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아테네 청년들에게 가르쳤지만, 실은 가까운 이의 죽음은 가장 강렬한 철학의 연습장이다. 시월의 마지막 전날 오병철 감독은 우리에게 그런 선물을 주고 갔다. 그의 급작스런 죽음은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공부를 한 인연으로 간간이 만나 영화와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1기 동기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친지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외로이 투병하다 간 것도 매우 그다운 선택이다. 그래서 더욱 서운하고 슬퍼진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 날 그의 빈소와 화장장을 지켰으리라. 인간은 고결하게 살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고결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타르코프스키의 말이 오 감독 특유의 진지한 영정사진을 보며 불현듯 헤아려진다.
올해 봄 영화아카데미 동기 감독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성국극 영화작업을 진솔하게 말하던 그의 모습, 봄날 꽃잔치가 벌어지던 동국대 극장에서 ‘에코가무’ 생태환경주의 콘서트에 참석하고, 그 감회와 여성국극 영화건을 담은 그의 이메일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그의 마지막 흔적이다. 그러고보니 하나 더 있다. 지난 여름, <중앙일보>의 광복 60주년 기획으로 ‘영화 속 여성으로 본 60년’ 글을 쓰며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을 기억해낸 바 있다. “영화-여자는 ‘안개기둥’을 붙잡고 실존적 고뇌를 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비통해하다가,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제가 카메라 시선의 주인이 되는 영화 구상도 하고…”라고. 그때도 나는 오병철 감독이 <숲속의 방>부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리고 사라져가는 여성국극의 모습과 여성국극 스타 임춘앵을 담은 준비 중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여성-실존에 천착한 영화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새삼 발견하면서, 이해가 다하기 전 그와 그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게 숙제라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언제 한번 이야기해. 이런저런….” 지난 몇년간 서너 차례 우연히 마주쳤던 그가 헤어지면서 던진 여운이 깃든 권유를 이제야 고백적 독백체로 혼자 풀다니….
이제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흔히 말하는 작가론적 영화평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와 못다 한 영화 이야기를 글로나마 나누고픈 욕망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시월의 마지막 이틀을 같이 보낸 이들과 소통한 흔적을 숨쉬듯이 과장없이 풀어내고픈 욕망에서 이 글을 쓴다. 그의 부고 기사가 보여주듯이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극장용 상업영화 두편 <숲속의 방>(1992)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만을 만들고, 그뒤 침묵하다 사라져간 감독, 그리하여 부고 기사로만 그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데서 마감할 수 없는 그의 영화적 존재감을 알리고픈 열망이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이리라.
영화아카데미 1기 시절, 순수한 열혈청년
영화에 대한 열정과 개성이 강하다는 점을 공유했던 영화아카데미 1기 시절- 오, 이런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라니!- 오병철 감독은 과묵하고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영화청년으로 공기처럼 늘 함께했다. 두 번째 공동작업인 최인훈 희곡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연출 역할이 그에게 간 것도 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방가르드 퓨전사극쯤 되는 이 작품은 당시 연극작업도 함께했던 임종재 감독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다. 광주라는 참혹한 경험에 대한 죄의식과 억압이 내면화된 80년대 중반 상황에서 문둥이가 된 어머니와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원해서 스스로 문둥이가 돼버리는 상황은 사적 욕망에만 탐닉하는 게 불가능했던 개성 강한 우리 모두를 연대하는 주제였고, 또 그 모든 요구사항과 타박을 수용해낼 인재로 오병철 감독이 연출하는 데 동의했다. 현장지도를 맡아준 충무로 기술 전문 스탭은 밤장면에 일반적으로 쓰는 푸른 조명 대신 따뜻함을 보여주는 달빛을 반영하는 노란 조명을 쓰는 것에 반대했다. 당시 기술력으로 조악하면서 을씨년스러움으로 튀는 푸른 조명을 강렬히 거부한 건 조명을 맡은 황규덕 감독이었지만, 그런 실험적 조명을 비롯하여 온갖 비관습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앵글을 다 해보고픈 동료들의 요구를 영화적으로 수용하면서, 시대의식과 개인을 소통시키고자 한 우리의 영화욕구를 그는 차분하게 수행해냈다.
그의 졸업 작품은 낙태가 화두로 등장하는 <태아의 안식>(1984, 13분, 컬러)인데, 남녀가 임신과 낙태로 갈등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려낸다. 여자에게 낙태를 강요하며 속물처럼 굴던 남자가 막판에 뒷골목에서 급작스런 복통으로 몸을 웅크리며 몰락해가는 몰골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태아처럼 보인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그에겐 남녀관계를 연애놀이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가부장적 억압이란 현실이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 감염된 우리 속의 억압으로 인식하는 동물적 감각이 영화적 화두로 작동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숲속의 방>을 거쳐 거꾸로 기억하며 조립해보니 그 점이 확연히 들어온다.
