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키아로스타미, 환경영화제 ‘길’ 내며 내한
2005-09-15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사진 : 김태형 (한겨레 기자)
“사진이 영화보다 개인적으로…즐겁다”

“내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이리저리 왔다갔다, 좌충우돌하며 걸어온 과정이 바로 하나의 길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65)가 내한했다. 지난 8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2회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작 <키아로스타미의 길>을 들고 왔다. 32분 분량의 흑백 다큐멘터리인 이 영화는 30년 동안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찍어온 영화와 사진에 등장해 왔던 길에게 보내는 헌사다. 10일 오후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만났다.

“이란 시골의 고즈넉한 흙길과 여기 서울의 번잡한 도로는 결국 같은 길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길에도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 기록되고 아름다운 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1970년 <빵과 골목길>이라는 단편영화로 데뷔한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인상적인 길이 펼쳐져 왔다. 지금까지 그가 찍어온 사진 1000여 장도 대부분이 길에 대한 기록이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체리향기>나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에도 길의 풍경이 응시된다.

“영화나 사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무의식적으로 머릿 속에 있는 그림과 내용을 영상으로 옮겼는데 한참 지나고 보니 그게 모두 길에 관한 것이었다”고. 개막작에서 자신이 찍어온 사진을 영화 속에 삽입한 그는 개인적으로 사진 작업이 영화를 찍는 것보다 즐겁다고 말했다. “드라마와 대사, 음악 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늘 받지만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질문이나 해설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막강한 경쟁자들과 싸워야 하는 피로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도 그가 꼽는 사진작업의 장점이다. 그는 “최근 한국영화의 수준이 높아지고 시장이 커졌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의 작가 감독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관객과 만나기 힘든 현실에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번에 와서 처음 듣게 됐다”며 “이란의 경우 정부의 지원 하나없이 영화를 시작하려는 어린 감독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길이 그의 영화에서 가장 큰 주제라면 이 길을 걷는 ‘어린이’들도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세계에 알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아이들은 천진하고 사랑스럽지만 냉정한 어른들로 인해 상처받기도 하고 어른들 못지 않게 고단한 일상을 꾸려간다. 그는 “아이들도 어른과 함께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이고 어른들 못지 않게 바쁘고 힘겨운 자신들의 세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어린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과 내 작품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오는 10월 열리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뉴커런츠)의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97년 부산영화제 초청으로 한국에 처음 왔던 그는 “당시 내 작품이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때였는데도 관객들이 던졌던 비상한 관심과 매우 총명한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또 젊은 감독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사를 맡은 게 기쁘지만 그럼에도 마치 운동경기처럼 영화를 심사하고 판정해야 한다는 건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심사위원장을 맡게된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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