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나다 [1]
2005-11-12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사진 : 오계옥
재개봉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감독, 이누도 잇신의 영화세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한국 관객은 4만5천명. 1천만 시대를 자랑하는 한국영화에 비하면 모래알 같은 숫자이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열광적인 팬의 지지로 1년 뒤 재개봉까지 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영화이며 감독이었지만, 영화가 개봉한 뒤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았고 본 사람들은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거대한 해일이 될 수는 없었지만, ‘작은 영화’가 한국 영화계에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는 알려주었다. 상업적인 주류영화와 예술적인 작가영화라는 구분이 아니라,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전해주는 다양한 ‘작은’ 영화들이 풍성해질 때 한국 영화계도 한 걸음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오로지 재개봉을 찾아준 관객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났다. 둥그런 얼굴의, 선량한 표정의 이누도 잇신과의 만남은 그의 영화처럼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난 이누도 잇신은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8mm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었고, 17살에는 피아필름페스티벌에서 단편영화 <기분을 바꿔볼까?>란 작품으로 입선을 했다. 피아영화제에서 구로사와 기요시, <환생>을 만든 시오타 아키히코 등과 만나 친구가 되었지만, 이누도 잇신은 영화가 아닌 다른 길을 택했다.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가 아니라, 광고주와 대중이 원하는 광고를 만드는 길을 택한 것이다. 당시 파산지경에 이르렀던 일본의 영화계에 뛰어든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선택이었다. TV 광고 디렉터로 활동했던 이누도 잇신은, 33살이 되어 다시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지 조금 길을 돌아왔을 뿐이다. “광고의 영향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광고는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별 생각이 없던 것도, 하다보면 재미있네,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히미코의 집>에서 다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넣은 것도, 그 시절에 그런 장면을 찍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바보스럽고, 시시한 것들을 흔히 부정적인 투로 말하는데 나는 그것도 인간의 일부라 생각하고, 그 어리석음에도 애착을 갖는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광에서 광고 디렉터로, 그리고 감독으로

1997년, 이누도 잇신은 <금붕어의 일생>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한 아이가 키우는 금붕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들어온 바다거북에게 밀려나 다른 집으로 가고, 그 집에서 더욱 귀여움을 받지만 사고로 햇볕 아래에서 죽는다는 이야기다. 향년 1살2개월의 금붕어. <금붕어의 일생>이 기린맥주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받아 다음 영화를 만들 제작비를 구했다. 그 상금으로 만든 코미디영화 <두 사람이 말한다>는 ‘투나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두 여성 만담가의 일과를 그린 인정극이다. 이누도 잇신은 <두 사람이 말한다>로 일본감독협회 신인상을 받고, 선댄스영화제에서는 일본 감독에게 주는 상을 받는다. 두편의 영화를 통해, 이누도 잇신은 화려하게 영화감독 변신에 성공한다. 금붕어의 ‘일생’을 통해 ‘역사’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고, 꿈에 웃음의 신이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가 담뿍 담겨 있는 <금붕어의 일생>과 <두 사람이 말한다>는 이후 전개될 이누도 잇신의 영화세계를 미리 보여주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유바리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금발의 초원>(2000)은 판타지영화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현실이 아니라, 주인공의 꿈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난 20살의 니포리는 자신의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그는 80살의 노인이고, 단지 마음만이 가장 빛나던 시절인 20살로 돌아간 것이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17살의 나리스를, 젊은 날의 마돈나로 착각한 니포리는 사랑을 고백한다. 니포리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꿈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착각이라고만 생각한 나리스지만, 조금씩 그 꿈에 이끌린다. 나리스의 현실은 고통스럽고, 꿀 수만 있다면 영원한 꿈을 꾸고 싶다. 꿈과 현실의 차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꿈이란 반드시 깨어나야만 하는 것인지 <금발의 초원>은 묻는다. “니포리는 결국 어려워도 현실이 좋은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요즘에는 즐거우면 잊어버려도 좋지 않은가, 란 생각이 들지만.” 이누도 잇신이 시나리오를 쓴 <오사카 이야기>에서 처음 만났던 배우 이케와키 지즈루의 귀여운 매력이 돋보이는, 아름답고 슬픈 영화다.

작은 공간에서 낮은 목소리로 세상에 외치다

<금발의 초원>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신작인 <히미코의 집>은 동일한 구조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집이 있고, 거기에 특이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것이 같은 구조로 반복된다. 호러, 괴수영화를 좋아해서, 그런 걸 차용한 거다.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 역시 유령이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드라큘라>를 보면, 그가 살고 있는 성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드라큘라란 어떤 존재인지를. 집이 곧 그의 내면을 표현한다. 인간의 내면을, 집이라는 것을 통해 물질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보일 수 없는 내면을 미술을 통해 만드는 것.” 보통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들은 이상한 집으로 들어가고, 특이한 사람들 때문에 놀라기도 하지만 결국은 이해하게 된다, 사랑하게 된다.

동시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100% 순도의 연애영화였기에, 열성적인 마니아들을 만들어냈다. “이케와키 지즈루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누도 잇신에게, 이미 절판되었던 다나베 세이코의 책이 전해졌고, 그것은 다시 이케와키 지즈루와 쓰마부키 사토시에게 읽혀졌다. 그들이 원해야만, 온전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이기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조제와 츠네오라는,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영화였다. 이누도 잇신은 조제라는 캐릭터에게 매혹되었다. “츠네오와 만나 연애를 하면서 완전한 행복을 느끼는 조제는, 포기하면서도 현실을 인정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커트 보네거트나 <사이더하우스>의 작가 존 어빙이 그리는 정서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츠네오는 조제를 집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남자였다. 츠네오는 조제에게 동정도, 집착도 없다. 그가 조제를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만났던 다른 여자들과 똑같은 하나의 여자로 대했기 때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츠네오의 성장을 그린 영화인데, 그의 성장은 무력함의 실감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가슴을 울리는 연애영화다. ‘조제를 보고, 연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도 좋다.’ 하지만 이 세상에 연애가 외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구석에 밀린 두 사람이 진심으로 연애를 한다, 그것이 바로 중심과 싸우는 이야기가 된다. 미조구치 겐지의 <지카마쓰 이야기>에서도 사람들에게 밀리다가 결국은 사랑에 빠지고, 그것이 에도시대의 인습과 구조에 대항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는 주로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간의 작은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은, 세상의 중심과 맞닿아 있다. 아니 그것들 모두가 중심이다. “종교는 하나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일종의 종교전쟁이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그것을 서로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래서 모두 하나의 종교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작지만 소중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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