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낯이 익다. 그런데 누구시더라. 씩씩하게 걸어와 맞은편 소파에 앉은 유준상은 얼마 전 스크린 안에서 만난 모습과 너무 달랐다. 생각해보면 TV에서 어떤 전자제품 판매점으로 가자고 매일같이 우리를 설득하는 유준상 그대로이거늘, 이날 인터뷰의 중심이 됐던 <나의 결혼원정기> 속 희철의 모습과는 아주 판이했기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것이다. 준수한 얼굴과 호리호리한 체구의 배우 유준상보다는 시골 아낙네 스타일의 뽀글 파마와 시커멓게 탄 얼굴, 터질 것 같은 볼, 축 늘어진 뱃살의 농촌총각 희철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대화가 진행되면서 배우 유준상과 예천의 택시기사 희철의 간극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장난기 많고 쾌활하지만 중요한 대목에선 진지함을 잃지 않으려는 그는 유준상이자 희철이었다. 배우로서나 캐릭터로서나 <나의 결혼원정기>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우즈베키스탄 원정을 통해 인생을 깨닫게 되는 캐릭터 희철이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텔미썸딩> <가위> <쇼쇼쇼> 등의 영화와 <태양은 가득히> <여우와 솜사탕> <토지> 등의 드라마, <그리스> 등의 뮤지컬을 거치며 경력 11년차를 맞은 배우 유준상으로서도 이 영화를 향한 원정은 두 번째 연기인생을 시작하게 한 계기였기 때문이다. 유준상의 ‘네 번째 영화 원정기’를 소개한다.
-영화에서보다 살이 많이 빠져 낯이 설다.
=조금 빠졌다. 내가 원래 살이 잘 안 찌는 스타일이다. 10kg 정도 찌웠는데 별 표시도 안 나더라.
-살은 어떻게 찌웠나.
=희철이나 만택이나 살이 좀 붙어야 하는 캐릭터다. 특히 배가 많이 나와야 했다. 재영씨에게 뱃살만 찌우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자기를 따라먹으면 된다고 했다. 밤에 소주 마시면서 고기 먹고, 밥 먹고 또 라면 끓여먹고…. (웃음) 그래도 잘 안 쪄서 힘들었다. 그나마 <토지>가 끝날 무렵이었던 게 다행이었다. 극중 나이가 60대 정도일 때라 살이 쪄도 된다고 해서 그때부터 먹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영장 장면에서는 뱃살이 있어 보이더라.
=몸무게가 불어도 화면에서는 티가 별로 나지 않아 촬영 직전 물을 마셨다. 1리터 물병인 줄 알고 2통을 먹었는데 나중에 보니 2리터짜리더라. (웃음)
-촬영 뒤 몸무게는 어떻게 뺐나.
=하루에 10시간씩 운동했다. 헬스클럽 가고, 탁구 치고, 테니스 치고, 야구하고,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타면 하루가 끝났다.
-탁구는 좀 특이하다.
=탁구를 정말 좋아한다. 분당의 탁구클럽에서 배우는데, 선생님이 전 국가대표 선수였던 김기택씨다. 사실, <나의 결혼원정기> 팀에서는 내가 탁구로는 1등이었다. 그래서 잘 치는 줄 알았는데, 탁구클럽에 가보니까 막내 수준이더라. 하루에 2∼3시간씩 맹훈련을 했다.
-탁구 선수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다면 출연할 수 있겠다.
=꼭 해보고 싶다. 일단 연기자 중에서는 가장 잘 치고 싶은데, 언뜻 듣기에도 잘 치는 분이 꽤 많은 것 같더라.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연습하고 있다.
-어떤 연기자들이 라이벌로 거론되나.
=몇명 있는데, 거명을 하면 나 대신 그분들이 캐스팅될까봐 못하겠다. (웃음) 지금 탁구 영화 하나 노리고 있는데…. (웃음) 테니스 영화나 자전거 영화도 괜찮다.
-<나의 결혼원정기>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토지>가 거의 끝날 무렵 제안을 받았는데, 영화를 하고 싶었던 때였다. 사실, 그보다 4개월 전인가 이 영화의 제작사인 튜브픽쳐스의 황재우 이사에게 전화를 해 영화를 하고 싶으니 신경 좀 써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나와 대학 동기(동국대 연극영화과)다. 그런데 연락 한번 안 오더라. 대학 선배이자 튜브픽쳐스 대표인 황우현 형은 한술 더 뜨더라. 황병국 감독과의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감독과 너를 연결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하는 거다. 아주 냉정하더라. 아는 사람들이 더 하다니까. (웃음)
-애초부터 희철 캐릭터로 캐스팅됐나.
