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글쓴이를 반영하듯, 영화는 감독을 닮는다. <컨벤셔니어즈>와 모라 스티븐즈의 관계도 그렇다. <컨벤셔니어즈>는 공화당원 남자와 민주당을 지지하는 여자가 정치적 입장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이되, 양당 중 어느 한 쪽을 이성적으로든 심정적으로든 지지하지 않는다. 차분한 말투로 신중한 어휘 구사를 노력하는 모라 스티븐즈는 실제로도 사적인 정치적 견해를 밝히기를 꺼려했다. “그런 것은 내 영화에 편견을 심어줄 것 같다. 난 영화를 통해 실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갈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컨벤셔니어즈>는 모라 스티븐즈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의 친구가 알고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 중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감독이 마음에 품고 있었던 <로미오 줄리엣>류의 멜로구조에 얹어 재구성했다. 지난해 가을, 뉴욕의 공화당 전당대화 장면을 영화 안에 담기 위해 촬영하다 감독을 포함해 일부 스탭들이 수개월 구류됐던 에피소드를 그는 나지막하게 이야기한다. “스탭들에게 정말 미안했고 죄책감도 많이 느꼈다.” 영화 속에서 수화 통역사로 등장하는 배우는 감독의 오랜 친구다. 그가 대통령 연설 중 수화통역을 하는 장면은 합성이 아닌 실제 상황을 찍은 것이다. “원래 직업이 연기자인데,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아르바이트로 수화통역 일을 하는 친구다.”
훨씬 치열하고 뜨거운 정치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모라 스티븐즈 감독은 “결함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준비중인 두 번째 장편 <조지아 히트>는 베트남전의 상흔과 인종문제, 가족문제 등을 고루 살펴보는 이야기다. 모라 스티븐즈 감독은 한국-아일랜드계 혼혈 미국인이다.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지만 정치적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지만 정치적 관점을 강요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아이러니하지 않냐고 되물으니까, 적절한 단어를 한참 고르다가 웃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