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에는 주먹>을 만들던 좌파감독 마린 카미츠는 1970년대 이후 방향을 바꿔 작가영화의 배급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 MK2사를 설립하면서부터는 예술영화의 지원자로 자처해왔다. 클로드 샤브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모흐센 마흐말바프 등의 영화에서 제작자 마린 카미츠는 매번 등장하는 이름이었으며, MK2는 예술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아우르는 거대한 권력이 됐다. 여타 예술영화 제작사와 달리 MK2는 DVD 제작에도 열의를 보여 왔는데, 그 결과 MK2의 DVD는 만듦새의 보증수표가 된 지 오래다. 그중 박스 세트로 선보인 세 DVD를 소개하면서 MK2 DVD의 한 경향을 파악해볼까 한다.
<소매치기> <잔다르크의 재판> <돈> 외에 다큐멘터리 <소매치기의 모델들>이 별도 수록된 <로베르 브레송 작품집>은 기존의 <프랑수아 트뤼포 작품집>과 <찰리 채플린 작품집>을 잇는, 2005년의 야심찬 기획이다. 이 거장들의 작품집은 MK2가 영화의 제작에 관여하진 않았으나 판권을 구매한 뒤 다시 전 세계 배급을 꾀하는 것으로서 당연히 다언어 자막이 지원되고 풍부한 부록을 자랑한다. 향후 버스터 키튼과 해롤드 로이드의 작품들이 명성을 이을 예정이다.
두 번째 DVD군으로는 <자크 드와이옹·타비아니 형제·알랭 레네 작품집> 등이 있다. 대중성이 없거나 타 회사와 판권을 공유하고 있는 작품들이 이에 해당하는데, 루마니아의 숨겨진 거장 루시앙 핀틸리에의 네 작품이 수록된 작품집도 그런 경우다. 영어자막이 지원되는 <종착역> <아주 늦은>과 지원되지 않는 <고문기술자의 오후> <재현>이 섞여 있고, 다른 대표작 <떡갈나무> 등은 따로 출시됐으며, 부록도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어서 프랑스 밖의 지역에서 본다면 다소 아쉬운 컬렉션이라 하겠다.
근래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중국영화로 평가받는 <철서구>는 4장의 DVD로 구성됐는데, 영화를 연출한 왕빙은 MK2가 미래의 거장으로 소개하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MK2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홍상수, 왕빙 같은 감독의 작품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데에는 자신들이야말로 작가영화의 보루라는 자존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 DVD군의 경우 대부분 프랑스어 외의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게 단점이다.
그런데 MK2의 뛰어난 컬렉션을 질투해서일까? 일부 회사들은 MK2의 비싼 판권료와 거만한 자세, 거대 기업화를 종종 흠잡곤 한다. 하지만 열악한 예술영화 시장을 고려할 때 그 정도 고집은 오히려 필요한 게 아닐까 하며, 어쨌든 그들 덕에 많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해나가는 게 사실이다. 영화팬들이 MK2를 사랑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