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진가신 감독의 <퍼햅스 러브>, O.S.T 발표 행사
2005-09-28
글 : 권민성
사랑은 뮤지컬 리듬을 타고

추억은 우리를 과거에 묶어놓는가, 앞으로 몰고 가는가? 추억은 중요한가? 그것들은 잊혀진 뒤에 소중해지는가? 사랑의 기억에 관한 영화 <퍼햅스 러브>는 진가신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첫 뮤지컬영화다. <디 아이>의 제작자로도 활동을 했던 그가 <첨밀밀> 이후 9년 만에 로맨스영화의 감독으로 돌아온 셈. 제62회 베니스영화제 폐막작이었던 이 작품은 120여억원이 투자된 대규모 뮤지컬이다. 홍콩에서는 무려 35년 만에 만들어진 대작인데다, 금성무, 장학우, 주신과 함께 지진희가 주요 배역에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올 겨울 개봉에 앞서 <퍼햅스 러브>의 O.S.T와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는 대규모 기자회견이 지난 9월6일 오후 중국 베이징 하얏트호텔에서 열렸다.

<퍼햅스 러브>는 세 연인의 삼각관계에 관한 내용이다. 영화과 학생 린쟝동(금성무)은 수엔(주신)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사랑 대신 성공을 찾아 떠난다. 10년 뒤, 수엔은 유명감독인 닙웬(장학우)의 도움으로 영화계 스타가 되고, 린쟝동 또한 스타가 되어 있다. 독특한 점은 이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가 숨어 있다는 점이다. 뮤지컬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자가 자상한 서커스 주인에게 구출된 뒤, 옛 애인의 기억을 되찾으면서 벌어지는 삼각관계 이야기다. 같은 뮤지컬에 출연한 린과 수엔은 뮤지컬 줄거리와 실제 이야기에서 우연의 일치를 발견하면서, 옛 기억을 되찾게 된다.

춤추고 노래하는 지진희, “즐거운 도전이었다”

영화에서 지진희는 영화 속과 밖의 인물들이 잊어버린 기억의 필름을 연결해주는 천사 ‘몬티’ 역을 맡았다. 불과 10여분밖에 등장하진 않지만, 극 전개상 비중있는 역이다. <대장금>의 민정호 종사관이 노래하고 춤추는 천사가 된다니, 언뜻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어 대사 연기까지 하랴, 고생이 훤히 보였다. 영화를 마친 그는 “춤, 노래, 중국어 모두 즐거운 도전이었다”라며 소감을 얘기했다. 처음 그가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미 영화가 70% 촬영된 상태로, 남은 촬영 기간은 불과 일주일이었다. ‘진가신 감독의 팬으로서 훌륭한 영화를 어설픈 춤과 노래로 망치고 싶지 않아 출연을 고사했다’는 그는 촬영분을 10여분 정도 본 뒤 마음을 바꿨다. 그에게 요구된 것은 화려한 춤이나 가창력이 아니었다. 그는 ‘우르르 몰려서 추는 인도 춤이나 소리지르면서 뛰어노는’ 것으로 역을 무사히 소화해냈다.

