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정대의 레퍼런스 DVD - 2005년 10월 (1)
2005-11-04
글 : 김정대

이 코너는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컨텐츠로서 그 달의 레퍼런스(화질, 음향, 부록 등에서 모범이 될만한) 타이틀을 엄선해, 주요 장면의 AV적인 우수성에 대한 전문가의 해설을 정리하는 코너입니다. (DVDTopic)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CE
Lemony Snicket's A Series of Unfortunate Events

올 상반기(아니, 보다 정확히는 3/4분기까지도!)는 유례없는 레퍼런스급 타이틀의 가뭄기였다. <인크레더블> CE와 같은 ‘울트라급’ 퀄리티의 타이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비해 구매자의 눈길을 확 끌 만한 타이틀이 유난히 적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물론 ‘대작’이라 부를만한 타이틀 자체가 드물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으나, 근래 들어 타이틀의 평균 퀄리티 자체가 향상됐기 때문에 예외적일 정도로 뛰어난 타이틀이 아닌 한 퀼리티만으로는 주목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찌됐건, ‘가뭄기’는 대충 지나갔고 10월 달부터는 ‘눈에 팍팍 꽂히는’ 대작 타이틀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극장 개봉 시부터 주목을 받았던 대작들은 두말할 나위 없이 DVD 시장에서도 ‘시선집중’ 1순위겠지만, 대작들의 틈바구니 속에 묻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타이틀 중에도 ‘신기할 정도로’ 퀄리티가 뛰어난 것들이 간혹 눈에 띈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 바로 그 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소품’이 아니다. 원작 소설의 지명도, 그리고 1억불이 넘는 제작비나 북미의 흥행성적 등 모든 면을 고려하면 이 영화는 ‘준 해리포터’급의 대형 판타지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 DVD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말이다.)

이 타이틀은 올 상반기에 출시된 깜짝 레퍼런스 타이틀인 <월드 오브 투모로우>의 경우처럼 웬만한 대작 타이틀 뺨칠 정도의 놀라운 AV 퀄리티를 보여준다. 특히 화질 쪽에서 보여준 성취도는 ‘경이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전혀 ‘오바’가 아니다. 소프트한 느낌의 파스텔 톤이 지배적인 영상 컨셉임에도, 디테일의 표현력은 샤프니스가 극도로 강조된 최신 극영화를 가볍게 능가한다. 특히 영화 속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클로즈업 신에서 그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올라프 백작(짐 캐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는 모공 하나, 먼지 알갱이 하나하나가 다 보일 정도로 표현력이 빼어난데, 놀랍게도 ‘실제 피부’와 ‘인공 피부’의 이음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이 부분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놀라운 분장 수준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특수효과가 상당히 많이 사용됐고, 지배적인 색톤 자체가 어두운 편임에도 불구하고 감상자가 답답함을 느낄만한 부분은 전혀 없으며 암부의 표현력도 최상급이다. 물론 ‘기계적으로’만 보자면, 윤곽선 노이즈 등의 약점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상자는 놀라운 색재현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런 약점 따위를 발견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마치 유화를 보는 듯한, 문자 그대로 ‘판타스틱’한 영상을 자랑하는 타이틀이다. 화질뿐만 아니라 음향도 기대 이상이며 부록들의 질도 대단히 빼어나다.

필자가 고른 ‘베스트 신’은 벼랑 끝에 지어진 조세핀 숙모의 집이 무너지는 장면. 어두운 합성 배경에 표현하기 쉽지 않은 요소들이 대단히 많은 신이지만, 놀랍도록 정교한 디테일을 자랑하고 있으며, 서라운드 효과도 일품이다. (2005년 10월 11일 CJ 엔터테인먼트)

배트맨 비긴즈 SE Batman Begins SE

2005년 워너 브라더스 최대의 야심작인 <배트맨 비긴즈>도 DVD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장 개봉 시 원작 만화의 팬들과 평론가들, 일반 관객들의 찬사를 동시에 이끌어냈던 보기 드문 블록버스터 영화였던 만큼 DVD의 퀄리티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물은 이런 살인적인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킬 정도로 우수하다. 다만, ‘최신 레퍼런스급’ 타이틀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화질 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기대했던 것보다 선명도와 입자의 정제감이 떨어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극도로 선명하고 또렷한’ 영상을 선호하시는 분들의 눈에는 본 타이틀의 영상이 다소 답답한 것으로 보일 소지가 있다. 또한 최근작임에도 지글거림 현상이 제법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이상 열거한 약점이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니, 구입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 오히려 디테일의 표현 측면에서 볼 때는 (영화의 전반적 배경과 분위기가 대단히 어둡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다. 밤 장면이나 지하실과 같은 극도로 어두운 배경에서도 사물의 디테일은 또렷하게 표현되며 배경에 묻히기 쉬운 배트맨의 수트 형상이나 복면의 심각한(?) 표정도 멋들어지게 묘사된다.

