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무라카미 류의 작품세계 [1]
2005-12-07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원작 소설 <토파즈>가 출간된 것이 1988년. 영화 <도쿄 데카당스>가 타오르미나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이 1992년. 그러나 한국에서 <도쿄 데카당스>가 개봉되기까지는 14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일본 대중문화의 금지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성인용’이란 딱지 때문이었고, 다시 ‘검열’이 문제가 되었다. 한국 영화심의제도의 기만성을 여실히 폭로한 <도쿄 데카당스>는 10년의 시간이 넘게 흐른 뒤에도, 여전히 ‘문제적’ 영화임을 증명했다. <도쿄 데카당스>의 홍보를 위해 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무라카미 류에게 그의 영화와 소설, 그리고 근황을 물어보았다.

<도쿄 데카당스>는 사도마조히즘(SM)클럽에서 일하는 아이의 일상을 따라간다. ‘일상’이기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는 전혀 다르다. 낯선 남자에게 수치스러운 말을 듣고 성적 학대를 당하거나, 목을 조르거나 채찍을 치기도 한다. 헤어진 애인의 흔적을 따라, 마약을 먹고 무작정 교외의 고급 주택가를 헤매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아마도 평생 접해보기 힘든 일상들이 <도쿄 데카당스>에서는 펼쳐진다. 소설 <토파즈>에서는 영화보다도 더욱 적나라한, 흔히 ‘변태’라고 부르는 온갖 행위들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그 ‘비정상’적인 모든 것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행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 역시 누군가에게 일상이다.

진실이 아닌 현실을 추적하는 자

무라카미 류는 그런 낯선 일상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가다. 1977년 군조신인문학상과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마약과 그룹섹스, 폭력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코인로커 베이비스>에서는 영아 유기와 테러리즘, <러브 & 팝>에서는 원조교제, <미소 수프>에서는 엽기적인 연쇄살인 등 무라카미 류의 작품들에는 은폐된 일상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 덕에 한국에서는 ‘엽기적인 소설’을 쓰는 작가로만 인식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비슷하다. 훨씬 대중적이고 유명하긴 하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진실을 추적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보다는 직관이 따르는 대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작가다. 누구나에게는 아니겠지만, 폭력과 섹스, 마약은 우리의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시선은 그런 ‘은폐’된 일상에 맞추어져 있었다. 요즘 들어 무라카미 류가 그런 엽기적인 현실보다 구체적인 경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은폐되었던 현실이 이제 상당 부분 수면 위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여전히, 비일상이지만.

무라카미 류는 변화하는 것, 이제 막 징후를 드러내는 무언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이 단지 소재주의라고 비판을 한다 해도, 그의 예민한 더듬이가 누구보다 앞서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무리카미 류의 작품들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것이 현실의 경향이나 구체적인 사건을 정확히 예언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인로커 베이비스>가 나온 뒤, 실제로 코인 로커에 아기를 버리는 일들이 숱하게 일어났다. 코인 로커에 버려진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복수하는 과정은, 마치 옴진리교의 테러를 적시하는 것만 같았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은 냉전의 해체와 신자유주의의 대두를 읽어내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미소 수프>는 고베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을 예언한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사랑과 살인부터 요리에서 정치, SM과 쿠바 음악 등 종횡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소재로 삼는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파문을 읽어낸다.

글과 함께 행동으로 보여준다

무라카미 류는 이론보다 행동을 앞세웠다. 그의 사춘기 시절을 알고 싶다면, <69>를 보면 된다. 더욱 밝게 채색된 영화 <69>도 좋고. <69>는 무라카미 류의 사춘기를 약간 농담처럼 비틀어버린 소설이다. 1952년 사세보에서, 미술교사인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무라카미 류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인다. 록음악에 심취하여 밴드 활동을 하기도 하고, 68혁명에 매료되어 실제로 고등학교에서 바리케이드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근처에 있던 미군기지 탓에 일찌감치 세계의 모순에 눈을 뜨기도 했고, 마약과 섹스에 쉽게 노출되기도 했다. 삼수 끝에 72년 무사시노 미대에 진학한 뒤, 무라카미 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NHK> 라디오의 DJ를 하고, <클라우디 요코하마>란 제목의 사진집을 내고,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영화제작을 시도하고, 테니스와 미식축구 슈퍼볼 등 각종 스포츠의 취재기와 칼럼을 쓰고, TV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하고, 쿠바 음악에 심취하여 직접 레이블을 만들어 음반을 내고, 본업이라 할 번역과 집필에도 몰두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를 제대로 하기도 힘든 시간에 무라카미 류는 수많은 일들을 해치웠다.

