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는 정제된 기예와 은밀한 성적 자극으로 빚어진 존재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자부하는 게이샤는 춤과 노래와 샤미센 연주의 대가를 받는 듯하지만, 남자와 처음 동침하는 의식 ‘미즈아지’를 치르면서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부치기도 한다. 게류카이(花柳界), 다시 말해 꽃과 버드나무의 세계의, 비밀스러운 거주민. 새하얀 가루분으로 얼굴을 가린 게이샤는 고도의 양식미를 지닌 살아 있는 인형이자 베일 같은 화장을 벗겨내고 싶은 성적인 동경의 대상이었고 전통 기예의 정점에 선 장인이었다. 아서 골든의 베스트셀러 <게이샤의 추억>은 이름난 게이샤였던 이와사키 미네코(<게이샤, A Life>의 저자) 등의 도움을 받아 폐쇄적인 게이샤 저택 오키야의 진면목을 되살린 소설이다. 홍보를 위해 도쿄에 찾아온 감독 롭 마셜과 장쯔이 등의 배우들은 모두 <게이샤의 추억>이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고 입을 모았지만, 사유리가 게이샤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일생이 수백만부의 판매고를 기록하진 못했을 것이다.
한때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기로 했던 <게이샤의 추억>은 가난한 어촌에서 태어난 소녀 치요가 기온의 게이샤 사유리(장쯔이)가 되어 사랑을 얻기까지의 드라마를 담고 있다(스케줄 때문에 감독을 포기한 스필버그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예쁘고 영리한 치요는 니타 오키야에 팔려가 게이샤로서의 수업을 받게 된다. 아름다운 게이샤 하쓰모모(공리)는 치요를 미워하여 함정에 몰아넣지만, 그녀의 라이벌이자 최고의 게이샤인 마메하(양자경)는 치요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 사이 치요는 다리 위에서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던 자신에게 빙수를 사준 친절한 중년 남자를 마음에 담고선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반드시 게이샤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쓰모모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마이코(견습 게이샤)가 되어 사유리라는 이름을 얻은 치요는 사랑하던 중년 남자가 이와무라 전기의 회장(와타나베 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뷔작 <시카고>에서 1920년대 시카고를 뮤지컬의 무대처럼 재구성했던 롭 마셜은 이번에도 인공미가 넘치는 1930, 40년대 교토풍의 세트를 만들었다. 그는 “사유리의 여행을 모두 똑같이 경험하기 위해” 제작진과 함께 교토에 갔지만, 정작 그곳에서 찍은 부분은 산사 부근 기요미즈데라를 비롯해 극히 일부뿐이었다. 그리고 사유리가 살고 있는 니타 오키야와 게이샤 지구 하나마치 전체는 LA에 건설된 세트에서 찍었다. 고도(古都)라 해도 옛 모습을 간직한 지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치요가 기차를 타고 교토에 처음 도착하는 거대한 장면마저도 새크라멘토 철도 박물관에서 찍은 실내 장면이었다.
<게이샤의 추억>은 기모노를 입혀주는 장인을 제외한 남자는 친척이라 해도 발을 들이지 못했던 게이샤의 내실에도 다가갔다. 게이샤는 성장을 하기 위해 속옷에서 오비(기모노 위에 덧매는 장식띠)까지 20kg이 넘는 의상을 차려입게 된다. 목탄으로 눈썹을 그리고, 발갛게 연지를 칠하고, 새 발자국 모양으로 드러난 맨살을 제외하면, 목덜미까지 하얗게 분을 바른다. 의상 디자이너 콜린 애트우드는 집 한채보다 비싸다는 기모노를 만들면서 캐릭터의 개성을 염두에 두었다. 물의 운명을 타고난 청회색 눈동자의 사유리는 푸른빛 도는 회색 폭포줄기가 쏟아지는 기모노를 입고 회장의 사랑을 확인하고, 열정에 휩쓸리는 하쓰모모는 진짜 기모노보다 패턴과 컬러를 강화한 기모노를 입는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성적 환상을 더해주는 굽 높은 게다를 신고 기온 거리를 종종거리며 오간다.
롭 마셜은 <게이샤의 추억>에서 이중의 매혹을 느꼈다고 했다. 비밀에 의해 지탱되는 게이샤의 세계와 한 고아 소녀의 사랑. 그러나 영화와 원작은 ‘사유리의 추억’이 아닌 ‘게이샤의 추억’을 제목으로 택했다(이 영화의 일본 제목은 <사유리>다). 그 제목이 남자 앞에 무릎을 꿇은 여인들이 지순한 애정을 바치는 옛 동양의 환상을 자극한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개봉은 2006년 초.