<숲속의 방>은 80년대 운동권 후일담이라 할 만한 강석경의 동명소설을 공지영이 각색한 작품이다. 집에 며칠째 들어오지 않는 동생 소양(최진실)을 찾아가는 언니 미양(김성령)의 내레이션으로 풀려가는 드라마는 상업영화로 극장에 걸기에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심각한 주제이다. 어렵사리 비디오로 구한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두 가지가 마음 깊이 다가온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보여준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 즉 80년대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그의 사회인식, 더 구체적으로는 계급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 하나이다. 아버지가 사장이고, 할머니가 빌딩 월세로 부를 축적한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 부르주아 집안의 딸 소양이 운동권 카메라동아리에 가입하면서 겪는 분열과 이중성은 소양의 연애와 학교생활, 삶 자체를 질곡에 빠트린다. 소양은 집 정원에서 벌어지는 파티를 관찰하면서 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 모두를 안일하고 위선적인 천박한 부르주아의 전형으로 하나씩 분류해낸다. 소양의 냉정한 표정 클로즈업 숏 옆에 타이프라이터체 자막으로 또박또박 그런 분류의 문구가 새겨지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이다. 말하자면 이건 상업영화라기보다 의식화용 운동권영화 같은 기법이다. 후반에 소양이 동아리를 벗어나 부잣집 친구들과 어울리며 망가져가는 모습도 계급적 비유로 보인다. 그 부분에서도 낙태 모티브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미국 유학을 앞둔 남자친구와 가진 아이를 낙태하게 된 여자친구의 절망적 상황, 그 친구를 도우려 낙태 비용을 빌리려는 소양에게 남자친구는 냉혹한 현실논리를 들이밀고 소양은 어디에도 자신이 속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언니의 결혼식 전날 고흐의 그림(그의 소박한 방이 그려진 그림)을 선물하고 자살하는 소양의 방황의 끝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영선을 불러들인다.
남녀관계 속에서 가부장적 억압을 외치다
세상에서 오병철 감독을 기억하게 만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공지영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베스트셀러지만, 내용과 주제의식이 상업영화로 받기에는 버거운 탓인지 제작 자본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오병철프로덕션’을 만들어 여러 차례 시나리오 작가를 바꾸다가 결국 원작자가 각색하면서 힘겨운 과정을 거쳐 영화는 제작되었다. 80년대에 20대를 보냈던 세 친구가 30대 들어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면서 자신을 속이는 인생과 직면하게 되는 갈등과 질곡이 세 가지 결로 교차한다. 바랑둥이 남자선배와 동시에 데이트를 한 경력까지 공유한 대학동기 친구 혜완(강수연), 경혜(심혜진), 영선(이미연)은 영선의 자살파동으로 우정을 회복하지만 결국 그녀의 자살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인생의 계단을 하나 더 올라서게 된다.
이 작품은 창의적 앵글과 대비로 인한 미장센을 통해 갈등의 극한 심리적 상황을 뛰어나게 표현한다. 남편 뒷바라지로 영화공부를 포기한 영선이 의부증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며 극한 상황에 처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파티션으로 나뉜 두 공간에 떨어져 있는 두 인물을 잡는다. 특히 영선이 술을 마시며 들고 있는 유리술잔을 통해 남편인 박 감독을 잡는다. 현실에선 영선이 분열적인 정신병자지만, 이 앵글은 술잔 효과로 일그러지고 분열적인 박 감독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영선의 대사처럼 그는 싸구려 소주보다 그녀에게 위안이 못 되는 성공한 감독-남편이며, 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현실이란 보이는대로가 아닌 것이다. <숲속의 방>에서 미진했던 내면과 외면의 충돌로 인한 내면 심리는 영선의 모습에서 영화적 언어로 완숙하게 표현된다. 여기에서 내러이터인 작가 혜완은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이혼을 경험하는데, 오병철 감독 영화의 낙태 모티브가 거기서 다시 똬리를 튼다. ‘여자의 몸-임신/낙태’는 (결국 ‘무성적이어서 위대한) 모성-아이’라는 대립항을 불러들이면서 여성몸의 물신화/성애화와 모성신화에 걸쳐진 여성실존의 분열적 이중성을 폭로해낸다.
영화아카데미 20주년 단편 연작에서도 그가 만든 <순수>(2004)는 팜므파탈적인 이중적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파국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피·가학적인 그의 남녀관계는 가위눌리고 그 원인을 찾아가면서 폭로되는 실존적 내파적 파워에 집중한다.
그가 죽음과 맞서며 준비하던 여성국극 영화는 제작되지 않았다. “여성판 <패왕별희>로 이해해도 되는 거지?”라고 묻던 내게 커다란 안경테 넘어 그 선한 눈매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던 그는 여러 남자 역을 수행한 임춘앵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어눌한, 그래서 더 진지해 보이는 특유의 화법으로 설명하다 말았다. 젠더의 경계에 대한 그의 관심사를 둘러싼 내 질문은 이제 대화상대를 실종한다. 시나리오 작업비용을 얻으려고 시놉시스를 갖고 여러 제작사를 만났지만 완결된 시나리오를 써오라는 답에 낙심했다는 후일담을 들으며 한 친구는 냉혹한 돈의 논리만 가진 충무로가 그를 죽인 거라고 탄식한다. 아마도 그건 우정에 기반한 순진한 탄식일지 몰라도, 그의 내밀한 양성성의 매혹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 내겐 그가 실물존재로 없다는 것이 가을 막바지에 나를 감싸는 커다란 쓸쓸함과 자책을 동반한 상실감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