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무라카미 류의 작품세계 [2] - 인터뷰
2005-12-07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정리 : 김수경
영화평론가 김봉석의 무라카미 류 인터뷰

“현실의 문제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다룬다”

지난 11월18일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영화평론가 김봉석과 <도쿄 데카당스>의 원작 소설가이자 영화를 연출한 무라카미 류 감독이 무라카미의 숙소에서 만났다. 어휘 선택이나 언어 구사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무라카미 류가 말하는 무라카미 류.

-드디어 한국에서 <도쿄 데카당스>가 상영된다. 개인적으로도 몇년 만에 다시 봤는데, 여전히 재밌었다. 과거 작품들에서 흔히 다뤘던 사도마조히즘(SM)이나 폭력, 마약에 관한 것들이 “과거 일본사회에서는 은폐된 것이었으나 지금은 일상이 됐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인터뷰 내용을 봤다. 어떤 관점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듣고 싶다.

=그것은 시대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1988년에 나왔다. 그 당시에는 은폐되어 있던 요소들이 최근에는 일반화됐기 때문에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식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설명하자면 과거의 일본에는 한쪽에는 확고하고 안정적인 사회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반사회적인 행동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확고해 보이는 안정적 사회가 사실은 반드시 그렇게까지는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그렇게 보이는 사회가 가진 불안감을 반사회적 행동, SM을 통해 폭로한 작품이 <도쿄 데카당스>라 할 수 있다. 사회에 내재하는 불안을 표현한 것이다. 반면 현재의 일본사회에는 과거의 안정적이고 확고한 사회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신문을 보면 이런 유의 범죄들이 분명 실려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동반자살을 하거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 동급생을 폭행하거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소녀를 몇년씩 감금하거나, 부모 자식간에 있을 수 없는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의 일본사회와 현 사회는 전혀 다르다. 확고한 과거의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아버지가 지나치게 딱딱한 사람이라서 너무 싫었지만, 그가 너무나 건강해서, 자신의 가치와 규율로 자식과 가족을 통제하고 다스렸던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아들도, 아버지를 걱정할 정도로 사회가 쇠약해졌기 때문에 불안한 지점을 지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일본사회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난해 <13살의 헬로워크>라는, 청소년들의 직업 선택에 관련된 책을 썼다. 이런 책을 쓴 사람이 <도쿄 데카당스>의 필자와 동일인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아마존에 평을 쓴 독자도 있더라. (웃음) 그만큼 나 자신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JMM이라는 이메일 매거진에 편집장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안다. 그 작업을 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그 이메일 매거진은 1997년경 시작됐는데 그 당시 <엑소더스>(일본 원제 <희망의 나라의 엑소더스>)라는 작품을 썼다. 취재 과정에서 인터넷쪽은 물론 금융과 경제쪽에 일하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당시는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전체의 경제 상황이 절망적일 만큼 어두웠다. 그래서 뭔가 작업을 한다면 금융이나 경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작가 혹은 예술가가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작업을 선뜻 참여하기로 결심하고 행동한 것은 어떤 이유였나. 그런 행동이 일종의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하나.

=이메일 매거진은 일본사회와 일본어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어에도 적용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컨텍스트의 문제다. 일본에 ‘경기’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굉장히 애매한 표현이다. 영어로는 절대 번역되지 못한다. ‘경기가 좋다’라는 표현에는 굉장히 다양한 수치들이 내포된다. GDP, 경제성장률, 실업률, 고용 창출, 통화량 등 실로 다양한 숫자가 뒤섞여 단 한마디로 표현된다. 하지만 ‘경기가 좋다’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경기가 좋다’는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을 살펴보자. 극심해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나 중앙과 지방간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음에도 ‘경기가 좋다’라는 표현에는 이러한 요소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모두가 뛰어다니던 고도성장기 시절에 자주 쓰던 ‘경기가 좋다’라는 식의 표현으로는 현재 상황은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경제전문가들은 언어를 다루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즐겨 쓴다. 나처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이런 부분에 관여를 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어떤 사회가 변화를 겪은 이후에도 사회 구성원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컨텍스트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인가.

=소설을 쓸 때도 근미래소설을 쓰려면 그 사회의 경제 상황이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에 민감하게 안테나를 돌리며 살아가고자 한다. 정치가들이 무조건 사회에 대해 거짓말하지는 않지만 부정확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일본사회에서 현재 이슈가 되는 우정사업 민영화와 도로공단의 민영화 문제를 보자. 모든 정치가들이 의견을 “국민을 위해 내놓는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국민은 더이상 하나가 아니다. 특히 연금문제에 관해서는 지방과 도시, 노소의 문제로 의견이 엇갈린다. 이런 내적 상황에도 어떤 정치가든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로 자신이 위하는 집단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 기성 언론도 이러한 애매모호한 언어구사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애매모호함을 지적하려 했고 앞으로도 관여할 생각이다.

