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를 볼 진기한 기회, <오케스트라의 소녀>
2005-11-17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EBS 11월20일(일) 오후 2시

<오케스트라의 소녀>

한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음악을 진정으로 아끼며 음악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오디션을 본 뒤, 예상외의 결과에 낙담한 소녀는 중얼거린다. “지금 부는 바람과 내일 부는 바람은 달라.” 클래식 음악이 사용된 영화 중에서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1930년대 후반, 대규모 실업의 물결이 닥쳤을 때, 아버지와 딸이 현실에 굴하지 않고 내일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트롬본 연주자인 존 카드웰은 딸 패트리샤와 궁핍하게 살고 있다. 카드웰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의 공연장을 찾아가지만 쫓겨나고 만다. 카드웰이 방세를 독촉하는 주인에게 밀린 방세를 건네자, 사람들은 카드웰이 스토코프스키 악단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 오해하고 축하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아빠를 뒤쫓아 리허설을 보러 갔던 패트리샤는 아빠가 일을 구했다는 것이 거짓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연히 주운 지갑에 들어 있던 돈을 쓴 것뿐이라는 것도.

<오케스트라의 소녀>가 아직까지도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는 건 이유가 있다. 당시 세계적인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실명으로 출연해 자신의 필라델피아 관현악단을 실제로 지휘했기 때문이다. 리스트의 음악에서 베르디의 오페라까지 영화는 고전음악의 진수를 빼곡하게 담고 있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독특한 지휘법을 펼쳐 보이는 장면은 인상깊다.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미국 가족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 속 내러티브는 가난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실업의 고통을 겪는 두 사람에게 낙관은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이들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것도 실업상태의 사람들과 어울려 오케스트라를 조직하고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와 협연하기까지 겪는 우여곡절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스토코프스키의 저택에 숨어들어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음악으로 스토코프스키의 지휘를 이끌어내는, 기막힌 순간을 구성하게 된다.

어쩌면 <오케스트라의 소녀>는 지금 와서 보기에 너무 뻔한 이야기의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해피엔딩이 주는 감흥이나 고전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귀한 체험이다. 어느 지인의 경우, 외국에서 힘겹게 <오케스트라의 소녀>의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봤다는 이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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