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를 향한 발길을 재촉하던 소하와 정현. 냇가에 마차를 세우고 평화로운 휴식을 취해 보지만, 이들을 따라붙은 척살단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다. 정현을 노리는 철화살이 날아들자, 소하는 정현을 이끌고 경공술로 강을 건너 숲으로 날아오르고, 척살단의 추격은 숲으로 이어진다.
홍콩 무술팀은 와이어 액션을 찍을 때마다 향을 피운다. 나도 <비천무> 때 스탭이 다치는 것을 본 뒤로, 와이어 액션이 있을 때마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곤 한다. 이번엔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소하와 정현이 강을 딛고 숲으로 날고, 그 뒤를 척살단원들이 따라가는 장면을 테스트 촬영할 때인데, 크레인 사이에 있던 도르래가 주저앉은 일이 있었다.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크레인이 작은 것뿐이어서 그걸 썼더니, 장정 10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와이어를 매단 도르래가 내려앉았다. 그래서 ‘정원 초과’ 신호로 알고, 추격자들을 10명에서 7명으로 줄여 촬영했다. 이 장면의 과장이 심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홍콩 무협과 한국 액션 중간의 ‘현실적인 과장’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하늘을 난다기보다는 도약하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 물론 액션도 리얼리티를 살려서 찍을 수는 있다. 사무라이 영화를 보면 실제 검술처럼 동작도 적고 하늘을 날거나 하는 과장적인 표현이 없다. 하지만 무협 액션엔 과장이 있어야 하고, 그런 판타지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고 믿는다. 이 장면에선 볼거리를 준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개인적으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장면이다. 빠르고 다이내믹한 액션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도 있고, 머릿속에 맴돌던 영상을 구체화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주위가 산과 강이어서 그곳에 크레인과 와이어를 설치하는 게 정말 큰 문제였다. 여럿이 와이어 액션을 할 때는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해야 했다. 동선을 맞추는 게 힘들었지만, 큰 무리없이 진행됐다. 다만 이어진 촬영에서 윤소이가 스친 화살에 얼굴을 다쳤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김영준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대해 꾸준히 얘기를 나누고 스탭들이 합심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촬영이다.
여정의 막바지, 거란에서 발해로 넘어가는 마지막 관문인 천애곡에서, 소하와 군화평(신현준)이 맞붙는다. 이미 부상으로 몸이 약해진 소하는 사력을 다해 군화평을 막아선다. 조국을 등지면서까지 권력을 탐한 군화평은 척살단의 단주다운 공력을 펼치고, 소하는 오랫동안 지녀온 무영검의 또 다른 힘을 실감한다.
워낙 고도가 높은 곳이라, 배우들도 스탭들도 많이 지치고 힘들었던 촬영이다. ‘여기만 넘으면 발해다’라는, 공간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지역을 찾다보니 베트남쪽 고지대로 가게 됐다. 이 장면이 중요한 것은 ‘무영검’ 즉 ‘그림자가 없는 검’이 진가를 발휘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빠르고 맑은 검으로, 소하가 군화평을 몰아치는 액션이 있었다. 이 장면 때문에 소이는 검 돌리는 법을 따로 배웠고,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간 못할 정도의 스피드를 내야 했다. 군화평은 이때도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비천무> 액션의 느낌이랄까, 크고 비장한 액션을 선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신현준의 이미지가 무사에 적역이라 생각하고, 그런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무기와 동작과 설정을 주려고 했다.
천애곡은 화려한 액션이나 군무 같은 액션을 배제하고 철저히 캐릭터간의 액션에 집중했다. 연소하가 최고 경지를 보여주고, 군화평에게 상처를 입혀야 하기 때문에 소하의 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도록 검에 와이어를 연결했다. 검끼리 부딪치고 베는 내밀한 액션에 힘을 주었고, 인물간의 갈등이 극대화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한 장면이었다.
천애곡으로 해발 3000m가 넘는 리장을 추천한 당사자가 나였다. 중국이 광활하다고 하지만, 촬영지로 이름난 곳들은 그렇게 널찍하지가 않다. 시내에서 기차로 2박3일, 차로 15시간을 더 들어가, 넓게 펼쳐진 평지에다 설산까지 있는 곳을 찾긴 했는데, 지대가 너무 높다보니 배우 스탭들이 호흡 곤란에 근육통에 복통을 호소하고, 코피까지 쏟아댔다. 급기야 이기용은 고산증으로 앰뷸런스에 실려가기도 했다. 당시엔 원망을 많이 들었는데, 풍광이 좋고 촬영이 잘된 것 같아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