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맥기니스는 지난 3년을 길 위에서 보냈다. 그의 강인하고 이국적인 얼굴을 시청자의 뇌리에 각인시켰던 한 이동통신회사 광고의 계약 때문이었다. 3년간의 계약 기간 동안 그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하나 맥기니스는 이를 가혹한 처사라 여기지 않는다. “광고의 컨셉이 마음에 들어서 괜찮았다. 오히려 그 광고로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어쨌거나 시간도 남고 특별한 계획도 없었던 그는 아끼는 셰보레 픽업트럭에 몸을 실었다. 미 대륙은 광대했다. 한 도시에 3주 이상 머무르는 일은 없었다. 그냥 바람을 맞으며 길을 따라 움직였다.
여행이 끝나는 순간 좀더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태풍>이었다. 데뷔작인 이재한 감독의 <컷 런스 딥>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제외한다면, <태풍>은 배우 맥기니스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커다란 기회였다. 곽경택 감독의 부름을 받자마자 그는 타이로 달려가 거대한 바람에 올라탔다. 쏨차이는 씬의 그림자다. 독기어린 씬의 주위에 항상 머물면서, 그를 위해 총을 들고, 그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하지만 <태풍>에서 쏨차이라는 ‘인간’을 보기는 힘들다.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집중하기 위해 쏨차이의 분량이 조금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인지 조심스레 물어보자 맥기니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무심한 말투로 설명한다. “장동건과 헤어지는 장면이다. 쏨차이는 헤어지는 씬에게 왜 우리는 지금처럼 살 수 없는 거냐고 물어본다. 매우 감정적인 장면이다.” 그러나 잘려나간 장면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고향 사람들과 평화로이 살아가길 원하는 과묵한 쏨차이의 영혼은 맥기니스에게 맞춤 슈트처럼 잘 휘감긴다.
혼혈배우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옅어진 지금, 한국에 계속 머무르면서 미래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솔직히 혼혈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한정되어 있다. 물론 지금이 나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때이긴 하지만,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악센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관객이 나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저 어떤 기회가 또 주어질지 조용히 기다려보고 싶다.”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새로운 것이 좋다. 모든 것을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마음으로 유지하고 싶다”는 이 남자에게, 어쩌면 한국은 앞으로 지나치게 될 수많은 정거장 중 하나에 불과할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