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은 몇 일째 비다. 그 덕에 기온은 쑥 내려가 버렸고 어디에서도 여름의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다. 이제 자려고 누우면 코가 시리다. 여름 내내 무시해왔던 이불에게 비겁한 아부를 하면서 코끝까지 살살 끌어올린다. 가만히 보면 머리가 아니라 계절이 기억해주는 느낌이 있다. 이를테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나는 시골 저녁 밤 같은 냄새, 살갗에 스치는 알싸한 그 계절 만의 촉감. 이런 건 햇빛이 쨍쨍 내려 쬐는 여름에는 아무리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다가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거리로 나가, 차가워진 바람에 지퍼를 코끝까지 올리면 마치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아, 작년에도 이랬지,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맘쯤이 되면 멀리 떨어져 걷던 사람들도 손을 잡거나 부둥켜 안고 걸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체온이 필요한 계절이 온 것이다. 차가워진 내 발을 그 사람의 발 위로 올리기만 해도 금방 따뜻해지는, 그런. 게다가 11월부터는 여기저기 과도한 히터를 틀어 댈 테니까, 10월의 한기만이 가지는 다정함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용’ 아저씨가 아련하게 노래하던 “시—월—의 마지-막 밤”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밤을 마지막으로 뉴욕을 떠난다.
최근 필름포럼에서 말 그대로 ‘절찬리’에 상영된 영화 <내 이름은 쿠바> (I’m Cuba)를 보고 나오는 길, 내 마음은 좋은 영화를 본 벅찬 감동 그 이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 이후의 행선지로 오랫동안 별러왔던 곳이 쿠바이기 때문이다. 1964년에 러시아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서 빨리 깃발을 들고 혁명광장으로 나가라는 과격한 슬로건을 불가능하리 만큼 부드러운 방식으로 전한다. “나는 쿠바. 예전에 콜럼버스씨가 나를 처음 발견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다지요. 고마워요, 세뇨-르 콜럼버스!” 마치 이 대지의 여신인 듯한 중년여인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카메라는, 기묘하게도 침략과 수탈로 멍든 이 땅의 사람들의 사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고통스러웠지만, 미안하지만, 아름다웠다.
그 것은 <매드 핫 볼룸>을 본 이후 몇 달 동안 즐겁게 쿠반 살사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출 때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저 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렬하게 밀려왔다.
사실 왜 쿠바지?
‘사실 왜 쿠바지?’라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쿠바영화라고 해보았자 다들 그렇듯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가장 강렬하게 남고, 좀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개발의 기억>이나 <루시아> 정도에서 밑천이 떨어진다. 게다가 카스트로 혁명사나 그 사회의 현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다. 체 게바라가 T셔츠의 모델로 전락해버린 현재에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는 것이다. 모르니까 간다. 알기 위해 간다.
사실 ‘애버뉴C’는 비단 뉴욕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타이틀에 달았듯 ‘C네마(영화)와 C티(도시)가 만나는 곳’, 그러니까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지 ‘애버뉴C’는 존재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이 길을 같이 걸어서 즐거웠다. 이제 새로운 지름길과 샛길들을 찾아 낼 사람은 바로 당신들일 것이다. 내가 미쳐 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것들을 보는 것도, 영화라는 놀라운 발명품의 낭만을 찾는 것도 당신들의 몫이다. 물론 나 역시 새로운 ‘애버뉴C’를 찾을 것이다. 하바나의 작은 ‘C’alle(‘거리’를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그것을 발견한다면 참 기쁠 것이다.
그렇게 이제 뉴욕에게 잠시, 혹은 영원이 될지 모르는 이별을 고한다. 아직 이 길도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다른 길로 떠난다고, 너는 나는 원망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는 뉴욕, 나는 쿠바. 세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듯 이제는 그럴 때가 된 것이다.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