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태풍>의 배우 이정재
2005-12-23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배우 이정재가 해군장교 강세종의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다. <태풍>의 실질적인 개봉을 하루 앞둔 화요일 오후, 평소 그가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이 건물은 이정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크런키’ 광고를 제작했던 광고사 사무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배를 따라 인사나 하려고 들렀던 사무실에서 그는 초콜릿 광고의 주연으로 발탁됐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바특하게 잘렸던 머리칼도, 검게 탔던 피부도 사라지고 하얀 얼굴로 돌아온 그는 긴장한 기색없이 케이크를 먹고 차를 마시며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간간이 터지는 활짝 웃는 웃음도 여전했다. 열네 번째 출연작 <태풍>을 말하는 충무로 11년차 이정재의 이 배우가 살아가는 법. 그리고 이 남자가 살아가는 법.

-2004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필모그래피에 빈칸이 생겼다. <태풍>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것이 언제였나.
=지난해 3월에 시나리오 1고를 받았다. 사실 <태풍>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곽경택 감독님에게 먼저 만나자고 말했다. 어차피 할 작품이라서 지난해 12월에 도장을 찍었다. 장동건씨도 그때 같이 계약했다. 시나리오가 어떻게 나오건 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처음에는 해적영화 성격이 강했는데 강세종 캐릭터를 감독님이 많이 부각시켜주셨다. 동건이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웃음)

-그전에도 그렇게 사람들을 믿고 간 사례가 많았나.
=<태양은 없다> <정사> 정도. 그리고 몇편 더 있는 것 같다.

-출연작을 결정할 때 직관이 영향을 끼치는 편인가.
=그런 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면 시나리오를 좀 봐야 하지만 꼭 해보고 싶은 역이면 거의 전적으로 맡겨버린다.

-이재용 감독의 <정사>는 데뷔작이었는데도 그런 판단을 했다.
=이재용 감독은 내가 데뷔를 준비하던 1993년쯤 누군가의 소개로 몇번 만났다. 나중에 괜찮은 감독이 될 것이라고 주위에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무척 섬세하고 아는 것이 많더라. 저런 사람이면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 싶었다.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영화는 사람들이 하고,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작업이니까 사람을 믿는 것이 좀더 정확한 판단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럼 <태풍>은 누구를 믿고 결단을 내린 것인가.
=당연히 곽경택 감독이다. 곽 감독 전작들을 보고 이야기 구성이나 그것을 뚝심있게 화면으로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갔더니 곽 감독의 반응은 어땠나.
=“아, 저 연락하려고 했습니다”(웃음) 이러시더라. 그래서 “아이 그냥 같이 하시죠”라고 답했다.

-강세종의 캐릭터는 원래는 씬(장동건)처럼 욕망이 강한 인물이었다가 현재의 담백한 군인으로 변화됐다. 본인은 현재의 캐릭터가 더 맘에 든다고 했는데, 상세히 설명한다면.
=처음에는 세종도 씬과 비슷했다.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이지만 성향이나 코드가 비슷하기 때문에 싸운다는 설정이었다. 지금의 캐릭터로 변화한 뒤에는 전혀 다른 두 인물이 싸워나가면서 동화되는 모습이 오히려 간결하고 힘이 있다고 느껴진다. 강세종은 엘리트이고 씬은 인생의 바닥을 친 인물이니까 충돌이 원래 설정보다 선명해졌다. 강세종은 전형적인 캐릭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군인이면 저럴 것 같다는 모양새와 폼을 가진 사람. 누구를 추적할 때는 터미네이터 같지만 이야기를 할 때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의 반듯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 외모나 대사 톤, 표정에서도 잔가지를 많이 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너무 전형적이면 옛날 영화 같고 촌스러워질 수 있으니까 그걸 피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했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고 자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라 어려웠다. 정서적으로는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형이나 말투는 딱딱하고 싸늘하지만 사실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옅게 드러났으면 싶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강세종이 씬에게 감정이입하는 맥락은 관객 입장에서 쉽게 이해가 된다. 세종 역을 맡은 입장에서 씬이 세종을 이해하는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누나 최명주(이미연)의 존재 때문에 씬은 세종을 이해한다. 누나의 마지막 대사가 동생이 돈을 많이 벌어서 남한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는 내용인데, 이를 누나가 제지했던 기억과 세종이 누나를 대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맞물리면서 씬과 세종은 점점 서로를 살펴본다.

-세종이 누나를 데리고 도망치는 씬에게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찬가지로 누나 때문에 쏘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강세종의 인생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더 상세한 설정이 있었는데 축약해서 단 한순간의 감정을 담아낸 것이 눈빛이 마주치는 그 장면이다.

