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영화, 혹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더이상 영국에서 촬영하지 않는다? 영국산(産) 연쇄살인범 이야기 <프롬 헬>, 빅토리아 시대 첩보원의 활약을 그린 <젠틀맨리그>, 19세기 초반 런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는 <올리버 트위스트> 등은 모두 체코에서 촬영을 마친 작품들이다. 헬렌 미렌이 출연하는 TV시리즈 <엘리자베스 1세>는 루마니아에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프라하와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해리 포터>와 <007>의 다음 시리즈 역시 영국 밖에서 촬영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해 영국 정부가 영화투자자들에게 세금을 감면시켜주는 정책을 한결 까다롭게 시행하면서 발생했다. 덕분에 자국영화는 물론 평소 같았으면 영국에서 촬영을 진행했을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들조차 싼 세금과 물가를 좇아 체코 등의 동유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에 따른 산업적 손실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영화협회(U.K. Film Council)에 따르면 영화투자액은 지난해에 비해 70% 감소한 5억7천만달러로 집계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관광수입의 감소다. 영국을 찾는 관광객 중 5분의 1 정도가 영화 촬영장소를 찾아온 이들로, 영국 관광청은 매년 28억달러에 달하는 관광수입이 영화와 관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비지트브리튼>의 대변인 엘리엇 프리스비는 “훌륭한 장소에서 촬영된 좋은 영화는, 극장과 DVD,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접한 관객을 관광객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했다.
자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마저 영국을 외면하는 일련의 현상에, 영국배우조합을 비롯한 관계자들 사이에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이들은 “영국의 위대함을 보여줄 만한 기회를 잃을 순 없다”며, 정부가 대작영화 촬영을 유치하기 위한 재정적인 유인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