불만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음향 설계 자체가 ‘정적인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투자한 만큼’의 AV적 쾌감을 바라는 많은 DVD 유저에게 다소 아쉬운 부분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본 타이틀의 음향 퀄리티가 ‘형편없는 수준’까지는 아니니 구매를 고려중인 분은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길. 또, 조영욱 음악 감독이 맡은 스코어의 재생 상태는 아주 좋으니, 이런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바로 ‘피비’가 내리는 결말 부분. 본 타이틀의 뛰어난 영상 표현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멋진 장면이다. (2005년 8월 17일 시네마 서비스 출시)

시선집중: 이 장면!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중 “아뿔싸, 어째 이런 일이?”

스탠리 큐브릭의 ‘완벽주의’는 이제 세계 영화사의 전설이 됐다. 큐브릭은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하기 전, 철저한 준비를 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지만 막상 촬영에 돌입한 후에도 ‘완벽한 쇼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는 컨셉의 수정과 재촬영을 반복하는 감독으로도 악명이 자자했다.

‘결벽증’에 가까운 그의 완벽주의 성향은 스탭과 배우들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곤 했다. 배우들은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거의 몇 주 (심할 때는 몇 달)간 고된 리허설에 시달려야 했는데, 정작 촬영이 시작된 후 큐브릭이 ‘직감’에 의해 멋대로 장면의 연기 컨셉을 바꿔버려 그간 배우들의 고생을 ‘삽질’로 만들기도 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큐브릭은 (약간 과장해서) 배우가 지쳐서 죽을 때까지 재촬영을 계속하곤 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렇게 ‘완벽주의 정신’을 발휘하여 만든 그의 영화에는 ‘실수 장면’이 전혀 없을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결국 큐브릭도 ‘인간’일 뿐이다. <시계 태엽 오렌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실수 장면은 바로 ‘모자’와 관련이 있다.

영화의 제 1파트 - 영화는 안소니 버제스의 원작 소설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소설은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됐는데, 제 1파트는 알렉스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이전의 에피소드, 그러니까 세 명의 동료(딤, 조지, 피트)와 함께 온갖 ‘추잡한 짓’을 하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 에서 알렉스 일행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숱한 반복촬영의 결과 이 모자들이 ‘옥의 티’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장면 전환 간 인물의 모자가 벗겨졌다가 다시 ‘원상 복귀’하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 이 옥의 티는 제 1파트가 펼쳐지는 내내 목격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알렉스 일행이 빌리 보이 패거리와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 모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일이 대체 몇 번이나 있는지 한 번 세 보시길.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이 장면이다.

알렉스 일행이 듀랑고 95(Durango 95) 자동차를 훔쳐 ‘폭주’를 즐기는 이 신. 황당하게도 네 젊은이가 쓴 모자는 (세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모자 속에 접착제라도 발라 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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