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움직임은, 무엇이든 연계된 총체적인 거다”
<형사 Duelist>의 예정된 기술 시사는 늦어지고 있었다. 이명세가 또 막판까지 ‘완벽’을 향해 다듬질을 하고 있는 것일 거라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경험했던 주변 사람들은 추측했다. 이유를 알고보니 중도에 약간의 믹싱 사고가 있었다. “부족하다는 말은 변명밖에 안 되는 것 같았고,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보여주기는 더 싫었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사람을 다 붙잡아놓고” 기어이 완성하여 간단한 기술 시사를 거친 뒤 언론 시사까지 마쳤다. 그래도 부족한 듯싶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명세는 “내일 새벽부터 프린트를 뜬다. 오늘 하루밖에 손볼 시간이 없다”며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양수리로 향했다. “내 모토가 뭔가, 끝까지 한다는 거 아닌가. 지금은 아드레날린이 분비돼서 괜찮다”며 그는 피곤한 기색없이 드라마주의자들에 대한 강한 질타로 말문을 열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뭔가.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 아니, 영화가 드라마인가? 왜 영화가 드라마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음악과 시에 가까운 건데, 연극과 소설로 몰아가서는 드라마가 좀 그렇다느니, 어쨌다느니. 드라마 하려면 왜 영화를 하나. 사실은 플롯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드라마라고 이야기한다. 플롯의 복선과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하는 거다. 대체로 플롯과 내러티브를 착각하는 것 같다.
-<형사 Duelist>는 최소한의 서사 구조만을 취하면서 그 이외의 모든 힘을 이미지의 구성, 즉 본인이 누누이 강조하는 ‘움직임’에 쏟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최초의 내용은 여하간에 방학기의 원작 <다모>다. 왜 이 원작이 그 움직임의 세계에 대한 기초 서사가 되어야 한다고 느꼈는지 궁금하다.
=액션에 관해서야 오래전부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실 <형사…>의 앞부분은 내 영화 <디비전>에서 온 거고, 뒷부분도 내 영화 <미리암>에서 갖고 온 거다. <다모>를 하겠다기보다는 여형사라는 어떤 것이 있고, 사주전 얘기가 현대와 연결되는 것 같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별 상관은 없다. 방학기 선생님 만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
-영화 속의 어떤 내용들이 <디비전>과 <미리암>의 골수였는지 장면별로 설명해줄 수 있나.
=집단의 움직임으로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 그게 <디비전>에서 가져온 거다. 원래 미국에서 시나리오 썼을 때는 비밀요원과 마피아 등이 그랜드 센트럴 역을 배경으로 칩이 들어 있는 핑퐁볼 하나를 놓고 막 혼합되고 섞이고 하는 거였다. 핑퐁볼이 그랜드 센트럴 역을 채워버리는 거였다. 튕기고 잡고 하는 거기서 뭔가를 찾는 그 움직임을 보여주려고 했던 거다. <형사…>의 초반 장터장면이 그렇다.
-그렇다면 <미리암>에서 가져온 후반장면이란 무엇인가.
=마지막의 헤어짐. 바로, 유령과의 헤어짐이다. 유령과의 마지막 만남, 정사 같은 칼싸움 장면들이 대결 구도로 온 거다.
-빛을 완전히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사극에서 할 수 있는 흥미 중 하나라고 일전에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점에서 남순과 슬픈눈이 결투를 벌이는 어둠과 빛이 완연하게 갈린 돌담길이 돋보인다.
=<형사>의 돌담길 장면 같은 건 사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시나리오에도 있었는데 못 찍었다. 골목길에서 숨고 숨바꼭질하고 뭔가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건 세트여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 골목길을 세트로 짓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했던 걸 이번에 갖고 온 거다. 영화가 작게 보일까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데뷔작으로 무술 사극을 고려하기도 했었는데, 그때라면 지금처럼 움직임을 강조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당하는 건데. 그때보다는 조금 더 훈련된 거다. 그렇다고 해서 <개그맨> 때부터 그런 움직임과 부딪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때도 마찬가지고. <지독한 사랑> 때도 마찬가지고. 오죽했으면 강수연이 나보고 “감독님 영화를 하려면 기계체조를 배워야겠다”는 말까지 했으니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움직임이라고 매번 어느 자리에서나 강조하고 있다. 액션영화라기보다는 영화액션이라고도 했다. 그 움직임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움직임이라는 건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번 영화 속에서 그건 총체적인 거다. 끊어지지 않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어떤 느낌… 소리, 색감, 빛, 음악, 뭐든 연계된 총체적인 움직임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전까지는 일종의 ‘사물의 상태’를 포착하는 것에 더 주력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 그런 것도 있다. 사물을 보는 거리감. 어떤 느낌에서 어떤 각도로 찍어야 그걸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면서 하나하나의 문장들을 좇아가는 거다. 일물일어설이 영화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어떤 느낌을 한숏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들. 움직임 속에서 점점 더 성장해간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도 그것이 총체적으로 같이 가는 거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계기로 그게 허용된 거다. 그 영화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이제 이 정도까지 나올 수 있는 거다.
