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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9
글 : 이종도

도미에의 그림 <삼등열차>를 떠올려 보자. 열차 안에서 서로 부대끼는 사람들, 그들 얼굴엔 피로도 묻어 있고 가벼운 흥분도 묻어 있다. 신분과 나이와 계급을 넘어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북적거릴 수 있는 자리가 또 있을까.

동유럽에서 로마로 향하는 기차 속에서 에르마노 올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세 감독은 작은 우주를 발견한다. 여기엔 갈등과 싸움과 피로가 있지만, 그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축제의 공간이라는 게 세 감독이 함께 시나리오를 쓰며 든 생각이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하면서 세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세 부분을 각자 나눠 극영화로 찍기로 했다.

올미의 개인적이며 가벼운 에피소드로 출발한 기차는 키아로스타미를 운전사로 두면서 더 볼만한 풍경을 이끌어낸다. 마지막 로마까지 운전하는 켄 로치는 떠들썩한 스코틀랜드의 축구광 소년 셋을 불러내, 기차를 축제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올미 감독은 특실에서 시작한다. 손자의 생일 파티에 늦지 않고 싶어 간신히 기차를 잡아탄 노교수의 얼굴이 보인다. 방금 전 헤어진 상냥한 여인과의 추억에 젖어있던 그는 뒤늦게 복도에 불편하게 선 채로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어머니를 본다. 자신의 껍질 안에 있다가 드디어 함께 하고 있는 이웃에게 눈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뚱뚱하고 괴팍한 노부인과 그녀의 시종인 청년 필리포의 이야기로 분위기를 바꾼다. 2등석 표로 특실 자리를 꿰차고, 좌석 주인에게는 딴청을 부리는 노부인은 잊기 힘든 캐릭터다. 옷 갈아입는 사소한 모든 것까지 필리포에게 시키는 시대착오적인 노부인은 그러나 필리포가 사라지자 당황해한다.

켄 로치는 이제 점입가경을 선사한다.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로마행 기차를 탄 10대 소년 셋. 슈퍼마켓에서 힘들게 ‘알바’를 해 모은 돈으로 가는 길이다. 소년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셔츠를 입은 알바니아 소년 가족을 만나고 같은 팬이라는 반가움에 샌드위치를 선물하지만, 곧 자신의 기차표가 사라졌음을 안다. 소년들은 알바니아 난민 가족을 다그쳐 표를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경찰서로 끌려갈 것인가. 우리는 기차 안에서 승객들과 꼼짝없이 마주치고 그들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느끼고 웃고 고민하게 된다. 켄 로치는 도미에의 <삼등열차>에서 사람들끼리 돕고 의지하는 ‘연대’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순간을 축제의 폭죽으로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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