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 충무로에 치킨게임이 벌어질까? 두 자동차가 정면으로 달려오다가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치킨’(겁쟁이)이 되는 이 게임은 제임스 딘의 <이유없는 반항>에도 등장했다. 호사가들이 12월 중순의 충무로를 치킨 게임의 형국으로 보는 이유는 한국영화와 외화 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 <야수> <청연>과, <반지의 제왕>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12월 극장가를 평정했던 피터 잭슨의 신작 <킹콩>, 그리고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 싸움에 나서는 골리앗들이다.
일단 개봉일을 15일로 확정한 작품이 곽경택 감독의 <태풍>과 피터 잭슨의 <킹콩>이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12월1일로 일찌감치 개봉 날짜를 잡았지만 영화의 흥행 규모로 볼 때 12월의 ‘사투’에서 비껴나 있지 않다. 신인 김성수 감독의 <야수>와 윤종찬 감독의 <청연>은 구체적 날짜를 명시하지는 않지만 12월 중순으로 개봉 일정을 잡고 있다. 계획대로 간다면 15일을 피하더라도 다른 경쟁작들과 전면전을 피할 수 없는 양상이다.
게임의 초반 승부는 스크린 수 확보에서 난다. <태풍>과 <야수>는 국내 양대 배급사인 씨제이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의 올 하반기 최고 주력 영화. <웰컴 투 동막골> <가문의 위기>(쇼박스), <너는 내 운명>(씨제이) 등이 모두 450여 개의 스크린 수를 확보했던 점을 감안하면 두 영화의 스크린 수는 500개로 늘어날 수도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태풍>은 순제작비만 150억원(총제작비 200억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순제작비 53억원(총제작비 80억원 예상)의 <야수>는 그보다 여유있는 사정이지만 올해 흥행 연타를 하면서 배급 최강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쇼박스가 씨제이와의 기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다.
전체 1500여 개의 스크린 수 가운데 1000개 가까이를 두 영화가 장악한다고 보면 이미 개봉날짜가 확정된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킹콩>의 스크린 수는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코리아픽처스가 배급하는 <청연> 역시 순제작비만 100억원에 가까운 대작으로 스크린 수 300~400개를 확보는 필수다. 이런 저런 수치를 계산하다보면 피튀기는 경쟁에서 먼저 핸들을 꺾는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된다. 이 게임에서 첸 카이거 감독의 <무극>이 본래 12월15일로 개봉일을 잡았다가 가장 먼저 핸들을 꺾어 내년 1월로 개봉일을 미뤘다.
쇼박스의 김태성 홍보팀장은 “개봉 때의 가용 스크린 수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개봉일을 잡겠지만 어쨌든 쇼박스의 하반기 최고 주력 영화이기 때문에 스크린 수 확보나 마케팅에서 총력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역시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기록을 깨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총력전을 선언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차례로 <야수>의 밤(10일), <태풍>의 밤(11일), <청연>의 밤(12일) 파티가 성대하게 치러지면서 이 치열한 경쟁의 서막이 열렸다. ‘대작들의 경쟁 사이에서 작은 영화들 설 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게 기자의 마땅한 고민이겠지만 솔직히, 치킨게임의 그 핏빛 경쟁이 더 영화처럼 느껴져 흥미진진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