-사물의 상태를 포착하는 데에 집중하던 것에서 움직임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 변화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 이유는…. 비교를 좀 하자면 예전의 영화들을 오즈 야스지로적이라고 느꼈다면, <형사…>에 당도해보니 구로사와 아키라적인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적인 느낌에 대해서 해줄 말이 있을지, 또는 어떤 점에서는 연관이 있다고 말할 만한 것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세 감독이 합쳐지면 세상에서 완전한 감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구로사와, 오즈, 미조구치. 구로사와의 영화는 복잡한 걸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난 야망과 권력이라는 좀더 단순한 걸 한다. 제일 복잡한 게 오즈의 세계다. 정말 일상적이지만 모래알 속의 우주와 같은 거다. 미조구치는 여성적이지만 오즈와 같은 반열에 있는 거고.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맏형의 교훈적인 영화. 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초반 현란한 장면들의 연결을 보고 있으면 잠시 구로사와의 액션영화들이 떠오른다. 이번 영화에서 유독 많이 쓰인 것이 와이프(Wipe, 장면전환 기법의 하나로 화면이 한쪽으로 사라지면 두 번째 화면이 반대쪽으로 나타나는 것) 기법인데, 와이프 하면 또 구로사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지 않나.
=맞다. 와이프를 적극적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동차처럼 써보겠다고 생각한 거다. 내 추측으로는 구로사와가 와이프를 쓴 건 빠른 공간 전환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걸 나는 더 적극적으로 쓰는 거다. 세상에 구닥다리라는 건 없다. 어느 때 어떻게 새롭게 해석되느냐의 문제다. 구로사와가 장면전환으로만 쓴 거라면, 나는 철저하게 와이프를 장면전환만이 아닌 영화적인 모든 것으로 쓴 거다. 단순히 편집적인 리듬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총체적 리듬…. 이 영화에는 더 겹이 많다고 생각한다.
-왜 와이프인가.
=칼! 우선 칼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칼의 느낌이 중요했고, 갖가지 칼소리를 사운드에 숨겨놨다. 공간전환을 더 확장시키는 역할도 하고.
-공간전환이라고 하니 생각나는데, <형사…>에서 와이프 기법의 효과는 굉장히 다양하다. 좌우 와이프만 있는 게 아니라 상하로 오르내리는 와이프도 있고, 일반적으로 쓰이듯 장면전환의 몫을 할 뿐만 아니라, 트래킹과 함께 쓰이면서 가상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숏의 방향전환에도 쓰이고, 숏 사이즈의 변화에도 쓰이고, 실제의 공간감을 늘렸다 좁혔다 하는 영화적인 거리감을 확장하는 데에도 쓰이고, 그럼으로써 관객의 시계를 확장시킨다.
=바로 그거다. 관객도 그 점을 봤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영화의 마술 아닌가? 그게 영화다. 일상에서의 마술적인 순간. 황기석 촬영감독도 이상할 수 있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긴 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넘치지 않게만 거리를 바꾸면, 거기서 생기는 이질감, 불협화음 같은 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김성수 감독도 어제 와이프에 대한 그런 비슷한 질문을 하더라. 와이프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쓴 거다. 보는 사람이 갖고 있는 상상력에 따라서 다르다. 나는 단지 겹쳐지는 느낌이 아니라, 열리는 느낌으로 본 거다. 적극적으로 더 많이 쓰려고 했었지만, 혼동을 초래할 수도 있어서 오히려 자제한 편이다. 우리 영화에는 인간 와이프, 와이프 전문배우까지 있지 않았겠나! 타이밍이 중요했다. 많이 하니까, 나중에는 아주 잘하더라. (웃음)
-와이프만큼이나 많이 사용하는 것이 디졸브다. 그런데 그 디졸브는 인물들을 연결하는 감정의 선 같은 것으로 작용한다. 남순과 슬픈눈 사이를 연결하는 디졸브는 둘 사이의 교감을 보여주는 시각장치 같다는 느낌이다.
=쓴다면 적극적으로 쓴다가 내 주의다. 디졸브는 기억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남순과 슬픈눈은 그런 교감의 느낌, 중첩된 어떤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몇몇 디졸브는 혼돈과 섞임의 이미지를 생각했던 것도 있다. 하나만 위해서 쓴 건 아니다.