다만 느와르적인 분위기의 조명 컨셉 탓에 의도적으로 명암대비가 극대화된 부분이 적지 않은데, 몇몇 장면의 배경이 지나치게 어둡게 표현됐다는 인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퀄리티 상의 결함이 아니니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다.

영상 쪽에서 약간의 논란의 소지가 있는 반면, 음향은 거의 결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에 가깝다. 본 타이틀의 음향은 영상과 마찬가지로 ‘리얼리즘의 구현’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데, 그 결과가 대단히 빼어나 감상자를 ‘사운드의 황홀경’에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우퍼의 활용도나 서라운드 채널의 분리도, 음향이 이동감 역시 탁월하며 음장감은 그야말로 ‘리얼리즘의 극한’이 무엇인지를 체감하도록 해준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극장 상영 때부터 많은 팬들을 ‘졸도 지경’에 이르게 했던 배트 모빌과 경찰차 간의 추격 신 (챕터 28)이다. 몇 번을 반복감상해도 지루하지 않을 멋진 신이며, 음향효과도 대단히 폭발적이어서 ‘손님 접대용’으로 삼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2005년 10월 13일 워너 브라더스 출시)

배트맨 4부작 SE 박스세트 Batman: The Motion Picture Anthology

<배트맨> 시리즈는 1997년, DVD 역사가 시작된 직후 선보인 ‘실험성(?) 짙은’ 타이틀 중 하나였다. (국내에는 이보다 3년 뒤인 2000년에야 출시됐다) 따라서 이 타이틀을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비디오테이프 수준의 화질(특히 1,2편)이나 전무한 부록 등을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하기도 애매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배트맨> 시리즈는 최초 출시단계에서부터 ‘언젠가 다시 리마스터링 될 것임’을 전제로 했던 타이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드디어) 2005년 10월, <배트맨 비긴즈>의 출시에 맞춰 <배트맨> 4부작이 모두 화려한 사양의 SE 버전으로 재포장돼 출시됐다.

타이틀의 사양은 <배트맨> 열혈 팬들의 기대치에 충분히 부응할 정도로 빼어나다. 작년에 선보인 <매트릭스> 얼티밋 컬렉션 수준의 부가영상에 최신 타이틀 수준의 AV 퀄리티, 거기에 그토록 고대하던 팀 버튼 감독의 음성해설까지 모든 면에서 말이다. (팀 버튼은 본 타이틀의 음성해설 트랙을 1차로 녹음한 뒤, 그것이 재미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재녹음하는 열의까지 보여주었다)

다만 ‘최신 타이틀 수준’이라고 언급하긴 했으나, 엄밀히 말하면 본 타이틀의 AV 퀄리티 쪽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스타워즈> 삼부작 박스 세트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와 같은 괴물급 복원 타이틀들이 이미 DVD시장을 ‘강타’한 상황이기에, <배트맨> 시리즈의 복원상태는 자연스레 이것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본 타이틀의 복원 상태는 ‘완벽하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잡티와 노이즈가 많이 제거되긴 했으나 부분적으로 여전히 산재해 있으며 암부의 표현이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물론 이는 원본 필름의 독특한 질감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복원 컨셉에 의해 파생된 반 의도적인 부작용으로도 볼 수 있으나, 아쉬운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음향 쪽도 마찬가지다. 워너 타이틀로서는 보기 드물게 DTS 트랙을 수록하긴 했으나, 음질이 기대했던 것만큼 비약적으로 향상되지는 못했다(물론 화질 쪽과 마찬가지로 기존 발매판과는 ‘비교불가’의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국내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1, 2편의 경우는 여전히 서라운드감이나 임팩트감 측면에서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라운드 채널이 활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에너제틱한 운동성은 느껴지지 않으며 총소리나 폭발음도 여전히 힘이 없다.

물론 이상 열거한 약점들은 ‘음향 자체를 새로 녹음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는 힘든 것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배트맨> 시리즈의 팬들에게 본 SE 박스세트는 (AV퀄리티는 차치하고 엄청난 양의 부가영상만으로도) 여러모로 매력적인 타이틀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선정한 ‘베스트 신’은 (이번에도) 배트 모빌의 질주장면이다. 비록 2005년에 선보인 <배트맨 비긴즈>의 ‘그 장면’과 비교했을 때 ‘격세지감’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부분이지만 말이다. (2005년 10월 13일 워너 브라더스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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