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그녀는 예뻤다 그러나 그녀의 연기는
2005-10-06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신화>의 김희선

관객이기만 했던 시절, 나는 영화배우를 철저하게 엔터테이너로 바라봤다. 연기든 외모든 뭐든 한 가지 미덕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그래서 두 시간 동안 나를 즐겁게만 해주면 만사형통이었다. 아주 예쁘거나 잘 생긴, 비주얼이 흡족한 배우에 대해서는 특히 관대했다. 그래서 스크린 속에서 그들이 혀 짧은 소리를 내건, 안약 티 팍팍 나는 눈물을 뿌려대건, 전문적이지 않은 어떤 연기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눈은 마냥 즐겁고, 그래서 금쪽 같은 나의 두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으므로.

물론 영화기자가 된 뒤에는 어쩔 수 없이 본능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연기란 단순히 흉내내기 동작이 아니라 상상의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이라던가, 연기의 기본조건이 예민한 감수성과 빼어난 지성이라는 등 이해가 쉽지만은 않은 진지한 연기론을 염두에 두며 영화를 본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본능이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어서, 난 여전히 연기는 덜 전문적이지만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을 스크린 속에서 만나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적어도 지난 4일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 언론 시사회 전까지는.

<신화>를 보면서 십 수년간 확고부동했던 나의 배우관에 작지만 깊은 균열이 생기는 걸 감지했다. <신화>는 진시황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던 2천여 년 전과 현재를 오가며 진시황릉의 비밀을 파헤치는 어드벤처 영화로, 청룽(성룡)과 김희선이 주연해 화제다. 김희선은 진시황의 후궁이 되려고 몽의장군(청룽)의 호위를 받아 진나라로 가다가 그 장군과 사랑에 빠지는 신비스런 고대 여인으로 출연한다. 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중국말과 함께 한국말을 쓴다는 것과 그 시기를 추정해보면 중국어에 능한 고조선 공주쯤 된다.

그런데 <신화>에서 김희선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부분은 모두 더빙으로 처리됐다. 김희선은 애초 중국어 부분을 직접 연기하려고 노력했지만 중국인들이 알아듣기 힘든 그의 중국 발음이 문제가 돼 그와 목소리가 가장 비슷한 중국 배우가 더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빙과 입 모양이 심하게 불일치한 김희선의 어설픈 중국어가 영화 몰입을 방해했다. 심지어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는 중국어로 입 모양을 만드는 것도 안돼 아예 한국말로 연기한 뒤 더빙을 해버리는 바람에 김희선의 한국어 입 모양과 중국어 더빙, 그리고 한글 자막이 동시에 눈과 귀를 어지럽혔다.

이 영화에서 김희선은 더 이상 예쁘기 힘들 정도로 예쁘다. 옥수 공주의 초상화가 김희선의 얼굴로 바뀌는 장면에서는 ‘그림처럼 예쁘다’는 말이 직유를 넘어 아예 직설법처럼 느껴질 지경으로 예쁘다. 하지만 예쁘면 사족 못쓰는 내가 그 예쁜 김희선의 전문적이지 않은 연기를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아시아, 특히 중화권에서 가장 대표적인 한류스타라는 점을 떠올리면서 더욱 그랬다.

현재 개봉 중인 한·중·일 합작 영화 <칠검>을 보면, 조선족 출신으로 등장하는 중국배우 전쯔단(견자단)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로 연기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원래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신화>를 보다가 문득, 김희선의 예쁜 얼굴보다 -‘주관적으로’ 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외모는 전혀 아니지만-전쯔단의 프로페셔널리즘 쪽으로 취향의 저울추가 기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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