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어느 일본 여배우의 초상, 미야자와 리에 [1]
2005-10-04
글 : 김영희 (한겨레 기자)
도쿄에서 만난 미야자와 리에, ‘내 멋대로’ 뜯어보기

1992년 바다 건너온 한 일본 소녀배우의 누드집은 ‘누드냐, 예술이냐’라는 논쟁을 일으키며 근엄한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결국 재판정까지 갔다. 한국 서점가에 비닐로 포장된 누드집이 당당하게 진열되었던 건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하긴 아직 배꼽티도 등장하지 않았던 때였다. 92년은 한국 여가수 유아무개씨의 누드 사진집이 나왔고, <즐거운 사라> 사건이 일어났던 해였다. 미야자와 리에의 <산타페>는 꽁꽁 숨겨서 더 음란했던 90년대 한국사회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잊었던 사이, 그녀는 아이돌에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배우가 되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서 고혹적인 한순간을 빚어내는 건, 꿈결처럼 흘러가는 영상이나 고독한 시간을 똑똑 두드리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뿐이 아니다.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된 ‘하루키 월드’의 가운데엔, 숨막히는 아름다움과 함께 다 길어낼 수 없는 고독함을 메마른 몸에 가득 안고 있는 미야자와 리에가 있다. 한국 관객에겐 사진집, 유명 스모선수와의 약혼발표와 파혼, 자살 미수 사건 등 십수년 전의 시끌벅적한 스캔들로만 기억됐던 그녀를 ‘배우’로 다시 불러내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녀를 만나는 약속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도 안 되고, 질문은 미리 제출한 내용의 범위를 넘지 말라…. 한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기기가 예사인 도쿄의 9월, 시부야의 한 스튜디오에서 앞뒤로 일정이 꽉 차 있는 그녀를 겨우 만날 때쯤엔 조금 심통스런 마음까지 되어버렸다. 어쩌랴, 원래 연예인들 관리가 쫀쫀할 정도로 엄격한 일본인데다 그녀는 가장 잘 나가는 이른바 ‘메이저’다.

“자, 시작할까요?” 보통 사람들보다 1도 정도는 키가 높은 예의 그 가는 목소리로, 상냥하고 싹싹하게 말을 걸어왔다. 작품에 대해서는 신중하지만 정열적인,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선 예의바르지만 냉정한 대답이 돌아온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유명해졌고, 너무 이른 나이에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도 경험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데뷔한 이래 20년 넘게 톱으로 살아오며 그녀는 자신을 적절히 지키는 방법을 터득한 프로일 터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래가지곤 안 되겠다. 결국 내 멋대로 그녀를 뜯어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이건 도쿄에서 만난 미야자와의 이야기에 덧붙인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문이다.

“새파란 하늘보다는 구름과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이, 아무것도 없는 해변보다 쓸쓸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바닷가가 더 좋듯이, 50%는 표현해도 나머지 50%는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영화가 좋아요.”

일본에서 대배우로 성장한 아이돌 스타의 예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미야자와 리에에겐 뭔가 극적인 느낌이 있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기억을 저편으로 밀어내고 최근 몇년간 그녀는 일본 영화계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1995년 텔레비전 드라마 <북의 나라에서>로 오랜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숲속의 요정 같던 18살 싱싱한 아이돌이 아니었다. 얼굴에 각이 드러나 퀭할 정도로 커보이는 눈, 바싹 말라버린 가슴의 그녀는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부유하는 공기처럼 보였다. 그뒤 연극 몇편에만 출연하던 미야자와는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찾게 된다. 1988년 10대 시절 <우리들의 7일간 전쟁>으로 신인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그녀가 화려하게 돌아온 건 2000년대다. 2002년 홍콩영화 <유원몽경>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2002년 <황혼의 사무라이>, 2004년 <아버지와 산다면>으로 그녀는 각각 다음해 대부분의 영화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연극 <투명인간의 증기>로 연극상과 문화청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예능인’으로 표창까지 받았다. 야마다 요지, 구로키 가즈오라는 노장들과의 작업에 이어 현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대극 <꽃보다도 더욱>을 막바지 촬영 중이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그녀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건, 가수활동이나 오락 프로그램 등을 쉴새없이 겸업하는 게 보통인 여느 연예인과 다른 그녀의 행보 때문이다. 텔레비전은 띄엄띄엄 특집드라마에 출연하는 정도이고, 그나마 방송 중인 몇편의 CF도 그녀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해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고른 느낌이다. 서양계 아버지의 혈통을 느끼게 하는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졌음에도 일본인들은 그녀에게서 고전적인 일본 미녀 여배우를 연상한다. 특히 2년 전 시작한 한 녹차음료 광고는 ‘기모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예인’, ‘투명하고 깨끗한 이미지’라는 그녀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를 굳혔다. 결코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는, 구름 사이 보이는 새파란 하늘처럼.

<토니 타키타니> 촬영현장에서. 토니 역의 잇세 오가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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