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극장가는 판타지와 액션물로 그 어느 때보다 후끈 달아오르겠다. 2000년 이후 그 어느 겨울보다 많은 대작들이 한꺼번에 줄을 섰다. 외국 작품으로는 <킹콩>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와 불의 잔> <무극>이 도열해 있다. 국내 진영에선 <태풍> <야수> <청연>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번 영화들, 대체로 진한 남성성으로 관객들을 자극할 참이다. <킹콩>의 야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남한에 대한 분노를 ‘태풍’처럼 발산하는 탈북자 출신 해적 씬(장동건)(<태풍>)은 <쉬리>의 박무영처럼 또 하나의 북한식 남성성을 직조할 것으로 보인다. 무협극 <무극>, 액션 누아르를 표방하며 검경과 암흑가 보스의 건곤일척을 다루는 <야수> 또한 마찬가지. 3년 동안 품을 들였고 서사가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청연>이 홍일점이다.
지난해는 뜻밖에 애니메이션이 강세였다. 흥행 보증수표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디즈니사의 <인크레더블>, <슈렉> 제작사 드림윅스가 내놓은 또 다른 야심작 <샤크> 그리고 로버트 저멕키스의 <폴라 익스프레스>까지 한목에 붙었다.
올 겨울 라인업에는 보시다시피 애니메이션이 끼지 않지만 <킹콩>이나 <해리포터와 불의 잔>, <나니아 연대기>는 실상 애니메이션보다 판타지가 강하다. 첸 카이거의 <무극>마저 ‘판타지 서사 액션’을 내걸고 있다. 국내 극장가에서는 2001년부터 겨울마다 유독 판타지물의 경쟁이 두드러졌는데, 올해가 정점이 되는 셈이다.
멜로에 길들여져 판타지에 대체로 인색했던 한국 관객의 그 오랜 취향을 뒤바꾼 주역은 바로 2001년 겨울에 선보였던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2002년 1월1일 개봉)이다. 특히 최근의 겨울 극장가를 평정했던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던 피터 잭슨 감독이 판타지의 고전이라 할 <킹콩>을 리메이크해 한국을 찾았고, 2003년까지 3년 동안 <반지의 제왕>과 맞수 대결을 펼쳤던 ‘해리포터’가 다시금 어깨를 겨루는 판국이 됐다.
당장 다음달에 개봉하는 곽경택 감독의 <태풍>과 유지태, 권상우가 출연하는 <야수>의 대결은 그야말로 한국 액션물의 ‘슈퍼 액션’이다.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20%가 채 되지 않았던 지난해 12월을 이미 열기만으로도 무색케 한 지 오래다. 다음달 14일 개봉하는 <태풍>은 올 겨울 다른 메가톤급 영화들의 개봉일정을 정하는 기준 구실을 하기도 했다.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순제작비 150억원에 홍보 판촉비만 50억원을 쓰며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을 깨겠다고 벼르는 작품이라, 웬만한 대작들도 개봉일을 피해 잡은 것. 결국 14일 빅뱅은 <킹콩>와 <태풍> 둘만의 몫이 되었다.
대작의 홍수로 관객만 신났지만, 영화를 골라야 하는 고민도 만만치 않겠다. 뭐, 지분대는 고민이 싫어 까짓 다 볼 요량이라면, 5만원 들겠다.
장동건·이정재 대 유지태·권상우 ‘맞짱’
이 두 영화의 흥행은 장동건, 권상우의 액션 대결에 달려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국내 양대 배급사인 쇼박스(<야수 >)와 씨제이엔터테인먼트(<태풍>)가 맞대결을 치러야 한다. 이 둘이 쓰는 홍보, 마케팅비만도 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 자체가 영화다. 두 배급사에게 하반기, 사활을 건 작품인 것이다.
해양 액션, 태풍= 한국 영화 사상 최고액인 150억원의 순제작비가 투입된 곽경택 감독의 신작, 러시아·타이 등을 오가는 글로벌 로케, 그리고 장동건·이정재 주연. 이것만으로 <태풍>은 충무로를 압도하기 충분하다.
20년 전 남한으로 귀순하려다 거부당한 채 북으로 되돌려보내져 몰살 당한 가족을 기억하며 한반도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온 해적 씬(장동건)과 이를 쫓는 해군 장교 강세종(이정재)이 영화의 핵심 인물이다.
장동건은 그 어느 때보다 야성이 강한 눈빛과 거친 북한 말투를 내뿜는다. 무엇보다 액션 장르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해양 액션의 박진감과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국내 영화 최초로 김블 장치(대형 세트를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를 사용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특수효과팀이 이 영화에서도 실력을 발휘한다. 12월14일 개봉.
누아르 액션, 야수=주먹이 앞서는 형사 도영(권상우)과 냉철한 지성파 검사 진우(유지태)가 정계 진출을 노리는 암흑가의 보스와 대결하는 액션 누아르다. 제작진은 “정통 누아르의 전형적 관습을 따르진 않지만, 선악이 모호한 도시 사회를 그리면서 네오 누아르적 분위기로 간다”고 설명한다. <공각 기동대> <이노센스> <남극일기> 등에서 음악을 담당한 가와이 겐지는 “액션 영화이지만, 슬픈 느낌을 강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출, 음악 못지 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배우. 영화를 위해 10kg의 몸무게를 줄인 유지태와 몸짱 권상우의 리얼 액션을 지켜보는 맛이 쏠쏠하겠다. <카라> <삼인조> 등의 조감독을 했던 김성수 감독의 데뷔작인데, 순제작비만 50억원이 넘는다. <하면 된다> <연애소설> 등을 선보인 팝콘필름이 제작했다. 1월 중순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