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시대의 공기를 영화 미학으로 승화시키다, 무르나우 회고전
2005-11-02
글 : 안시환 (영화평론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1월5일부터 열려
공식 포스터

1920년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 대중들은 한치 앞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암울한 현재를 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소재로, 극단적인 앵글과 명암 대비, 숨을 조여오는 편집증적 구도 등의 영화적 스타일로 미학화되면서 ‘독일 표현주의’라는 사조를 낳았다.

무르나우(F.W. Murnau)는 <노스페라투>(1922)에서 전염병에 의해 죽어간 이들의 관을 들춰매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긴 장례행렬 장면에서 당시 독일 사회의 공기를 담아낸다. 현재의 관점에서 <노스페라투>는 관객을 소리치게 만드는 공포영화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인물들의 불안과 억압된 심리를 시각화한 미장센과 그것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움직임(거기에 더해져 순간적인 움직임과 멈춤을 반복하는 배우들의 연기)은 이 고전영화의 불멸의 현재성을 보장한다. <칼리가리박사의 밀실>(1919)과 함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노스페라투>는 당시 대중의 불안한 심리를 영화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며 영화사의 빛나는 순간을 창조했다.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를 연구한 크라카우어는 당시 대중들의 심리 속에 존재했던 신비한 힘에 대한 동경심이 나치즘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예고했다고 주장한다(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6)를 보라). 실제로 많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이 초자연적이고 악마적인 힘이 인간을 유혹하는 내용을 영화 속에 담았고, 무르나우 역시 <노스페라투>를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이러한 설정을 차용한다. 독일 지역의 오랜 전설이었던 파우스트를 소재로 한 <파우스트>(1926), 말라르메의 원작에 바탕을 두는 블랙코미디 영화인 <타르튀프>(1926) 같은 독일 시절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선라이즈>(1927) 역시도 시골 청년을 유혹하는 도시의 악녀라는 설정이 놓여져 있다. 이처럼 무르나우는 악마적인 유혹과 이에 대한 인물의 태도를 통해 작품의 심층부에 흐르는 도덕적 의무와 ‘육체적 쾌락, 순수와 죄의식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곤 했다. <선라이즈>가 이를 표면적으로 드러냈다면, <노스페라투>는 이러한 긴장감이 내러티브의 심층부에 숨겨진 작품이다.

그 시대 최고의 미려한 카메라 움직임

악마가 도시를 집어삼키는 듯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파우스트>의 도입부 장면은 무성영화 특유의 빛과 어둠의 향연을 넘어서 말 그대로 ‘이미지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영혼의 거래가 주를 이루는 초반부의 시각적 스타일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스타일을 가장 집약한 장면들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독일에서 활동하던 많은 표현주의 감독들 속에서 무르나우를 구분짓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그의 섬세한 카메라 움직임이었다. 독일 출신의 감독 중 가장 미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보여준 감독으로 막스 오퓔스를 꼽지만, 무르나우가 43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러한 찬사의 주인공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한 인물의 삶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자막이 없는 진정한 무성영화이자 실내극 영화의 대표작인 <마지막 웃음>(1924)은 이러한 카메라 움직임이 빚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물을 뒤따르며 호텔 공간을 가로지르는 유연함이나 주인공의 꿈 시퀀스에서 보이는 몽환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이 돋보인다. 무르나우의 미려한 카메라 움직임은 <선라이즈>에서도 여전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이자,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혼합한 듯한 <타부>(1931)에서 이국적인 자연 경관과 인물들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리듬감있게 포착하는 카메라 움직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무르나우가 연출했던 21편의 작품 중 현존하는 작품은 12편이다.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11월5일(토)부터 11월 14일(월)까지 무르나우 감독의 회고전이 열린다. 현존하는 작품 중 그의 첫 작품인 <밤으로의 여행>(1920)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인 <타부>까지 총 11편이 마련되었다. 무르나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회고전은 그의 죽음이 얼마나 이른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의 초라한 장례식(그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장례식에 불참했다)이 그의 영화적 성취에 비해 얼마나 부당한 것이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기회일 것이다.

