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혁과 봉태규가 형제로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의아했다. 한 군데도 닮지 않은 ‘친형제’라니, 사돈에 팔촌도 아니고, 이건 좀 억지가 심하다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광식이 동생 광태>는 ‘닮은 형제’ 이야기가 아니라, ‘안 닮은 형제’ 이야기였다. 형 광식이는 7년 동안 짝사랑한 여자에게 ‘좋아한다, 사귀자’ 한마디 못하는 소심남이고, 동생 광태는 한 여자랑 열두번 이상 자지 않는 바람둥이다. 계란 노른자와 흰자를 가르듯, 남자의 “배꼽 위 마음과 배꼽 아래 마음”을 나눠 캐릭터로 빚으면, 이들 형제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사랑에 미숙하다는 공통점 외에 광식이와 광태는 닮은 데가 없어 보인다. 김주혁과 봉태규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마주 보고 웃고 담소를 나누는 이들 사이의 친밀감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 그런 사이 아니에요.” 끌어안다시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다가 얼른 팔을 풀고 정색하는 시늉을 할 때도, 가볍게 미소만 지으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어흐흐흐” 하는 영구 스타일의 웃음소리를 낼 때도, 이들은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선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 추억을 만든 이들이 아니면 연출하지 못할, 즐겁고 따뜻한 분위기가 스튜디오에 차고 넘쳤다.
그러고나니, 이상하게도 김주혁과 봉태규의 닮은 점이 새록새록 눈에 들어온다. 우선, 이 남자들, 요즘 일복이 터졌다. 김주혁은 <프라하의 연인>으로 여성팬을 불려가는 중인데, <광식이 동생 광태>에 이어, <청연>의 개봉도 앞두고 있다. 봉태규도 부산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선데이 서울>을 선보일 참이고, <방과후 옥상>에 이어 <가족의 탄생> 촬영으로 겨울 내내 바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초창기 역할 이미지의 견고한 벽을, 이들은 언젠가부터 넘어섰다. 반듯한 모범생(<YMCA 야구단>)으로만 비쳤던 김주혁은 느끼하고 엉뚱한 연애 선수(<싱글즈>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로, 터프하면서도 순정적인 남자로(<프라하의 연인>), 따뜻한 연인으로(<청연>) 모습을 바꾸어댔다. 봉태규는 <눈물>로 화끈한 신고식을 치른 이래 ‘노는 아이’의 범주 안에서 <바람난 가족>의 솔직담대한 호기심 소년부터 <품행제로>의 ‘어디서 많이 본’ 소년까지 능란한 변주 솜씨를 보였고, <한강수 타령>에서는 ‘부모님이 좋아할’ 건실한 청년이 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김주혁의 표정과 봉태규의 몸짓이 이루는 ‘스펙터클’은 이들이 다다른 또 하나의 경지다. 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지, 도통 가늠하기 힘든 두 남자. 연기에 대한 욕심을, 형은 ‘쿨’하게 동생은 ‘핫’하게 표현한다는 점 빼고, 이들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