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나의 결혼 원정기> 정재영
2005-11-11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못생겼다더니…여기선 덜 못생겨 문제래요”

8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친구> <웰컴 투 동막골> 등 모두 4편이다. 이 가운데 2편 이상의 영화에 주연급으로 출연한 배우는 2명인데, 장동건이라는 ‘이름’이 순식간에 선명하게 떠오른 뒤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 떠오르는 ‘얼굴’이 바로 정재영(35)이다. 1996년 <박봉곤 가출 사건>의 불량배 역으로 시작해 버텨온 지난 10년이 머쓱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부지불식간에’ 한국 영화계의 큰 배우로 떠오른 뒤,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황병국 감독의 <나의 결혼원정기>(23일 개봉)로 다시 관객들을 찾은 정재영을 지난 9일 만났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결혼 원정’을 떠나게 된 서른 여덟살 농촌 총각 홍만택 역을 맡았던 그는 “딴 영화에서는 못생겨서 문제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덜 못생긴 게 또 문제였다”고 너스레를 떨며 말문을 열었다. “공감이 가고 쉽게 동화될 수 있으면 일단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결혼원정기>의 ‘살아있는 정서’에 공감이 가더라구요. 바탕에 밑바닥 정서를 깔고 있으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영화라는 점에서 특히 그랬어요.”

정재영은 “원래 사고방식이 ‘컨츄리’하기 때문에 농촌 총각을 연기하는 것 자체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뜻밖에 “홍만택은 아주 ‘허구적이고 영화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실제 농촌 총각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래서 초반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당연히 사실적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 ‘농촌 노총각 캐릭터’를 되려 허구적이라고 분석한 정재영의 생각은 이랬다. “홍만택처럼 여자들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순진하고 쑥맥이라 결혼을 못했다는 것은 영화적인 설정이예요. 농촌 총각들도 유머감각도 있고 여자 꼬실 줄도 알아요. 다만 사는 환경이 뒷받침을 안 해주니 결혼이 힘든거지요.” 그는 또 “‘진짜’ 농촌 총각에 관한 얘기를 할 바에야 차라리 영화의 모티프가 된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이 훨씬 낫지 않겠느냐”며 “농촌 총각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되, 허구적이고 영화적인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줘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재영은 취미·특기도 없는 심심하고 무뚝뚝한 ‘무거운’ 농촌총각 홍만택에게서 “특유의 진지한 행동이나 표정이 엉뚱하게 유발하는 웃음”을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원래 웃긴 표정도 별로 없고,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 같은 건 잘 못해요. 애드리브도 많이 안 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에서도 애드리브를 대사처럼, 대사를 애드리브처럼 하면서 튀지 않는 코미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킬러들의 수다> <피도 눈물도 없이> <실미도> <귀여워> 등에서 선굵고 강한 연기를 보여줬고 <아는 여자> <웰컴 투 동막골> <나의 결혼원정기>를 통해 특유의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지만 한결같이 ‘밑바닥 정서’를 표현했던 그는 끝으로 “내 취향에 갇히기 전에 이제 또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박관념을 갖고 무리한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겠지만, 정재영이라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적인 테두리의 끝’까지 연기영역을 넓혀보겠다”는 것이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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