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다섯은 너무 많아> 가족주의 틀 깨다 경쾌하게
2005-11-24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사진 : 김태형 (한겨레 기자)
안슬기 감독 인터뷰
<다섯은 너무 많아> 안슬기 감독

<다섯은 너무 많아>라는 제목은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70년대 가족계획 표어를 연상시킨다. 25일 전국 개봉하는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의 포스터에도 당시의 가족계획 포스터처럼 네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차이라면 등장인물들이 그다지 가족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가족에서 밀려나거나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기이한 인연으로 한 집에 모여 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경쾌하고 발랄하게 핏줄 이데올로기와 가족주의 판타지를 깬다.

장편 데뷔작 <다섯은 너무 많아>를 만든 안슬기(35) 감독은 현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다.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집으로 전화를 하면 의외로 무심한 부모들이 꽤 있었다”는 학생지도 경험이 가족이라는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데 배경이 됐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눈물과 화해로 그 안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영화들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가족이 채워준다고 생각했던 걸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대안 가족이라기 보다는 같은 핏줄이 아닌 사람들간의 느슨한 연대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연출의도다. 마지막 장면을 영화 초반 시내(조시내)의 단칸방에 들어왔던 소년 동규(유형근)와 연변처녀 영희, 영희를 짝사랑하던 분식점 주인 만수가 각자 자신의 삶터로 돌아갔다가 1년 뒤 조우하는 것으로 그린 이유이기도 하다.

<다섯은 너무 많아>

<다섯은 너무 많아>는 6000만원의 예산으로 완성한 디지털 독립영화지만 흔히 ‘저예산’‘독립’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갈 때 어쩐지 예상되는 ‘고독한 작가주의’가 그닥 느껴지지 않는다. 시내 일행이 영희에게 임금체불하던 만수나 동규를 괴롭히던 친구들에게 일사분란하게 복수를 감행하는 모습에는 장난기가 가득하고, 영화의 곳곳에는 장르영화의 컨벤션들이 잘 버무려져있다. “독립영화계에서 ‘대중영화로 돌아선거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독립영화인데도 재미있다’는 식의 홍보 카피를 보면 마음이 찔리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그는 “왕자웨이의 영화들이나 <세븐>처럼 잘 만든 상업영화를 좋아해온 성향이 영화를 만드는데 분명한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섯은 너무 많아>의 복수장면에서도 관객들이 통쾌한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어린 시절 교외지도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다니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워왔지만 “영화관 갈 용기는 내지 못했다”가 첫 학교에 발령을 받은 다음해인 99년 한겨레문화센터의 영화제작학교에 등록하면서 영화만들기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디지털장편 사전제작지원 공모에 당선돼 1900만원을 지원받아 겨울방학을 이용해 이 작품을 찍었다. 방학이 되기 전 자신은 따뜻한 교실에서 수업할 때 “그 추위에 달동네 헌팅 다니고 냉골방에서 촬영 세팅하느라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지금도 미안하다”고.

전주와 부산영화제를 거쳐 개봉을 앞둔 지금 영화사들에서 간간이 “한번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있지만 당분간 감독 겸 교사라는 겸업체제를 이어갈 생각이다. “이 영화 만들면서 대출받은 돈도 있고(웃음). 학교내 영화제작 동아리 지도나 교사 대상 영상 미디어 교육 등에 참가하는 것도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는게 그 이유. “상업영화판에 들어가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밀고 나갈만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도 크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안녕, 사요나라>와 함께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위원회의 첫번째 배급작이다. 씨네코아와 상암, 강변 씨지브이 등 전국 7개관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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