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나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달콤, 살벌한 연인> 촬영현장
2005-11-07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박용우·최강희 주연의 <달콤, 살벌한 연인> 촬영현장

감독과 배우가 아니라 웨이터와 손님 같다. 10월22일 새벽1시50분. 여의도의 한 레스토랑에 차려진 근사한 식탁. <달콤, 살벌한 연인>의 손재곤 감독은 박용우, 최강희 두 배우들의 요청을 받아듣느라 정신이 없다. 마지막 장면 촬영을 남겨두고 있다고 하니, 이젠 허물없이 지낼 법도 한데. 두 배우를 번갈아 바라보며, 감독은 “음악을 조금 넣을 생각입니다”, “대사 시작할 때 조금만 더 뜸을 들이시죠” 하고 존대로 깍듯이 모신다. 영문 모른다면, 감독이 들고 선 콘티를 메뉴판으로 착각할 것만 같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서요”라는 감독의 썰렁한 농담이 돌아온다.

손재곤 감독이 현장에서 ‘웨이터’ 노릇을 자청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함부로 말하는 성격도 아니고, (배우들이) 존중받는 느낌을 가졌으면 해서요”라는 감독의 해명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윤석준 프로듀서는 “배우들을 많이 신뢰하는 스타일이에요. 첫 테이크는 언제나 배우들이 준비해온 대로 가는 편이죠”라고 덧붙인다. 배우들의 잦은 주문과 감독의 잇따른 추천 때문에 아침8시까지 해치워야 할 요리만 27컷인데 소화가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윤 PD는 “첫 테이크는 좀 느리긴 하지만 불붙으면 금방이에요” 한다.

잠시, 주방의 냉장고가 윙윙거려 원치 않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 배우. 힐끗 보니, 준비 자세가 딴판이다. 박용우는 연신 콘티를 들여다보고 있고, 최강희는 와인잔을 돌리며 향을 즐기고 있다.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눈 한번 끔벅이고 느릿느릿 답하는 모양새는 똑같은데 내용은 반대다. 박용우는 “촬영에 들어가면 미리 계산한 것을 다 버리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그럴 땐 내가 알아서 컷 하고 그래요” 하고, 최강희는 “오빠는 너무 준비를 많이 해와요. 전 그날 현장에 가서 그냥 느끼려고 하다보니 좀…. 그래서 전 리허설 때는 잘해도 촬영 들어가면 그렇게 안 나오거든요” 한다.

엄살인가 겸손인가, 아니면 솔직한 토로인가. 어쨌든 재밌는 건, 두 배우의 정반대 스타일이 극중 캐릭터와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연애는 미친 짓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연애를 하고 싶은 병(?)에 걸린 서른살 넘은 노총각 황대우. 옆집에 사는 남자의 엉뚱한 데이트 신청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정체 모를 미대생 이미나. 이날 촬영이 유머만이 연애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코치만 듣고서 허둥대는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별 호감을 내비치지 않는 여자의 첫 만남이라는 설정임을 감안하면 더할 나위없는 커플처럼 느껴진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달콤, 살벌한 연인>은 그저 말랑말랑한 두 남녀의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다. 비디오를 너무 많이 본 킬러가 급기야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는 중편 <너무 많이 본 사나이>를 만든 적 있는 손재곤 감독은 이번 영화에도 “장르 뒤섞기를 좋아하는 취향을 담을” 예정이다. 제작진은 새벽4시 넘어 후반부의 “살벌한” 장면 촬영으로 넘어가자, 이제 퇴장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적지 않게 눈치를 준다. 같은 공간, 같은 인물, 단지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 달콤에서 살벌로 건너뛰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10월30일, 싱가폴로 떠나 에필로그 장면 촬영을 끝내면 <달콤, 살벌한 연인>은 곧바로 후반작업에 들어간다. 내년 초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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