할리우드보다 발리우드에 가까운

<퍼햅스 러브>는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촬영된 화려한 무대와 서커스 공연, 가무장면 등 볼거리가 많다. 스케일이나 퀄리티 면에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못지않다. 그러나 <퍼햅스 러브>는 기존의 스타일을 따라가지 않고 동양적인 뮤지컬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이같은 결과는 <와호장룡>의 촬영감독이었던 포덕희나 발리우드의 춤 안무가 파라 칸 등 엘리트 스탭들의 공이 컸다. 특히 칸이 지휘한 인도식 군무는 어느 뮤지컬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선사한다. 인도 출신의 칸은 발리우드 장르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데 성공, 2004년 토니상에서 최우수 춤 안무가 후보에 오른 인물. 최근엔 <오페라의 유령>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최신작 <봄베이 드림즈>의 안무가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녀는 “4∼5시간 수면에 14∼15시간 촬영의 강행군을 하는 홍콩 영화인들의 작업 태도가 인상적”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음악은 <성원> <엑시덴탈 스파이> <동경공략> <이도공간> 등의 베테랑 작곡가 피터 캄이 맡았다. <퍼햅스 러브>의 음악에 대해 캄은 “<교차로>(十字街頭)는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전형적 뮤지컬 스코어이다. 이에 반해 <퍼햅스 러브>(如果...愛)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진지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라스트신의 <퍼햅스 러브>는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로 ‘가신’(歌神) 장학우가 불렀다. 그는 진가신 감독의 분신 같은 존재인 극중 감독 역을 맡았다. 그의 첫 대사는 “내가 왜 뮤지컬을 찍지?”였는데, 그는 이 역을 위해 여러 감독을 모델로 삼았다고.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설랑호>(雪狼湖/Snow Wolf Lake)라는 뮤지컬을 막 끝낸 상태라 부담없이 연기했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교차로>는 <수주>로 파리영화제에서 최우수 여배우상을 받은 중국의 여배우이자 가수로도 활동 중인 주신이 직접 불렀다. 주로 보사노바 계열의 소곤거리는 듯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온 그녀는 이번엔 과장된 발성으로 불러야 했다. 특히 후렴구의 ‘아이메이요’(사랑이 없다!)란 가사는 이상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현실적인 인물인 수엔의 정서가 고스란히 뿜어져 나오는 부분이다. ‘과거에 대해 유일하게 쓸 만한 것은 그것이 과거이고 난 그것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라고 외치지만 수엔은 결국 깨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그것이 바로 어쩌면 사랑(Perhaps love)이 아닐까.

뮤지컬은 사랑에 취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진가신 감독 인터뷰

-뮤지컬의 제작 동기는.

=영화는 결국 대형 은막 위의 예술이다. 집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내는 가장 큰 힘은 역시 대형 화면에 걸맞은 규모라고 생각했다. 내가 찍고 싶은 작은 사랑 이야기, 멜로드라마 소품의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 고민했다. 뮤지컬영화의 장점은 시대, 지역,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전세계 모든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퍼햅스 러브>에서 뮤지컬의 역할은.

=이 영화에서 뮤지컬은 마치 술과 같은 존재이다. 두 남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에 취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개물이다. 개인적으로 <교차로>신을 찍을 때 가장 걱정을 많이 했다. 현장에서 처음으로 전형적인 뮤지컬장면을 찍는 거였는데,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긴장이 됐다. 이번 영화에서 뮤지컬은 영화 속 남녀주인공들의 감정을 더 높은 경지로 이르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인도 안무가를 초빙했는데, 평소 인도 뮤지컬을 많이 봤나.

=인도영화 애호가는 아니다. 그러나 인도 뮤지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은 영화의 정신이다. 어느 순간 창조적으로 확 튀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마치 홍콩의 초기 영화에서 받던 느낌과 비슷하다. 인도의 발리우드영화와 홍콩영화는 이념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두 문화간에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도 생각지 못한 효과를 펼치기 위해 인도까지 직접 가서 안무가를 섭외했다. 파라 칸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진희를 캐스팅한 이유는.

=1년 동안의 캐스팅 과정을 거쳤다. 지진희는 신뢰감이 생기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배우다. 그가 맡은 천사 캐릭터는 주요 인물 3인의 추억들을 되새겨주는 역할이다. 캐릭터를 볼 때 관객이 편안한 느낌을 가져야 하는데 지진희 본래 매력이 온순하고 순수한 것을 갖고 있어서 캐릭터에 부합했다. 그는 언어장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다. 대사 처리 문제나 최근 며칠 동안 계속된 녹음 작업이나 힘들었을 텐데 정말 열심히 해준 작업태도가 인상적이다. 결과에 만족한다.

-제작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퍼햅스 러브>는 홍콩에서는 35년 만에 찍은 대규모 뮤지컬이며, 아시아 지역에서도 전례를 찾을 수 없다. 나는 기존의 대작 영화, 특히 뮤지컬영화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큰 화면과 가무 신이 나오는 일반적인 뮤지컬은 일종의 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장면이 시작되면 영화 스토리가 중단되는 게 불만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뮤지컬과 드라마가 어떻게 평행을 이루는가가 중요했고, 그 문제는 영화 속 영화로 풀려고 했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내부의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기본 구도이면서, 동시에 영화 속 영화 역시 삼각관계라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이처럼 영화 속 뮤지컬을 통해서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식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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