-<토파즈>나 <라인> 같은 작품을 보면 SM을 다루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일부의 사람들이 감독을 엽기적인 작가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과거에 그 부분을 다루면서 그러한 것들이 현대사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SM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건설회사 사장인 마조히스트가 나온다. 낮에는 멀쩡히 사장 노릇을 하다가, 밤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어느 쪽이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일까?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둘 다 그의 모습이다. 사람이 가진 얼굴과 면은 무척 다양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이런 부분을 소설이나 영화 같은 예술작품으로 노출시키면서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조차도 자기의 전부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데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타자를 컨트롤하려고 하거나, 사회적인 틀 속에 사람들을 집어넣고 사람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는가? 인간은 좀더 겸허해져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코인로커 베이비스> <미소 수프>에서 실제 사건들을 미리 예견했다는 평가들이 많다. 어떤 징후가 보이는 현상들을 미리 소설로 써내는 작업을 많이 했다. 현실에서 벌어질 요소들을 어떻게 잡아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소재나 주제를 포착하는 방식에 관해 듣고 싶다.

=혹자들은 내가 미래를 예언 혹은 예견했다는데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누구든지 볼 수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기 때문에 못 볼 뿐이다. 그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이 과거의 컨텍스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일본사회는 이미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가 아니다. 빈부의 격차도 심해졌고 교육에서도 아이들의 격차가 벌어졌고, 지역과 세대의 격차도 분명하다. 이렇게 굉장히 여러 방향으로 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이해관계가 달라도 하나로 움직였던 과거와 오늘날은 다르다. 문제는 과거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격차가 현재는 실제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표면화된 사실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구는 부분을 작품화할 뿐이다. 그러다보면 문제점을 외면하는 사회가 새롭게 앞으로 떠안게 될 문제가 보이게 된다. 그것은 논리적인 추리력에 의해 보이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을 왜 안 보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컨텍스트에 집착한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앞으로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스스로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용이 없는 만화나 쓸데없는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의 공포에서 스스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도망치려 해도 갭은 이미 발생했고 실제 있는 문제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그래서 그것을 작품화하는 것이다.

-쿠바 음악을 소개하는 일 등으로 쿠바에서 공로상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감독에게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쿠바에 자주 가기는 했다. 댄스와 음악을 좋아하니까. 관광객으로 다녔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면 쿠바사회가 사회주의라는 것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조사해보니 카스트로가 원래 사회주의자는 아니더라. 그는 혁명을 성공시킨 뒤 미국을 방문하고 미국 각계각층에서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그 규모가 너무 적어서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웃음) 그래서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쿠바의 토지를 국유화해버린다. 당연히 미국 내 자본가나 정치가들은 반발했다. 그리고 카스트로는 그때 처음으로 크렘린에 전화를 했다. 일종의 도피라고 할까. 자세히 보면 그는 사회주의적 기치로 혁명을 한 게 아니었고 일단 독재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킨 뒤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어서 사회주의를 새롭게 적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전이 없어졌는데 지금 사회에서 과연 이데올로기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 포괄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데올로기의 어원은 ‘사회적인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런 근본적인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어느 사회나 필요하다. 되도록 공평한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적 공평함, 다들 똑같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기회가 균등해야 하고 쓸데없는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근원적인 이상은 필요하다.

-지난해 북한을 다룬 작품(<반도를 나가라>)을 쓴 걸로 알고 있다. 어떤 내용의 이야기인가.

=스토리가 자극적이며 충격적이다. 북한 반란군이 후쿠오카를 점령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이념을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대비를 위해서 북한을 끌어온 것이다. 일본과 북한은 생활습관, 사회적으로 걸어온 역사, 문화적 배경, 심지어 정치체제조차도 공통점이 없는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비시킨 이유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심각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나가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이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중요하다. 오늘날 한-일관계를 보면 한국에도 반일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고, 일본에서도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본인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감정의 시대가 아니다. 앞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은 인내가 필요하고 신중히 임해야 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성을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앞으로 당신의 작품을 보는 독자들에게 필요한 전제 같은 것이 있을까.

=일본 내에서도 작품에 대한 평가가 워낙 극단적이다보니 싫어하는 사람은 죽어도 싫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블로그 같은 데서 작가 이름만 봐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니까 그런 쪽에는 앞으로도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웃음)

-한국에서 15년 만의 개봉인데 서두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아직 충격일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개봉을 했을 때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굉장히 격분했고 심지어 극장을 뛰쳐나간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개봉을 하게 되면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열린 마음으로 선입견을 버리고 작품을 끝까지 감상하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배우가 아닌 시마다 마사히코(소설가), 구사마 야요이(화가) 같은 분들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 자체도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과 1974년에 발표된 쿠바 음악을 가져온 주제가도 기대해도 좋다.

-1977년 데뷔한 이래 작가 혹은 문화인으로 사는 동안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나 인물이 있다면 무엇인가? 음악이나 문화적인 것부터 사회적 사건까지.

=예술적인 면으로는 쿠바 음악과의 만남이 임팩트가 제일 컸고, 사회적으로는 버블경제의 붕괴이다. 후자는 나뿐만 아니라 일본사회 전체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물을 보는 것이 더 치밀해지고 냉철해졌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김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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