-‘액션 연기는 자신있고 나중에 먹고 싶은 음식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태풍>에는 본격적인 액션 연기가 많고 준비도 6개월 넘게 했다.
=강세종의 액션은 다른 영화보다 힘든 지점이 있다. 고도로 훈련받은 군인이기 때문에 자세가 일단 다르다. 일반 건달이나 형사라면 자기 스타일대로 움직이지만 강세종은 체포술, 호신술, 제압술처럼 각각의 형태가 존재한다. 씬은 자기 스타일의 액션을 보여주면 되지만, 세종은 단 한 동작이라도 그 기준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한다. 게다가 출입국 심사장 장면에서 타이 덩치들 서너명을 제압하고 내려가는 장면도 힘들었는데 그건 또 통째로 덜어내셨다. (웃음)

-<태풍>을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 원래 6월에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11월에 들어갔다. 무술 훈련을 11월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웃음) 촬영장에서는 겨울에 태풍이 들이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스탭들도 그때는 정말 고생이 많았다. 그럴 때는 정말 죽고 싶다. 살을 대패로 막 벗기는 것 같다. 방금 정우성씨가 전화했는데, 오늘 <중천>이 밤 촬영에 비 뿌리는 설정이라더라. 듣기만 해도 오싹하다.

-<태양은 없다> <오! 브라더스> 등 버디무비에 자주 출연했고 평가도 좋았다. <태풍>도 넓은 범주에서는 버디무비라 할 수 있다. 버디무비를 선호하는 편인가.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어떻게 보면 씬의 캐릭터가 너무 세서 여간한 캐릭터로 부딪쳐서는 박살나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랑 일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부분은 개의치 않는다. 내가 하기 나름이니까. <태양은 없다>에서도 정우성씨 역할이 더 연민이 생기고 서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때도 <비트>를 만들었던 스탭들이 고스란히 이어진 프로젝트였고, <비트>에서 임창정씨가 보여줬던 환규 같은 캐릭터를 심화할 수 있는 장점이 홍기 역에 있다고 판단했다.

-두 남자가 등장하면 상대적으로 현실감이 묻어나는 역으로 출연한 경우가 잦다. 멋진 역을 하고 싶은 건 젊은 남자배우라면 인지상정일 텐데.
=멋진 남자 혹은 캐릭터에는 별로 욕심내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 영화에 투입돼서 찾을 게 없다면 그건 못하는 거다. 정우성, 장동건이 찾는 게 열이라면 나도 똑같이 열을 찾을 필요는 없다. 나는 다섯만 갖더라도 정확히 내가 생각했던 걸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 얻고자 했던 다섯을 해내면 내가 그 작업에 참여한 의미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즐거운 작업이 최우선이고 배우로서의 삶을 길게 봐야 하기 때문이다. 멋진 건 나중에 나도 하면 된다. (웃음) 나는 어차피 본전이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기 영역을 깨뜨리거나 자유롭게 움직이는 데는 과감한 편이다.

-이번에 3개월 정도 최형인 선생의 수업을 받은 걸로 안다.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레슨을 받은 것인가.
=강세종 역에 관해서는 레슨을 받지는 않았다. 그냥 신인 연기자 지도하듯이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기초를 한번 다시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저히 기본기와 기초에 대한 부분만을 부탁드렸다. 배우가 서 있는 자세, 호흡, 감정을 조절하는 법 같은 요소들이다. 무수한 단점만 지적하시더라. (웃음) 이를테면 “너 왜 허리를 꾸부정하게 하니. 배우가 서 있는 게 그게 뭐야. 너는 목소리가 좋은데 왜 제대로 내지 못하는 거야”라고. VIP 시사 때 오셨기에 “진단을 더 정확히 내려주고 처방을 써달라”고 조르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수업을 시작하자고 했다.

-일반 관객은 대체로 스타와 성격파 배우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당신은 스타와 성격파 배우의 중간쯤에 놓이는 면이 있다. 한쪽으로 규정되지 않아서 서운하다거나 평가절하됐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가.
=그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 (웃음) 어느 쪽에도 연연하지 않는. 스타는 자기가 아니라 남이 만들어주는 호칭이다. 생각이 자꾸 그리로 가면 배우 자체의 프로페셔널한 면이 부족해진다. 결과가 잘 나와서 부수적으로 스타가 되는 것은 좋다. 어른들이 말하는 ‘돈 좇아가면 돈 절대 못 번다’는 맥락이다. 내가 배우를 계속 하는 데 지장이 없고 함께한 스탭들이 만족할 정도만 흥행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두편은 흥행이 어렵더라도 배우라면 꼭 하고 싶은 작품은 계속 해야 한다. 이를테면 <태풍> 같은 대작이 좀 잘되면 다음 작품은 하고 싶은 걸 한두편 할 수 있는 흐름을 갖고 싶다. 매번 대작이나 흥행작만을 겨냥하면서 연기할 수는 없다. 소재가 덜 대중적이거나 적은 예산의 영화라도 연출자와 내가 가진 성향과 지향점이 비슷하다면 작업이 재밌을 것이다. 그게 더 중요하다.

