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겐 행인 1, 내 인생에선 주인공 - 임창정+황정민
2005.07.07 청담동 웨딩숍 골목
7월7일 청담동의 한 웨딩숍 앞 좁은 골목이 부산하다. 진열된 웨딩드레스를 바라보며 식도 올리지 못하고 함께 살고 있는 선애를 떠올리며 눈물 짓는 창후에게, 중요한 사건을 수사 중인 나 형사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여주며 뭔가를 묻는 장면이다. 영화상으로도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긴박한 순간이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 아래 진행되는 촬영현장도 뭔가 정점에 달한 듯 팽팽하다. 촬영종료일로 정해놓은 날은 다가오고, 장마와 겹친 촬영은 자꾸만 지연되고, 저마다의 스케줄로 바쁜 배우의 일정을 조율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지긋지긋한 일상 속에서 아주 사소한 인연 하나가 세상을 밝아오게 만드는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 역시, 화창한 날씨, 뜸하게 지나다니는 행인들처럼 아주 작은 행운에 불과할 텐데. 관망하는 이마저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창후에게서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한 나 형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과 자기 감정에 빠져 있는 창후가 프레임 안에서 서로 겹치는 위치에 잡힌다는 이유로 몇번의 NG가 반복된다. 카메라 앞의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날것이라면, 제각기 절박한 사람들이 겹치고, 포개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진짜를 흉내내는 가상세계인 탓이다.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두 사내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모습이 짧은 순간 보여진다. 이 세상을 가득 메운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다르고 또 같다는 변함없는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는, 진짜보다 진짜 같은 정교한 가짜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창후의 슬픈 감정을 살피면서 황정민이 프레임인하는 순간까지 지시해야 하는 민규동 감독의 손에는 빼곡히 메모가 들어찬 시나리오가 들려 있다. 배우와 장소의 스케줄에 맞춰 진행되는 촬영, 어떤 커플은 뒷장면부터 찍고, 누군가는 중간부터 찍어나가는 등 촬영 순서가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기술적인 것에 함몰되거나 그저 찍어내는 것에 급급하지 않기 위해, 신별 중요한 화두 등을 적어”놓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많은 인물들, 수많은 사건들이 가득한 영화지만, 민규동 감독은 다양성 못지않게, 통일성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감독은 꼼꼼한 사전조사와 인터뷰를 거쳐 캐릭터를 만들었던 데뷔작과 달리, 실제적인 조사없이 전형성을 획득한 인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지석이든 창후든 성원이든 나 형사든, 영화 속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가, 결국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겪는 일생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저마다 고통이나 외로움의 수위는 다르지만, 결국 획득하고자 하는 행복은 아주 작고 공통된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매그놀리아> <러브 액츄얼리>처럼 비슷한 구성을 지닌 영화를 보면서, “그처럼 화두가 선명하고 파워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민규동 감독. 그처럼 많은 이들이 여러 군데에서 마주치고 얽히느라 어려움이 배가 된 게 아닌지 물었지만, 아쉬움 가득한 대답이 돌아온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이 서로 얽혀야 된다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네트워크가 강한 하나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증오의 대상인 사람이 또 다른 이에게는 둘도 없는 사람의 대상이 되는 것 같은 아이러니가 더 많이 느껴졌으면 했다.”
무거운 하늘이, 결국은 굵은 빗줄기를 참지 못한다. 아무래도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촬영을 접는 감독과 스탭들의 표정이 어둡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여곡절 끝에 재촬영 일정을 진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몇주가 흐르고, 편집실에서 만난 감독은, “촬영은 차라리 쉬웠다”며 한숨 짓는다. 어디, 세상을 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수많은 슬픔과 기쁨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는 법이다. 몇번에 걸친 촬영장 방문 이후. “힘들었지만, 재밌었다”는, 자칫 단순한 인사치레처럼 들릴 법한 감독의 회고는, 더없이 절절하고 진심어린 것으로 다가왔다.
다다익선이라는 말, 누가 했던가
주요 스탭들이 말하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이래서 힘들었다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컨셉 잡기 - 홍보·마케팅/ AM시네마 한지선 대리
한줄로 규정하기 힘든 스토리여서 컨셉 잡기가 힘들었다. 홍보과정에서 커플별 스토리를 일일이 설명하면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아서 ‘행복한 느낌’이라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 자체를 전달하려 했다. 티저 예고편은 ‘당신에겐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각 인물들에게 던지는 식으로 제작했다. 초기에는 옴니버스영화라고 기사화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다중플롯에 인물별로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그렇게 개념이 혼돈됐던 모양이다. 이 인물들의 이야기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로 엮여서 전개됨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내 생애 가장 꼬여 있던 배우 스케줄 - 배우담당 연출부/ 고현정
촬영 스케줄이 늘 꼬여 있었다. 어렵게 배우들 스케줄을 조정해서 모아놓으면 비가 오는 식이다. 기억에 남는 날은 마지막 촬영. 나 형사, 유정, 선애, 곽 회장 등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추격전도 벌어지는 장면이었다. 배경이 초봄인 탓에 한여름에 다들 두꺼운 옷을 입고 뛰어다녔다. 너무 덥고, 길거리에 사람도 많고, 리허설도 힘들다보니 슛 들어간다고 배우를 데려와도 정작 카메라 돌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덥고 지치니까 배우들이 어디론가 사라져서 쉬곤 했다. 그분들께 일일이 전화를 돌릴 수가 없으니까 연출부들도 뛰어다니면서 배우들 찾아다니고….
내 생애 가장 난감했던 헌팅 - 제작실장/ 이승주
로케이션이 무려 70, 80군데였다. 중요한 장소라고 일일이 세트를 만들기엔 예산이 너무 많이 필요했고, 감독님도 웬만하면 로케이션이 좋겠다고 했다. 서울, 경기도는 물론이고 전라도까지 헌팅을 다녔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한 지난해 9월부터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돌아다녔다. 원래는 일정한 지역에 사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생각했지만 로케이션을 그렇게 정확히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 느낌만이라도 맞추려고 노력했다. 로케이션 헌팅 노하우? 그저 많이 뛰어다니고, 많이 부딪히고, 열심히 사정하는 수밖에 없다.
내 생애 가장 곤란했던 촬영호흡 - 촬영감독/ 오승환
커플별로 비주얼 컨셉이 달라야 했다. 화면 색감을 달리 가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통일성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래서 인물별 공간의 차별화에 신경썼다. 앵글이나 촬영기법 등의 면에서 감독님은 처음부터 너무 튀는 촬영을 원치 않았다. 서로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감정인 사랑과 고통을 다루는 영화로, 조화와 통일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촬영감독 입장에서 평이한 촬영보다는 새롭고 파격적인 비주얼을 구사하고 싶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이야기다. 긴 호흡으로 촬영을 진행해야 하는데, 탄력을 받았다 싶으면 그 배우와의 촬영이 끝나는 건 아쉽더라.
내 생애 가장 전문적이어야 했던 의상 컨셉 - 의상팀장/ 김윤우
배우들끼리 컨셉이 겹치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다. 하지만 모든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의상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분이 그런 옷을 입을 거니까 다른 옷을 입으셔야 해요, 라는 말도 못하고. 배우가 많다보니,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벌어지는 일이다보니, 배우별로 100% 완벽하고 다양한 의상을 준비해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경찰복, 신부복, 의사복, 수녀복 등 온갖 특수 직업 의상은 다 등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