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 우두머리 허락거쳐 파벨라 내부 촬영
위험천만한 파벨라 안에서의 촬영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시티 오브 갓>의 제작진은, 도시의 타락을 뒤에서 조정한 부패경찰이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방법은 도시의 실제 권력자의 허가를 받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감옥에 있던 갱단 우두머리는 허락의 뜻과 함께 “영화를 만들되, 할리우드영화 같은 방법은 안 된다. 제발 진짜를 만들어달라”는 메모를 전해왔고, 제작진은 그의 부하 몇명을 스탭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제작진이 점심을 먹는 와중에, “잠시 장비를 테스트해도 될까요?”라고 물은 뒤, 조용히 총격전을 벌이며 촬영장소를 섭외(!)할 정도로 정중했지만, 끝내 네개의 구역으로 나뉜 시티 오브 갓의 한 구역 우두머리에게만 촬영허가를 얻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 촬영은 하이시티 등 두개의 파벨라에서 이루어졌다. 제작진과 갱단의 밀접한(?) 인연은 개봉까지 이어졌고, 영화의 시사회장에서 전설적인 마약상이 경찰에 체포되기에 이른다. 촬영에 협조한 파벨라 주민 대부분에게 시사회 초대장이 보내졌고, 이 정보를 미리 포착한 경찰이 극장 앞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 메이렐레스와 룬드는 졸지에 경찰에 소환돼서 페케노와는 만난 적도 없고, 초대장을 전달한 적도 없다고 진술해야 했다. 어쨌거나 일종의 코미디 같은 상황을 겪은 덕분에 영화는 개봉 초기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정치성을 완벽한 대중영화의 외피로 커버
원작이 출판된 지 5년 만에 스크린에 옮겨진 영화 <시티 오브 갓>은 결과적으로, 원작에 버금가는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첨예한 정치적 논쟁을 담은 이 영화는 완벽한 대중영화의 외피를 지닌 탓에 광범위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와 CF를 연상시키는 영화 속에서는 시종일관 역동적인 핸드헬드와 점프컷이 끊이지 않고 삼바, 솔, 디스코 등 흥겨운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믿을 수 없을만큼 폭력적이지만, 어느 때고 음악과 춤이 빠지지 않는 흥겨운 삶의 터전 파벨라의 일상을 단숨에 보여주는 에필로그 장면은 감각적인 스타일의 완성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미묘하게 변해가는 도시의 정치학을 따라, 영화의 형식 역시 세심하게 변화한다. 광각렌즈, 고정된 화면, 탁 트인 공간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점점 대상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듯 흔들리고, 편집은 신경질적으로 그 리듬을 빠르게 한다. 감독 역시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적 형식을 제법 성실하게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단적 폭력상황을 묘사해야 했던 메이렐레스는 영화와 관련한 인터뷰 내내 폭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조한다. “할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주인공이 수십명의 사람을 죽일 때 관객은 그것이 살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름답고 짜릿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화면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고 갱이 멋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영화를 보고 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3천∼4천만달러 수익
브라질 개봉 당시. 영화 관계자들이 이 영화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스타일에 대해 찬반논쟁을 벌이는 동안, 정치인들은 사회적 현상으로서 파벨라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갑론을박했다.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 룰라 다 실바는 선거운동 당시 이 영화를 관람한 뒤 자신의 공공복지정책 공약을 수정했다. 심지어 그는 <시티 오브 갓>의 리뷰를 직접 쓰기도 했는데, 이는 토니 블레어가 켄 로치의 신작 리뷰를 쓴 것에 비견할 만한 반응이었다.
끔찍한 도시의 처참한 현실을 목도한 충격만큼이나 놀라운 영화의 성공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브라질 개봉 당시 3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2002년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수백건에 가까운 감독 인터뷰가 쇄도했고 영화는 전세계 42개국으로 팔려나갔다. 손꼽히는 감식안을 지닌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은 이 영화의 미국 배급을 맡아, 1년 가까운 개봉관 상영을 성사시켰다. 브라질의 보수적인 영화계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를 거부한 이 영화를, 2004년 아카데미영화제는 최우수 감독상과 각색, 촬영, 편집 등 무려 4개 부문 후보로 선정했다. 300만달러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전세계에서 3천∼4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시티 오브 갓>이 브라질의 관객을 만난 지 3년이 흘렀다. 전통적인 방식의 영화적 리얼리즘을 믿지 않는 듯 보이는 메이렐레스는 “나처럼 쇼핑센터를 찾는 중산층 브라질인들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이미 달성됐다. 이 영화를 목도한 관객이라면, 그 누구도 시티 오브 갓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주기만 해도 좋겠다”던 시티 오브 갓 아이들의 소망 역시 이루어졌다. 물론 <시티 오브 갓>의 결말 이후 30여년이 흐른 지금, 현재 리오의 파벨라는 영화보다 더한 악화일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지 영화가 아니다. <시티 오브 갓>이 놀랍다면, 그것은 현실적이고도 절박한 과녁을 조준하는 정확성과 성실성 때문이다.
<시티 오브 갓> 이후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정치스릴러 <콘스탄트 가드너>로 다시 한번 인정
<시티 오브 갓> 이후 수많은 연출제의를 받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애초 “세계화에 대한 드라마틱한 코미디”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잠시 접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음모로 눈을 돌린다. 존 르 카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콘스탄트 가드너>는, 아프리카에서 비리를 일삼는 거대 제약회사를 고발하는 정치스릴러. 올해 9월 미국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3위로 데뷔하는 등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케냐 부임 중, 인권운동가인 아내 테사(레이첼 와이즈)를 잃은 영국인 외교관 저스틴(레이프 파인즈)이 살인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면서 거대 제약회사와 정부가 결탁관계를 눈치챈다.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일에만 열중했던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눈을 뜬다. 당장 아프리카인 한명을 돕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아내의 도움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했던 그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내의 대사를 반복하는 장면은 “문제를 아는 것과 그에 대한 감정이입이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메이렐레스의 확고한 정치적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테사가 케냐의 시장을 누비는 장면 등은 그의 일관된 비주얼을 엿볼 수 있다. 아프리카의 원색 의상이 풍기는 화려한 인상을 반영한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핸드헬드로 촬영됐다. 케냐 정부의 촬영협조를 받지 못한 제작진은 실제로 일부 장면에서 배우들을 거리에 내몰고 멀리서 카메라로 포착하는 등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콘스탄트 가드너>를 “어딘가에 고용되서 제작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첫 번째 영화”로 회고하는 메이렐레스의 차기작은, 한 차례 미뤄뒀던 반세계화 프로젝트 <인톨러런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제국의 모습을 묘사했던 D. W.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를 현대식으로 변형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전세계 6개국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폼페이의 최후를 다루는 대규모 재난 영화, 로맨틱코미디 등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시티 오브 갓>의 두 감독이 재회하는 자리였다. 메이렐레스의 <콘스탄트 가드너>가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시티 오브 갓>의 공동감독으로 촬영 코디네이션과 연기지도를 담당했던 카티아 룬드는 옴니버스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들>(비경쟁 부문) 중 단편 하나를 연출한 것. 고철을 모아 생계를 이어가는 상파울루의 어린이를 다룬 이 영화는, 영화적 형식과 정치적 입장에 있어 상당 부분을 <시티 오브 갓>과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