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보면, 폴 버호벤이 네덜란드에서 만든 에로틱 스릴러 <네번째 사나이>는 그로부터 약 10여년 뒤에 일어날 하나의 신드롬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원초적 본능>의 상업적 성공이 야기한 섹스와 폭력의 무절제한 향연 말이다. 확실히 버호벤의 필모그래피에서 <네번째 사나이>는 <원초적 본능>과 한쌍을 이룰만한 작품이다. 예컨대 욕망의 덫에서 헤매는 남자 주인공, 남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매력적인 금발의 요부, 동성애와 양성애와 관련한 부도덕한 애욕, 그리고 악을 처치하지 않는 사악한 결말 등은 두 영화가 나눠갖는 공통분모들이다. 다만 <원초적 본능>에 비해 <네번째 사나이>가 가시적인 폭력의 강도 면에서 핏빛의 강도가 덜하며(이야기 속에서 단지 한명만이 죽음을 당한다), 더욱 ‘이지적’이라는 차이는 있다(암시적 의미가 담긴 상징들이 군데군데 심어져있다).
<네번째 사나이>는 네덜란드의 게이 소설가 제랄드 레브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작가이면서 동성애적 욕망을 느끼는 영화 속 주인공도 원작자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암스테르담에서 살고있는 작가 제랄드는 플러싱행 열차에 오른다. 그곳에서 열리는 문학 모임에서 연설을 할 예정이었던 것. 연설 내내 무비 카메라로 자신을 찍고 있는 여자가 제랄드의 눈길을 끌게 된다. 결국 그는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과 함께 밤을 지낸다. 크리스틴의 방을 훑어보던 제랄드는 그녀의 애인인 건장한 청년 헤르만의 사진을 보고 흥분을 느끼고선 실제로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크리스틴이 자신의 세 남편들을 모두 죽인 악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제랄드. 헤르만과 자신 중 과연 누가 크리스틴의 네번째 희생자가 될 것인가?
영화는 거미줄에 걸려 바둥대는 파리를 처치하는 거미의 쇼트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피할 수 없는 계략으로 희생자를 옥죄는 거미는 이 영화의 중심 모티프인 셈. 이를테면 크리스틴의 미용실 간판에도 원래는 ‘SPHINX’라고 씌어 있으나 H와 X가 빠져 SPIN’(네덜란드어로 거미를 뜻함)으로 읽힌다. 거미로 상징되는 치명적인 음모의 이야기 위에 버호벤 감독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몇몇 요소들을 얹어 놓아 또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영화는 거미의 쇼트와 예수의 이미지를 오버랩하면서 끝난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마치 종교적 속박에 의해 희생당하는 한 남자에 대한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징들과 암시들을 따져보는 사이 또다른 질문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제랄드의 시선(그의 꿈, 환상 등)을 통해 본 이 이야기는 얼마나 신뢰할만한 것일까? 정말로 크리스틴은 주위 남자들을 처단한 ‘마녀’란 말인가? 영화는 끝까지 여기에 대해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문학 모임에서 제랄드가 자기작품의 본질은 사실을 꾸며내 사실과 비사실을 구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영화는 오히려 그의 이 말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제랄드의 강박적인 공장의 현실은 서로 뒤틀려 있고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다소 과장되게 말한다면, <네번째 사나이>는 잉마르 베리만 식의 내면적 강박증을 버호벤 식의 폭력적 엑스타시로 실어나른 영화라고 할만하다.
이지적인 센세이셔널리스트
감독 폴 버호벤 감독
폴 버호벤(1938∼)은 네덜란드 출신으로는 거의 드물게 세계적인 명성(또는 악명)을 얻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의 영화들은 극도로 자극적인 폭력과 섹스를 보여주거나 죽음에 대한 탐닉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흔히 그는 많은 ‘점잖은’ 평자들에 의해 영악한 센세이션 메이커 정도로 간단히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로보 캅>(1986)이나 <토탈 리콜>(1986) 같은 상업적 ‘폭력’영화들이 기억의 문제와 관련된 인간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구한다는 점은 평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한때 버호벤은 표현 방식과 주제에서의 과도함을 통해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지적인 센세이셔널리스트’로 평가됐던 것이다. 비록 버호벤 특유의 힘이 소진됐다는 증거인 최근작들이 다시 그런 식의 명칭에 이의를 제기하긴 하지만.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던 버호벤이 영화와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은 해군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부터. 방송사에서도 같은 작업을 했던 그는 71년 <나는 무엇을 보는가?>라는 작품을 통해 장편 극영화 세계에 뛰어들었다. 버호벤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첫 작품은 <사랑을 위한 죽음>(Turkish Delight, 73년). 조각가와 중산 계층의 여성 사이의 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버호벤의 에로티시즘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초기 예이기도 하다. <네번째 사나이>의 상업적 성공 이후 그는 시대 모험극 <살과 피>(1985)를 미국과 네덜란드 합작으로 만들었고, 이후로는 할리우드에 둥지를 틀어 현재까지 작업하고 있다. <원초적 본능>(92년), <쇼걸>(95년) 등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온 그의 최근작은 SF 액션영화 <스타쉽 트루퍼스>(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