“<기온의 자매들>과 <오하루의 일생>을 참고했다”
<게이샤의 추억> 롭 마셜 감독 인터뷰
1920년대 시카고를 떠들썩하게 재현한 <시카고>로 인상적인 데뷔식을 치렀던 롭 마셜은 또 한번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을 떠났다. 낯설기만 했을 1930, 40년대 교토, 그곳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지역 기온을 택했던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쁘게 <게이샤의 추억>을 보았는지부터 물었다. “낯선 이의 발자취를 더듬는 여행”과도 같았다는 제작과정. 새파란 서구의 눈동자를 지닌 마셜은 어떻게 이국의 오래된 러브스토리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가에 관한 답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게이샤의 추억>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으로 내정되었던 영화다. 어떻게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는가.
=프로듀서 루시 피셔와 더글러스 윅은 거의 10년 전부터 이 영화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소설을 다시 읽고 작가와 함께 각색을 시작했으며 원작자 아서 골든에게 가르침을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이 영화의 원작에 매혹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게이샤였다. 게이샤의 세계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며 신비롭고 관능적이다. 그 세계는 지금까지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이것이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고통받는 아이였던 사유리, 물을 닮은 그녀는, 투쟁하여 살아남는다. 나는 <게이샤의 추억>이 한 인간의 영혼이 승리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게이샤의 추억>은 매우 비주얼한 소설이었다. 막 출판되었을 때는 재미로 읽었지만,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다시 보니, 한장 한장이 매우 영화적이었고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게이샤는 일본 문화의 정수이면서도 신비에 싸여 있었다. 미국인인 당신이 이 세계를 그린다면 자칫 그 문화를 왜곡하거나 오리엔탈리즘에 압도되리라고 걱정하지 않았는가.
=<게이샤의 추억>을 다큐멘터리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1920년대 시카고에 관한 나의 인상이었던 <시카고>처럼, 나의 비전을 통해본 세계다. 리서치는 충실하게 했다. 게이샤들이 살고 있는 허구의 지역 미야코도 고증에 따라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했고. 하지만 그 다음엔 그 결과에서 떠나고자했다. <게이샤의 추억>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였다.
-게이샤를 이해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었나.
=<게이샤의 추억>을 만들면서 참고한 영화는 여러 편이었다. 나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니까. (웃음) 미조구치 겐지의 <기온의 자매들>과 <오하루의 일생>은 기온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에 관한 영감을 주었고 그 정서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오즈 야스지로에게선 다다미 숏이라 불리는 독특한 카메라워크를 배웠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은 비주얼적인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됐다. 서구감독으로는 전통적인 드라마에 능했던 데이비드 린이 있다. 그의 영화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 <인도로 가는 길>은 낯선 문화로의 여행이기도 하다.
-당신은 안무가이기도 하다. 게이샤에겐 춤이 중요한 예능인데, 동양과 서양의 춤은 어떻게 달랐는가.
=아시아, 특히 일본의 춤은 가부키로 대표되듯 모호하지만 절제되어 있고 정적이다. 그리고 매우 디테일하다. 반면 서구의 춤은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을 추구한다. 나는 <카바레> <시카고>의 안무가 밥 포시와 일한 적이 있는데, 재미있게도 밥 포시 또한 작은 몸짓이나 시선도 엄격하게 통제하는 인물이었다.
-<게이샤의 추억>의 주요 캐릭터인 사유리와 하쓰모모, 마메하는 모두 중국계 여배우들이 연기했다.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가.
=캐스팅에 관한 나의 원칙은 매우 단순하다. 배역에 가장 적당한 배우를 찾는 것이다. 감독으로서 나의 일은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므로 아름답고 뛰어난 배우를 찾기 위해 국제적인 캐스팅도 감수해야 했다. 사유리는 재능있고 아름다우며 춤을 출 수 있는, 그리고 15살에서 30살까지 폭넓은 나이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만이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배우가 장쯔이였다. 다른 배우들도 모두 비슷했다. 예를 들면 와타나베 겐을 만났을 때 그는 정말 회장처럼 보였다. 여러 국적을 가진 제작진이 모였기 때문에 촬영현장이 시끄럽긴 했다. 한마디를 하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통역을 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누군가 내가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어나 중국어로 이야기해도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감독과 배우는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 사이에 언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음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가.
=영화 한편을 찍고 곧바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는 감독도 있지만, 난 그런 건 잘 못한다. (웃음) 12월4일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사회가 있고, 6일엔 뉴욕 시사회에 참석해야 한다. 당분간 휴식이 필요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