그래서 무라카미 류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선정적인 소재주의라는 말도 많고, 그저 엔터테이너에 불과하다는 말도 듣는다. 그동안 무라카미 류가 낸 수많은 소설과 에세이 등에는 범작, 졸작들도 꽤 있다. 새로운 소재를, 뻔한 교언영색으로 치장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무라카미 류의 작품들에는 분명한 가치관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 변화하는 물줄기의 수량을 측정하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찾아낸다. 자신의 작품 중에서 직접 고른 대표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테니스 보이의 우울> <코인로커 베이비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 <토파즈> <러브 & 팝> <미소 수프> <라인> <공생충> <엑소더스> 10편은 분명한 걸작이다. 선정적 소재인 원조교제를 다룬 <러브 & 팝>만 해도, 무라카미 류는 여고생들의 마음을 처음으로 그려낸다. 무라카미 류는, 원조교제의 본질이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내놓는 여성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모든 것을 타락한 남성들의 욕망으로만 보는 시각을 거부한다. 거기에는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아니 그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행동이 엿보인다.

무라카미 류는 1997년부터 JMM이라고 하는 이메일 매거진의 편집장을 하고 있다. JMM은 마음의 양식이 되는 좋은 글을 전하는 메일이 아니라 생활의 지식과 정보를 전해주는 경제 매거진이다. 소설가가 왜 경제를? 당연한 의문이지만, 무라카미 류에게는 그 선택이 당연한 과정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결코 경제를 외면하고는, 아니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버블경제의 붕괴와 동아시아 금융혼란의 과정을 본 무라카미 류는, 경제의 은폐된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언어를 다루는 작가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경제의 실상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JMM의 내용을 묶어서 낸 단행본의 테마는 ‘경기와 개인의 행복감’, ‘IT 혁명의 리얼리티-가치는 이익에 우선한다’, ‘교육에 있어서의 경제 합리성’, ‘소년범죄와 심리경제학’ 등등이다. 단지 경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를 어떻게 변형시키고 있는지,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한다. 경제는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동안 무라카미 류가 소설에서 보여줬던 일상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무라카미 류는, 현대사회의 모든 것을 그리는 작가다. <도쿄 데카당스>에서 아이를 묶고, 마약을 주사하는 남자는 말한다. SM은 믿음이라고. 적어도 그 순간의 말은 옳다. 어떤 순간에도 믿음은 필요하다. 그들이 SM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 순간만은 절대적인 믿음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이미, 공통적인 믿음이 존재할 수 없는 지경이다. 더이상 국가라는 허구적인 가치 안에,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해를 모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를 통해 현대사회를 해명하려는 무라카미 류는, 2000년 <엑소더스>란 소설을 썼다. 지뢰제거, 집단 등교거부, IT 회사, 독립국가 등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일본의 위기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위기를 찾으려는 것이기도 하다. ‘파편화’는 더이상 현대사회의 위기가 아니라, 존재 양태일 뿐이다. 서로 다른 집단이 한 국가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서로의 가치를 관철시키려고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존재와 집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자신의 고립된 집단을 탈출해야만 한다. 그래서 무라카미 류는 말한다. ‘일본’을 탈출해야 한다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존재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결론이야 언제든 똑같지만, 현실이 바뀐 것이다. 최근 무라카미 류는 <반도를 나가라>(半島を出よ)란 소설을 썼다. 북한 특수부대가 후쿠오카를 공격한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선정적 소재이지만, 그것 역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오디션>
<도쿄 데카당스

더이상 무라카미 류는 영화 연출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끊임없이 글을 쓰고, 뭔가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도쿄 데카당스>는 한국에서 문화적 충격을 주겠지만, 여전히 일본에서도 누군가는 화를 낼 것이다. 일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 때문인지, 몇년 전 무라카미 류는 <13살의 헬로워크>라는 청소년용 진로 가이드북을 쓴 적이 있다. 누구나 동의하는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자는 의미로 쓴 책이다. <토파즈>와 <13살의 헬로워크>를 쓴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겠지만, 무라카미 류의 주장은 분명하다. <엑소더스>의 표지에 쓰여진 문구처럼 ‘일본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당신이다.’ 마찬가지다. 세계는, 한국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무라카미 류가, 마약과 섹스와 폭력을 통해 그렇게 충격적인 발언을 거듭했던 것은, 딱딱한 가치관을 벗어버리고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도쿄 데카당스>를 봐도 그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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