-핸드헬드는 혹시 생각 안 해봤나.
=나는 핸드헬드를 싫어한다. 내가 잘 모르면 쓰질 않는다. 적극적으로 쓴 건 슬픈눈과 남순이 시장터에서 마주쳐 “항자불 어쩌고” 할 때다. 이 두 사람의 움직이는 느낌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영화는 아니지만, 어떤 영화의 핸드헬드를 보다가 저거 팔목을 분질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다.
-움직임이라는 걸 활동이라고 이해할 때, 이 영화는 활동만이 아니라 포즈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움직임을 위해서는 포즈도 중요하다. 미장센은 인생의 법칙과 똑같다. 포즈의 상태라도 시간이 움직이든, 뭐가 움직이든 다 움직인다는 거다. 내가 아직 제대로 못 쓴 것 같은 게 프리즈 프레임이다. 언젠가는 한번 제대로 써보고 싶다. 나는 문자 그대로의 용어를 찾아가는 거다.
-디졸브에 대한 사용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간은 만화 같다. 배우들의 역할 때문인 것 같은데 슬픈눈은 순정만화에서나 가능한 미남자로 나오고, 남순 같은 경우는 왈가닥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는 남순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를 생각했고, 슬픈눈은 첫 사랑이기 때문에 좀 판타지적인 인물로 보여줬으면 했다.
-남순의 표정은 독특한데, 일반적으로 잘 짓지 않는 표정들, 다소 정형화된 표정 연기 때문에 더 만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는 괴로워>에서 상민이가 졸다 깨는 그런 느낌. 사진의 한 부분. 하품하는 사람, 참는 사람의 표정. 그런 느낌을 재현시켜본 거다. 사실 가장 복잡한 캐릭터는 송영창이 연기한 병조판서다.
-안 그래도 병판이 등장했을 때 얼굴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보다가 몇초 뒤에야 이유를 알았다. 턱수염은 있지만, 콧수염은 달려 있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게 이 영화의 어떤 컨셉을 반영하는 재미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기존의 있는 것 중에 있고 싶은 것만 있게 하고, 없애고 싶은 것은 없애는 것.
=사람들이 그걸 나중에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병판 대감이 뭔가 야비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에도 <남자는 괴로워> 때 윤주상 같은 경우는 대기업의 부장인데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도 그런 느낌이 안 나더라. 뭔가 빈티가 났다. 근데 머리가 딱 휘어 올라가니까 이미지가 정해지고 옷을 입히니까 되더라. 최종원씨도 애들 옷입히고 하니까 다른 뭔가가 돼버리더라. 운명처럼 뭔가가 되면 나는 거기에 따라간다. 병판도 수염이 다 붙어 있는데 너무 점잖아 보이더라. 근데 분장할 때 한쪽 수염을 떼고 보니까 그 느낌이 괜찮더라. 다들 이상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털에도 브리지를 좀 넣고. (웃음) 서사를 설명하는 시간이 적으니까 뭔가 보여질 때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필요해지는 거다.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다. 남순과 슬픈눈이 무술 동작을 펼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를 보면 서로에 대한 감정의 교감이 중심에 있기보다, 관객을 겨냥한 직접적인 동작의 전시적 느낌이 더 강하다.
=이번 영화는 철저히 관객이 보는 각도에서 찍으려고 했다. 시나리오도 관객 입장에서 썼다. 스타가 카메라를 보고 있으면 그게 어떻게 이화가 되는 건가? 그걸 보고, 아,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없다. 그 두 사람의 느낌은 관객이 느껴야 한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지만 중요한 건 영화적인 연기, 스크린 속의 진실과 스크린 속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연극적인 연기의 이론과 법칙이 아니다. 그건 영화연기가 아니라 연극연기를 하는 거다.
-초반에는 비주얼과 음악을 비틀어서 가겠다는 도전적인 느낌을 받는데, 남순과 슬픈눈의 감정이 정점에 올라 있을 때는 오히려 음악이 비주얼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감정이 상투를 끌고 들어가는 것 같다. 그게 아쉬운 부분이다.
=그게 바로 덜 된 부분이다. 정리할 부분이고. 정리한 뒤에 다시 얘기하자. 이 영화에서 긴장된 멜로는 사실 위험한데, 아직 시도를 못해봤다. 준비가 덜 돼서. 남순과 슬픈눈의 감정적인 장면에 록 버전과 멜로 버전을 같이 깔아서 불협화음을 만들 거다. 근데 그게 기술적으로 묶기가 너무 힘들다. 오늘 바로 그걸 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