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당신의 잔주름을 위해 건배, <빙 줄리아>의 아네트 베닝
2005-11-07
글 : 김도훈

‘아네트 베닝이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데이크림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어느 독일산 화장품의 광고문구는 베닝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 아마 이 화장품을 사게 될 사람들은 40대의 피부를 20대처럼 팽팽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부인들이 아니라, 현명한 나잇살을 안고 곱게 늙어가고 싶은 부인들일 것이다. 곱게 늙은 얼굴. 47살의 여자에게 이는 참으로 적절한 찬사다. 하지만 47살의 여배우에게 이런 찬사를 거리낌없이 보낼 수 있으랴. 할리우드는 여자의 나이에 결코 관대하지 않고, 여배우들은 젊음을 되찾고자 처녀의 피를 마신 바토리 백작부인의 후예처럼 고통을 감내하며 세월을 얼굴에 가둔다. 그래서 아네트 베닝의 곱게, 그러나 늙은 얼굴은 드물게도 배우의 진심을 반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빙 줄리아>를 바로 그 ‘아네트 베닝의 얼굴’에 바치는 영화라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연기라는 것이 스크린에서 젊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인간으로 늙어가면서, 나의 위치를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쇠락한 카우보이와 사랑에 빠진 서부 여인을 연기한 <오픈 레인지>에서도 그러하지만, <빙 줄리아>의 베닝은 사라진 젊음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가 <빙 줄리아>에서 맡은 역할은 과도한 명성과 식은 열정 사이에서 중년의 위기를 겪는 30년대 여배우. 젊은 미국인 연인이 다가와 식어버린 육체에 포도주를 끼얹는 바커스를 자청하지만, 남자는 곧 젊은 육체를 찾아 떠나가고, 줄리아는 무대 위에서의 복수를 꿈꾼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연기를 오가는 아네트 베닝은 주름살을 폈다 오므렸다 자유로운 얼굴 근육의 성찬을 보인다. “<빙 줄리아>는 가면을 벗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나에게 있어서 좋은 연기란 가면을 벗는 것이다. 결코 가면을 쓰는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빙 줄리아>를 스스로의 나이듦에 대한 예찬으로 부르는 듯 깊은 울림을 갖는다.

물론 아네트 베닝의 ‘잊혀진 90년대’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는 팬들을 꾸짖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막 정상급 여배우가 되었던 1991년, 그는 <벅시>에서 공연한 워렌 비티의 부인이 되었다. 옛 연인 칼리 사이먼이 ‘당신은 허세뿐이지’(You’re so vain)라는 곡을 바친 헐리우드 최고의 바람둥이가 30대의 전도유망한 여배우를 낚아챈 것이다. 첫아이의 임신으로 <배트맨 리턴즈>의 캣우먼 역할을 미셸 파이퍼에게 양보해야만 했던 베닝은 이후로도 3명의 아이를 더 낳았고, 산후몸조리가 끝나는 사이사이 <러브 어페어> <리처드 3세> <인 드림스> <대통령의 연인> <화성침공> <비상계엄>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젊은 여배우로서는 참으로 영양가 없는 10년이었다. 여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며 익어가야 할 30대의 나이에 그는 외유하듯 영화를 만들고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아내와 엄마를 연기했다. “나는 영화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나는 일하는 것을 즐기고, 내 속에 살고 있는 여배우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탐욕스럽다. 하지만 나에게는 많은 다른 인간들의 삶이 같이 딸려 있다. 그건 정말 거대하고 환상적인 카오스 상태다. 그래서 나에게는 일하러 가는 것이 마치 휴가를 얻는 것과 같다”

그러나 아네트 베닝이 온화하고 따사로운 주부의 모습으로 가볍게 스크린 나들이를 행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화성침공>에서 새로운 우주 세기를 갈망하는 전 알콜중독자 여인을 연기했고, <인 드림스>에서는 혼란스러운 꿈으로 고통받는 히스테릭한 여인, <아메리칸 뷰티>에서는 병적으로 속물적인 부동산중개업자를 훌륭하게 캐리커쳐화했다. 누구도 정상은 아니다. <아메리칸 뷰티>의 각본가 알란 볼은 아네트 베닝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그녀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배우”라고 말한다. “베닝은 조금 정신나간 배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그녀는 절망 상태에 이른 예민한 인간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면 현실의 베닝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방세를 재촉하는 뚱보 주인에게 몸으로 갚겠다며 옷을 벗어버리는 <크리프터즈>의 마이라가 여전히 베닝의 속내에 숨어 있을 법도 하다. 어쩌면 안전한 아내와 엄마 역을 하며 불어버린 스트레스를, 자신과는 다른, 허영에 넘치고, 위험하고, 쉽게 부스러지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여인들의 삶에 투영한 뒤 날려버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2005년 오스카에서 아네트 베닝은 다시 한번 힐러리 스왱크에게 트로피를 빼앗겼다. “조금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웃음)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가 점점 불어남에따라 그걸 견뎌내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그래서 오스카를 받지 못한 것이 나에게는 큰 안심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내 대중의 눈으로부터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진짜로 원했던 것이었다.” 진심일까. 못미더워하는 사람들에게 아네트 베닝은 주름살을 약간 찡그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 역시 아이들을 위해 산다는 게 완벽하게 낙관적인 장밋빛 인생으로 들리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내 일이며, 내 삶의 근원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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