추천 상영작

<노스페라투>
‘공포의 교향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노스페라투>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각색한 작품이다. 노스페라투 역할을 맡은 막스 슈렉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에 정통한 배우였고, 이 영화의 촬영 과정을 담은 <뱀파이어의 그림자>(2000)에서는 실제 뱀파이어가 출연했다고 가정하면서 그 연기에 존경을 보낸다. 무르나우는 이 작품에서 <칼리가리박사의 밀실>에서 사용된 그림으로 그려진 정지한 그림자에서 벗어나, 인물 조명을 통해 움직이는 그림자를 창출하여 스멀스멀 다가오는 공포를 시각화하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웃음>
1920년대 독일 실내극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 <마지막 웃음>다. 이 작품에서 무르나우의 시선은 주인공 노인의 심리를 철저하게 담아내기 위해 주인공이 가는 곳곳을 따라가면서 카메라의 전능함을 시험하는 듯하다. 그래서 프레임 속의 프레임과 거울 숏을 통해 공간을 확장하고, 인물들의 관계를 드러내는 미장센이 두드러진다. 카메라의 역동적 움직임이 돋보이는 꿈 시퀀스나 어지럼증을 느끼는 인물의 시점 숏 등의 주관적 숏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세면대 시중꾼으로 내몰리고 구부정한 자세로 힘없이 마을로 돌아오던 주인공이 누군가가 지나가자 갑자기 몸을 바로세우는 순간을 그림자의 유희로 담아내는 장면은 무너진 권위의 허상을 시각화함과 동시에 무르나우의 빛과 어둠의 조탁 능력을 확인시켜준다.

<타르튀프>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 구조를 지니고 있는 <타르튀프>는 몰리에르의 희곡을 영화 속 영화로 보여준다. 할아버지를 유혹하여 재산을 가로채려는 가정부의 속셈을 알아차린 손자는 두 사람에게 영화를 보여준다. 그 영화는 성직자의 탈을 쓴 사기꾼에게 매혹당한 남편을 되돌리려는 부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겉 이야기와 속 이야기는 악마적 유혹에 대한 경계라는 주제로 모인다. <타르튀프>는 당시 독일에 만연했던 나약한 심리와 그로 인해 신비한 힘을 무의식적으로 원했던 독일인들에게 보내는 무르나우의 교훈극이자 블랙코미디였다. 그리고 원으로 감아올라가는 층계와 좌우 대칭을 강조하는 화면의 구성은 기하학적 구도를 강조했던 표현주의 영화의 세트 특징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파우스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참여했던 뢰리히와 헬트가 창조해낸 무대장치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교되면서 원전을 피상적으로 담아낸 실패작이란 평가를 받아야 했다. 오손 웰스가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각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권위있는 문학을 ‘창조적인 영화’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불손하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영화 초반부에 악마의 불길한 기운이 잠식당하는 묵시론적 세계의 이미지와 악마와 거래하며 파우스트가 실존적 고민에 빠져드는 장면은, 당시 표현주의 영화의 집대성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다만 젊은 시절로 돌아간 파우스트의 로맨스가 펼쳐지면서부터 이러한 장점들이 사라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라이즈>
‘두 사람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무르나우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흔히 무성멜로드라마의 최고 감독으로 그리피스를 꼽지만, 미국의 영화사가인 존 벨튼은 <선라이즈>를 멜로드라마의 원형이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했다. 자연과 도시를 대조하며 도덕과 쾌락 사이의 긴장감을 심어놓은 이 작품은 무르나우가 즐겨 사용한 이중인화 화면과 떠다니듯 공간을 가로지르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또한 사진관, 이발소, 놀이공원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무르나우의 유머러스한 연출까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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