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정대의 레퍼런스 DVD - 2005년 10월 (2)
2005-11-04
글 : 김정대

아키라 SE Akira SE

재패니메이션 팬들의 애간장을 부단히 태웠던 문제의 타이틀 <아키라>도 드디어 10월에 정식 출시됐다. 그것도 두 장의 부록 디스크에 DTS 5.1, DD 5.1 음향 트랙을 모두 포함한 ‘세계 최강의 스펙’으로 말이다.

<아키라>는 LD 시절부터 시작해 매체를 바꿔가며 지금껏 상당히 많은 버전으로 발매된 바 있는데, 이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진짜로 감독이 의도한 색감이냐’라는 논쟁까지 벌어진 바 있다. 예컨대, LD 시절에 크라이테리언에서 발매한 버전과 파이오니아에서 발매한 버전의 영상은 각각 상충되는 장단점을 보유하고 있어서 어느 것도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본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한 버전이라고는 평가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대원에서 발매한 DVD는 (현재로서는) 이 모든 논쟁의 외부에 위치한 ‘궁극의 버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본 타이틀의 화질은 (현재의 기준으로) 기계적으로만 평가한다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특유의 필름 잡티에서 시작해 입자 표현의 불균질성, 다소 떨어지는 밝기와 투박한 질감, 종종 출몰하는 윤곽선 노이즈까지 말이다. 하지만 만일 복원을 한답시고 이 모든 약점을 일거에 제거해버렸다면, 어쩌면 셀 애니메이션 고유의 질감마저 걷어 낸 ‘비인간적이고 밋밋한’ 결과물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상 면에서 <아키라>의 뛰어난 작화 수준은 세삼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12년 전에 파이오니아의 LD가 출시될 때부터, 오토모 가츠히로는 (감상 시) 이 작품의 ‘음향’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해 온바 있다. 가츠히로가 작화 못지않게 많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음향설계였기에, 2001년의 5.1채널 리마스터링 작업 및 2002년의 DTS 트랙 작업이 별도로 이루어진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본 타이틀에 수록된 DTS트랙은 느낌상으로는 ‘화려함의 극치’인 영상을 완전히 압도하는 듯하다. 감상자를 완전히 감싸는 듯한 입체감이 훌륭하게 구현되고 있으며, 음향의 이동성과 임팩트감도 기대 이상의 수준이다. 대사, 주변 음향, 스코어 간의 밸런스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또한 외국에서 DD 5.1 버전과 DTS 버전에 각기 따로 제공됐던 부가영상을 본 타이틀에서 한꺼번에, 그것도 한글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대단한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영화 초반부의 오토바이 폭주 장면이다. 야마시로 쇼지의 기막힌 스코어와 함께 다양한 음향 요소들이 전 채널을 통해 쏟아지는데,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드니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2005년 10월 24일 대원 DVD 출시)

킹덤 오브 헤븐 DE Kingdom of Heaven DE

작년 하반기, <스타워즈> 삼부작을 필두로 <투로모우>, <아이, 로봇> 등 최상급 퀄리티의 타이틀을 연달아 출시했던 폭스가 이번 년에도 <킹덤 오브 헤븐>을 앞세워 ‘하반기 대공습’을 감행하고 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타이타닉> SE 등 향후 폭스가 출시할 대작 타이틀의 퀄리티를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의 역할을 할 것으로도 예상됐었는데, 그 결과물은 한 마디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것이었다. 본 타이틀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출시 이전 시점 기준) 현재까지 출시된 극영화 타이틀 중 가장 뛰어난 AV 퀄리티를 보여준다. 특히 D2D 방식으로 제작된 픽사의 애니메이션 타이틀에 버금가는 안정도와 정교한 표현력을 자랑하는 화질이 매우 인상적이다.

물론 디지털 색보정 과정에서 짙은 색감이 지나치게 강조된 탓에 전체적인 영상 톤이 어둡다는 점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의도한 영상 컨셉을 충실히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일 뿐, 퀄리티 자체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다소 짙기는 하지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색상에서 시작해 떨림 없는 안정된 영상, 디테일의 표현력까지 모든 면에서 본 타이틀의 영상은 ‘필름 영화’로서는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DTS 사운드트랙도 모든 면에서 최상급이다. 막강 우퍼 채널의 지원을 등에 입은 음향의 임팩트는 최근 출시작 중에서도 대적할 만한 상대를 찾기가 힘들 정도며, 음향의 이동감과 분리도, 각종 음향 요소들 간의 밸런스도 만점 수준에 가깝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공성전 장면. 비싼 돈을 들여 서라운드 시스템을 구비하신 분들은 무시무시한 사운드가 전 채널에서 쏟아지는 이 장면(마치 감상자 자신이 20만 대군에 의해 포위된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에서 투자한 보람을 확실히 느낄 것이다. (2005년 10월 11일 20세기 폭스 출시)