=그렇다. 그때는 감독님에게서 희철이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나리오를 볼 때 주인공은 만택(정재영) 같았는데, 감독님은 자꾸 희철이 주인공이라고 하더라. 감독님은 자신이 희철이기 때문에 희철이 주인공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는 만택이었다. (웃음)
-어떤 점에 끌렸나.
=일단 친구 사이의 우정이 와닿았다. 그 우정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서 재영씨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원래 안 마시던 술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시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술을 못 마신다고 하던데.
=그동안 안 마셨던 거다. 대학에 들어온 다음에 마음을 다잡은 거다.
-이미 그 전에 많이 마셨다는 말인가.
=그 전의 일들은 설명할 수가 없다. 이미지가 안 좋아지기 때문에. (웃음) 하여간 일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왔는데, 재영씨와 자연스럽게 많이 마시게 됐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우정이 쌓여갔다. 재영씨가 새벽 2시에 깨워 아침 7시까지 술을 먹이고, 나도 다음날 복수한다고 새벽 2시 반에 재영씨 방 문을 두드리고 했다. 그러다보니 안 친해질 수 없었다. 그러니 우정이라는 주제가 와닿았다.
-황병국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굉장히 철저한 사람이다. 필요한 신들만 찍어서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신인감독이라 뭘 알겠어요’라고 말하면서 연기자들에게 알아서 하라지만, 이미 그 전에 다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촬영 바로 직전엔 ‘이런 감정이 아닐까요’라고 방향을 제시한다. 그 한마디에 연기를 바꾸는 힘이 있더라.
-아예 배우에게 맡긴 장면도 있다던데.
=은행으로 찾아가 알로나에게 사과하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서 준비할 때부터 ‘이 신은 준상씨가 알아서 만들고, 알아서 대사하세요’라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자연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 러브 유’, ‘아임 쏘리’, ‘나 같아서 싫었어요’ 같은 대사는 내가 만든 거다. 그 밖에도 굉장히 많이 만들었는데, 감독님이 툭 자르더라. 경비원에게 “이거 좀 놔주세요, 이 개새끼야”라고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쳐내더라.
-농촌 총각 캐릭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감독님과 함께 감독님의 고향인 예천에 여러 차례 내려갔다. 개구리도 잡고, 밤에는 노루도 구경하고…. 실제 농촌 총각인 감독님 친구들도 많이 만났는데, 너무도 당당하게 재밌게 살더라.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분들 말을 녹음해서 희철의 말투를 연습하기도 했다.
-영화 속 헤어스타일이 참 독특하다.
=촬영 첫날 예천에서 파마를 했다. 거기 미용실 원장님을 새벽 5시 반에 깨워서 파마를 했다. 사실, 서울에서 머리를 약간 꼬불려서 갔는데 감독님이 마음에 안 들어했다. 그러다가 감독님과 재영씨가 아예 뽀글뽀글한 파마가 어떨까라고 제의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게 그 컨셉을 미리 떠올리지 않았다는 거다. 서울에서 파마를 했으면 그 정도 강도가 안 나왔을 거다. (웃음) 촬영이 끝날 때까지 다시 파마를 안 해도 됐을 정도니까. 우즈베키스탄 촬영 막바지에는 머리를 정말 펴고 싶어서 고려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가서 드라이로 푼 적이 있다. 그런데 길가의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을 맞았더니 다시 머리가 꼬부라지더라. (웃음)
-거울 봤을 때 낯설었을 것 같다.
=거울을 아예 안 보고 지냈다. 내 얼굴을 처음 봤을 때 자신감이 생기더라. 이건 정말 희철이다, 하는. 개인적으로 정감이 가서 좋았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진행한 로케이션은 어땠나.
=두달 반 정도 있었는데, 가족 생각 나는 것 빼놓고는 다 즐거웠다.
-너무 더워서 고생했을 텐데.
