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오슨 웰스의 전설적 필름누아르, <악의 손길>
2005-11-10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EBS 11월13일(일) 오후 2시

악역 퀸란을 직접 연기하고 있는 오슨 웰스(오른쪽)

오슨 웰스는 <시민 케인>(1941)이라는 영화사적 걸작을 만들었지만 그리 평탄한 연출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그는 거대한 스튜디오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고집했으며 이러한 행동엔 많은 우여곡절이 따르곤 했다. <악의 손길> 역시 비슷한 예다. 영화는 세 가지 버전으로 공개된 바 있다. 감독이자 배우 오슨 웰스와 영화사가 주도권 다툼을 벌였던 두 가지 버전, 그리고 이후 1998년 재편집된 버전 등이다. 멕시코의 마약 단속 책임자 마크 바르가스는 아내 수잔과 멕시코 국경에서 여행을 하던 중 어느 택지 개발업자가 폭발사고로 죽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바르가스는 스스로 사건에 뛰어들고, 비협조적인 부패 경찰 행크 퀸란과 부딪히게 된다. 한편 바르가스는 마약왕 그란데에 관한 증언을 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란데는 부인을 납치, 바르가스의 입을 막으려고 한다. 행크는 택지 개발업자의 사건을 멕시코쪽으로 은근슬쩍 떠넘기기 위해 그란데와 결탁하여 바르가스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악의 손길>은 두 남자의 대립을 주요한 축으로 삼는다. 마크 바르가스와 부패한 경찰 행크 퀸란이 그들이다. 단순한 선악의 대립으로 이들을 이해하기엔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오슨 웰스가 연기하고 있는 흉측한 외모의 퀸란은 거짓 증거를 만들어 많은 이들이 유죄를 선고받게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바르가스보다 도덕적으로 한수 위에 있음을 자신한다. 결국, 죄를 저지른 이들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주인공이 바르가스가 아니라 퀸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캐릭터의 비중이 크며 역설적으로, 바르가스는 차츰 퀸란과 닮아간다. 이렇듯 선악의 모호함을 강조하면서 <악의 손길>은 어느 누아르영화보다 스타일적으로 독특한 모양새를 보인다. 롱테이크로 일관하는 영화 도입부는 물론이며 극단적 앵글의 카메라는 작품의 분위기를 기괴하게 만든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에 대해 “자동차극장을 찾는 오락 취향의 일반 관객과 진지한 시네아스트 모두를 만족시키는 걸작”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슨 웰스는 <시민 케인>으로 상당한 비평적 찬사를 누릴 수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영화사와의 불화로 적지 않은 추문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악의 손길> 같은 걸작을 만들 수 있었음은 하나의 미스터리에 가깝다. 비평가 앤드루 새리스는 언젠가 “<악의 손길>은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언급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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