서편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드디어 출시됐다. 스펙트럼은 지난 6월에 발표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필두로, 우수한 한국 영화를 디지털 리마스터링하여 연달아 내놓고 있는데 10월에는 <서편제> 외에 <춘향뎐>과 <장군의 아들>도 함께 출시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그랬듯, <서편제>의 화질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HD 텔레시네를 거친 영상답게 표현력이 기대 이상이며 시종일관 부드럽고 안정된 입자 표현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필름 특유의 잡티가 존재하긴 하나, 감상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세세한 부분의 디테일 묘사 상태도 대체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다만 엠버 톤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등 색상의 화려함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음질 쪽은 다소 실망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사나 주변 음향에서 잡음이 섞이거나 갈라져서 나오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음향 자체가 뚝뚝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영상 못지않게 음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인 점을 감안한다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은 사실 리마스터링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아닌,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의 태생적 한계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 타이틀의 ‘기적 같은’ 복원 상태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DVD 유저들의 입장에서 이는 묵과하기 힘든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꼽은 ‘베스트 신’은 유봉 일가가 진도 아리랑을 부르는 유명한 롱 테이크 장면이다. 워낙 설명이 필요 없는 명장면이기에, 여기에서도 ‘설명’ 따위는 생략하도록 한다. (2005년 10월 25일 스펙트럼 출시)

시선집중: 이 장면!
<죠스 30주년 기념판 Jaws : 30th Anniversary Edition> 중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어쨌다고?”

유니버설이 드디어 DVD 판매를 재개했다! DVD 유저에게는 대단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당장 10월의 출시목록 중에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 출시목록 중 <레이>와 더불어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타이틀은 바로 <죠스> SE (30주년 기념판)이다. 특히 이번 30주년 기념판에는 기존의 국내 출시판 <죠스>에서 빠졌던 DTS 트랙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기존판의 경우, 코드 1번 타이틀은 DTS 버전과 DD 5.1버전이 따로 출시됐는데 국내에서는 후자의 버전만이 출시된 바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번 30주년 기념판의 백미는 바로 부록 디스크에 수록된 두 시간짜리 메이킹 다큐다. 지난 1995년에 발매된 LD에 수록되어 호평을 받았던 이 메이킹 다큐는 현역 최고의 메이킹 다큐 전문 감독 중 하나로 알려진 로렌트 부제로가 감독한 것으로, 이미 <죠스>의 팬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된 유명한 작품이다.

지난 출시판에서는 이 메이킹 다큐가 절반가량이 잘려나간 상태로 수록돼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이번 30주년 기념판에서 드디어 ‘완전한 버전’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메이킹 다큐인데 저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직접 그 진면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159일간의 사투 끝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낱낱이 공개되는데, (약간 과장해서) 영화 본편보다 더 재미있으며 배꼽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웃긴 에피소드도 상당수 소개된다. 특히 리처드 드레이퍼스의 유머 감각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이번에 <시선집중! 이 장면>으로 고른 장면은 퀸트(로버트 쇼)가 맷 후퍼(리차드 드레이퍼스)와 마틴 브로디(로이 샤이더)에게 ‘인디애나폴리스 호’ 침몰 당시에 체험담을 들려주는 부분(DVD 챕터 15)이다.

퀸트의 체험담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1945년 6월 29일, 내가 타고 있던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일본 잠수함에서 발사한 어뢰 두 방을 맞고 격침됐지. 티니언 섬에서 레이테로 돌아오던 중이었어. 히로시마 원자 폭탄을 수송한 후에 말이야. 천 백 명의 선원이 물에 빠졌고, 배는 12분 만에 침몰했지. 수송 작전 자체가 극비임무였기 때문에 구조 신호는 발신되지도 않았지. 동이 틈과 동시에 뱀상어들의 공격이 시작됐어. 상어들은 가까운 사람부터 차례로 공격했고 물린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지. 동료들은 하나 둘 상어의 밥이 됐고, 바다는 피로 물들어갔지. 5일째 되는 날 정오에 우리는 상공을 지나던 벤투라 폭격기에 의해 발견되어 극적으로 구조됐는데, 물 속에 빠졌던 천 백 명 중 생존자는 316명에 불과했어.”

로버트 쇼의 기막힌 연기 덕에 이 장면은 지금은 <죠스>에서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힌다. 로버트 쇼가 내뱉는 ‘걸작’ 대사는 영화의 각색자 중 한 사람이었던 하워드 새클러가 처음 고안했으며, 이후 존 밀리어스에 의해 확장됐고 로버트 쇼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맞도록 최종 각색을 한 것이다.

퀸트가 언급하는 ‘인디애나폴리스 호 침몰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 일화는 세계 해전사에서는 꽤나 유명한 것이다) 천 백 명의 선원이 물에 빠진 것, 그리고 그 중 수 백 명이 ‘상어 밥’이 된 것도 사실과 일치한다. 그러나 퀸트의 언급과는 달리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침몰 당시 구조신호는 수차례 발신된 바 있다. 물론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창조적’ 각색의 결과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퀸트가 인디애나폴리스의 침몰일을 잘못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침몰 사건은 실제로는 1945년 7월 30일, 그러니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7일 전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서 이 사건은 꽤나 유명한 것이어서, 전쟁사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 중에도 이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실제로 <죠스>를 보는 관객 중에는 퀸트의 대사를 듣고 ‘공포감을 느끼는’ 대신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치명적인(?) 오류가 세 차례의 각색 과정 중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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