=섭씨 5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는데, 적응이 되더라. 그리고 재영씨는 달리는 장면이 많아서 고생스러웠겠지만, 나는 그런 것은 없었으니까.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다. 우즈벡 촬영 초반의 어느 날엔가는 내 분량을 기다리다가 햇볕 아래서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수애가 달려와서 ‘오빠, 큰일나요’ 하면서 깨우더라. 일어나는 순간 정말로 휘청하더라. 순간적으로 실신했던 모양이다.
-희철은 바람둥이 캐릭터라서 우즈베키스탄 여자들과 이렇게 저렇게 접촉하는 장면이 많던데.
=사실, 만택은 여자를 상대로 하는 장면이 거의 없어서 재영씨에게는 조금 미안했다. (웃음) 그래서 재영씨는 내가 그런 장면을 찍을 때는 자신이 직접 연기지도를 해주겠다고 하더라. (웃음) 아주 여러 번 시도했다. 그걸 제지하느라 힘들었다. (웃음)
-우즈베키스탄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들었다.
=나는 우즈벡에서 쉬는 시간이 많았다. 촬영장에 나가서 제작진을 응원해주곤 했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혼자 있으면서 그림 그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렸나.
=2000년에 처음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샤갈인데, 그때 그분 그림이 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유럽여행을 떠났다. 파리부터 시작해 유럽 8∼9개국을 돌며 미술관은 거의 다 들렀다. 그러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피아노도 친다고 하던데.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셨다.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내게 피아노를 안 가르쳐주셨는데, 레슨이 다 끝난 뒤 나 혼자 배웠다.
-노래도 어릴 때부터 익혔나.
=대학 시절 레슨을 받았다. 당시에는 뮤지컬을 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나는 너무 하고 싶었다. 거의 매일 노래 연습하고 지냈으니까.
-연극영화과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희곡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만희 선생님이셨다. 많이 방황하고 있었는데 연극영화과를 추천해주셨다. 엄청난 행운이고,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윤리를 가르치셨는데, 주로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 주제들이 결국 선생님 연극에 등장하더라.
-이만희 선생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나.
=선생님이 쓰신 시나리오로 만드는 영화에 나를 안 써주시니까…. (웃음) 사실, 얼마 전 선생님이 뮤지컬 대본을 쓰셔서 함께하자고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안 맞아 못했다.
-영화에는 <텔미썸딩>으로 데뷔했는데, 그 이후로 <나의 결혼원정기> 전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내가 좀 무지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주위에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영화에 좀더 빨리 접근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금부터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차라리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데뷔가 1995년이니까 늦깎이 연기자인 셈이다.
=항상 모든 게 늦은 편이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연극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 근거없이 트레이닝만 하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무대에서 적응할 때까지 오래 걸렸고, 드라마도 적응할 때까지 시간이 꽤 들었다. <토지> 하면서야 드라마 연기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됐다. 이제야 드라마도 캐릭터를 만들고 감독과 교감을 통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드라마와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가 연기의 차이로 드러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새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를 준비하면서 연기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떻게 했기에.
=연습부터 좀더 친밀하게 하고 싶어서 작가님에게 ‘작가님 댁에서 연습하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감독님과 배우들이 다 모여서 놀고 연습하고 술 마시고 했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지 우리가 연기하는 게 진짜같이 보일 것 같았다. 그렇게 하게 된 것도 다 <나의 결혼원정기>의 영향이다.
-<영재의 전성시대>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
=김민선씨가 영재라는 이름의 천방지축 여성으로 나오고, 나는 진중한 성격에 여자에는 전혀 관심없는 무뚝뚝한 남자로 나온다. 이 드라마를 선택하게 된 것도 사실은 기존과는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내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하도 ‘무슨 마트’ CF에서 보여지는 밝고 코믹한 이미지로만 박혀 있어서. (웃음)
-<나의 결혼원정기> 이후로 또 달라진 점이 있나.
=예전에는 낯도 많이 가리고 쑥스러워하고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출연을 놓고 먼저 연락한 적도 없고, 감독님들에게 인사를 다닌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영화제에 가서는 처음 보는 감독님들에게 뜬금없이 인사를 하기도 했고, 다른 영화 시사회 장소에도 찾아가 한번도 뵌 적 없는 감독님과 말도 나누고…. (웃음) 이제는 나이도 좀 들고 가정도 가졌고, 영화에 대한 확신도 있기 때문인지 조금은 ‘들이대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부터는 안 되면 들이대고 시켜줄 때까지 조르기도 할 거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