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그가 그린 마음의 지옥도, <소름>의 김명민
2001-08-08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정말 돌겠다” 했다. 운명과 저주가 넝쿨처럼 얽히고 꼬인 미금아파트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소름>의 마지막 장면. 8시간 동안 얼음 같은 빗물을 맞으며 영화 속 용현뿐 아니라 배우 김명민도 그렇게 “돌고” 있었다. “감독님은 리허설도 늘 진짜처럼 하길 바라셨어요. 마지막 신을 찍을 때는 살수차의 물이 떨어지는 대로 고드름이 될 정도로 추운 날씨였고, 가끔 건더기까지 따라오는 물을 맨 눈동자에 그대로 맞는데,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죠. 사실 너무 힘들어서 ‘슛 들어가면 잘할게요’ 했다가 얼마나 야단을 맞았는지….”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다”라며 은근한 경쟁을 부추긴 윤종찬 감독의 작전(?) 때문인지, 두 배우는 한참을 서먹한 상태로 촬영장에서 스쳤다. “먼저 말붙이는 성격이 못 돼서, 진영이가 많이 답답했을 거예요.” 내놓고 하는 멜로라면 오히려 쉬웠으련만, 너무 사실적이라 건조하기까지 한 남녀관계를 표현하기란 누구 한 사람의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진영이가 워낙 악바리처럼 연기를 했어요. 촬영장에서도 늘 대본만 파고 있고, 그런 모습이 저에게 큰 자극이 된 것 같아요.” 이런 아름다운 경쟁(?) 덕분인지 <소름> 속에서 만나는 그는 ‘용현 그 자체’다. “두 종류의 배우가 있는 것 같아요. 웃고 떠들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 온종일 그 신 하나 찍기 위해 ‘심정적 스탠바이’를 해야 하는 배우,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누가 “물 한잔 줄까?” 물어도 퉁명스럽게 “필요없어”라고 대답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기도 하며, 김명민은 그렇게 피폐하게 5개월을 살았다.

“집안에 목사가 두명이나 있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신학을 전공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만화특급>의 애니메이션자키로 잠시 일하다 96년 SBS 탤런트공채에 합격했다. “뒤통수 단역부터 누구누구 친구” 그렇게 몇년간 조·단역을 거친 뒤 <카이스트>에서 로켓 만들기에 일생을 건 학생으로 출연해 2주 동안의 에피소드를 듬직하게 채웠고, 이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뜨거운 것이 좋아> 같은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다. “미니시리즈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빌딩에 <소름> 제작사가 있었어요. 관계자가 명함을 주시며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윤종찬 감독은 “여성화돼가는 남자배우들 틈에 보기드물게 남성적인 힘과 선을 갖춘 배우”라는 확신으로 김명민을 캐스팅했다. “진영이에게는 ‘채우는 작업’을, 저에겐 ‘비우는 작업’을 하라고 하셨어요. 첨엔 무슨 말인가 했지만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요. 영화란 적절한 에너지 조절이 필요한데 그동안 나도 모르게 어깨와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감독님은 늘 ‘눈 풀어라’ 그리고 ‘그 눈빛을 진짜 보여줘야 할 때부터 보여줘라’고 하셨죠.”

‘지옥에서의 한철’을 보낸 김명민. 지금 그의 얼굴에서 전혀 <소름>의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인터뷰를 내내 흐뭇한 미소로 그를 지켜보는 ‘그 사람’ 때문일 것이다. 6월9일 이후 ‘우리 색시’가 된 이경미씨는 일본 게이요대학을 졸업한 미모의 재원. 영화개봉부터 주말드라마 촬영까지 결혼 이후 서로 얼굴 볼 시간조차 없던 터라 새 신랑은 인터뷰장에 부인을 대동하는 ‘기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힘이 많이 돼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이때, 이제 그가 ‘그녀만의 남자’가 아닌 ‘관객의 남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이건 새 신부에게 너무 가혹한 저주일까? 아니면 이 부부에게 내려진 첫 번째 축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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