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어후, 어후! 상품을 놓쳤네”, <사랑을 놓치다> 촬영현장
2005-10-10
글 : 문석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설경구·송윤아 주연의 멜로 <사랑을 놓치다> 촬영현장

부딪히기만 하면 그 어떤 것에도 정취를 남기는 초가을의 햇살이 눈부시건만 이 남자, 쓸데없는 데 힘을 쏟고 있다. 9월28일 대전 보문산의 폐 놀이공원에서 막바지 촬영 중인 <사랑을 놓치다>의 현장에서 설경구는 “어후, 어후!”를 연발하며 야구공을 던지고 있었다. 불과 10미터 남짓 앞에 있는 나무 블럭을 쓰러뜨리면 담배에서 상품권까지 얻을 수 있는 ‘한방 부루스~ 야구공 던지기 연습장’에서 악에 받쳐 투구를 했지만 성과는 없었던 거다. 대학 시절 친구였던 연수(송윤아)에게 ‘꽝’에 해당하는 상품인 풍선 외에 뭔가 값진 것을 선물하려던 영화 속 우재(설경구)의 의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사랑을 놓치다>는 10년 전, 그러니까 대학 시절 친구로 지내던 남녀가 10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나서 겪는 일을 그리는 영화다. 남자는 10년 전 그녀를 그저 여자‘친구’로 받아들였지만, 갑자기 그녀가 ‘여자’친구로 느껴진다. 여자는 10년 전 그를 짝사랑하다 포기했지만, 10년 뒤 그를 다시 만나니 옛 감정이 밀려온다. <사랑을 놓치다>는 그렇게 엇나가고 다시 이어지고 또 다시 엇나곤 하는 남녀의 내면을 그리는 멜로영화다.

이날의 촬영 장면은 그들이 10년 뒤 다시 만나서 갖는 첫 데이트의 에피소드이자, 속내가 드러나지 않게 서로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조심스런 연애의 도입부이기도 했다. 이제 삶이란 것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는 30대 남녀의 첫 데이트 장소로 2년 전 폐업했다는 이 놀이공원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이곳에서만큼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실제로 유원지에서 사격장과 투구장을 하는 업자를 불러다 꾸며 더욱 실감나는 공간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8월18일 전주의 한 저수지에서 가진 촬영 또한 비슷했다. 우재가 연수의 시골 집을 찾아가는 이 장면 또한 사랑의 벅찬 박동을 느끼기보다는 사랑을 일상 안에 졸졸 흘리려는 성숙한 남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

“그동안 내가 짊어지기 버거운 대작을 많이 했는데, 내 주위에 있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담는 게 좋아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설경구는 <역도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몸집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12월 들어가는 액션영화 <열혈남아>를 준비하느라 “방에서도 줄넘기를 한다”는 그는, 오랜만에 만난 정통 멜로영화를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전화기를 부수거나 송윤아를 짝사랑하는 상식(이기우)과 막싸움을 벌이는 장면도 있어 “생각보다 와일한 면도 있다”고 자신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마파도>의 추창민 감독이 오래 간직하고 있다 풀어내기 시작한 이 잔잔한 사랑 이야기는 내년 설 무렵 개봉할 예정이다.

“아, 이거 총 맞는 거 같네.” 감독의 컷 사인 직후 수십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셔터 소리를 내자 설경구가 당황했다. 이날 촬영장에는 7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포토라인’을 만들어 통제하려 했지만, 뜨거운 취재 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광복절특사> 때 인연을 맺은 설경구와 송윤아는 정말 오래된 연인처럼 보였다. 덤덤한 태도지만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는. 두 사람은 3년 전 시나리오를 받은 뒤 스케줄 때문에 출연하지 못할 뻔했으나, 그 사이 다행히도(?) 이 영화가 제작되지 않아 출연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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