-<칠수와 만수>를 중학교 때 봤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편인가.
=배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영화 보는 것은 정말 좋아했다. 골재업을 하셨던 아버지도 주말에 하는 TV영화는 시험기간이라도 보여주실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정도부터는 혼자 500원짜리 극장에 영화를 보러 다녔다. <칠수와 만수>도 중학교 때 동아극장에서 봤고, <베를린 리포트>도 봤다. 강수연 선배의 노출신이 있다는 예고편에 현혹됐거든. 그런데 봤더니 기대를 저버리더라. (웃음)

-영화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 반대가 덜했을 것 같다. 영화광이신 아버님에 외동아들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워낙 고지식하셔서 배우 한다고 말했을 때 1년 동안 인사도 안 받으셨다. “얼굴에 분칠하는 직업을”(웃음)이라고 하시더라.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하면 인사도 안 받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드라마 <느낌>을 할 때였다. 촬영하고 집에 오니까 “너, 드라마 안 봤지? 녹화해놨다”고 하시더라. 엄격한 편이시라 요즘도 한 작품 끝나면 “연습 좀 해”라는 말씀을 제일 많이 하신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안진우 감독은 “이정재는 편집 포인트를 아는 배우다”라고 이야기했다. 현장 모니터가 없던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일까.
=나뿐만 아니라 오래한 사람들은 그게 몸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렌즈 사이즈를 배우가 확인하고 연기할 것을 촬영감독님들이 요구했다. 그래서인지 데뷔 시기에 따라 연기의 색깔이 다른 부분이 있다. 1994년에 데뷔한 나도 스스로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연기의 타성 같은 게 묻어 있더라. 그래서 연기 레슨을 다시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성적으로 연기하는 본인은 못 느끼지만, 그러다보면 관객과는 점점 멀어진다. 연기는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생각은 좀 위험하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배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전환점이 된 사람을 셋만 꼽으라면.
=일단 롯데 크런키 광고를 만드신 김종원 CF감독. 그분 때문에 내가 데뷔했으니까. 원래 다른 모델이 정해져 있었는데 신인인 나를 고집스럽게 기용해주셨다. 그리고 <오! 브라더스>의 김용화 감독. 그 작품을 하면서 레슨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레슨을 다시 받으니까 연기자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스스로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고 느꼈고, 그걸 함께 고민해주어서 김 감독에게 고맙다. 그리고 마지막은 뭐 지금 여자친구. (웃음) 중학교 이후 마음은 있었지만 거의 교회를 안 나갔다.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다시 교회를 나가고 있다. 그 친구와 식구들은 모두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어머님이 다니시는 조그만 개척교회를 같이 다니는데 너무 좋더라. 눈앞의 욕심보다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배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소에는 영화도 같이 보고 큰 서점에서 책도 고르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다른 애인들과 거의 비슷하다.

-처음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을 기억하는가.
=김종원 감독님이 만든 크런키 광고였다. 그게 35mm 필름으로 찍은 광고다. 연기를 해봤어야지(웃음)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데 ‘걸어봐라, 저기 서봐라’ 하시는 거다. 나중에는 “CF 찍을 때 필름 1만자 쓰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필름 한통 사와”라며 호통치셨다. (웃음)

-연극에도 욕심이 있을 것 같다.
=좋은 캐릭터라면 당연히 하고 싶다. 1996년에 뵌 이윤택 선생님은 예전부터 같이 하자고 하셨는데 그분도 바쁘고 나도 바쁘면서 미뤄졌다. 영화 시나리오를 기다리는 동안 좋은 연극 대본이 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봉이 하루 남았다. 대장정을 끝낸 소감이 있을 텐데.
=시원섭섭하고 설렌다. 찍을 때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현장에서 곽경택 감독에게 “형, 이게 16부작인데 이제 1부가 끝난 거면 좋겠다”라고 농담했더니 “야,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이 개고생을 하는데”라고 손사래를 치더라. (웃음)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붓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영화다.

장소협찬 A.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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