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년 한국영화 10대 이슈 [3]
2005-12-29
글 : 이영진
글 : 김수경
글 : 문석
일러스트레이션 : 김대중

7. 한국영화, 아시아의 문을 열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수출·흥행 호조, <데이지> <묵공> 등 합작 투자·제작 등도 활발

<외출>은 27억2천만엔을 기록했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30억엔을 넘어섰다. 2005년 한국영화 두편이 일본 극장가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며 드라마에 편중됐던 한류가 영화로 확산되는 조짐이다. 12월29일 일본에서 DVD 출시를 앞둔 <외출>의 강봉래 PD는 “과거와는 달리 한국영화를 보는 저변이 넓어지면서 <외출>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흥행했다고 생각한다. 일본 관객이 한국영화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전개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이는 향후 다양한 한국영화, 감독, 배우들이 관객에게 어필하리라는 개인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에서는 지진희가 출연한 <퍼햅스 러브>에 이어 쇼이스트가 투자했고 장동건이 출연한 <무극>이 개봉 첫주 111억원(7452만위안)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하며 <쿵후 허슬>과 <연인>을 넘어서는 중국 역대 최고의 첫주 스코어를 기록했다. <무극>은 한·중·미 합작 프로젝트다. 국내에서는 수입영화로 분류되지만 쇼이스트는 공동 프로듀서 크레딧을 갖는다. 이러한 결과는 일방적인 콘텐츠 수출이나 스타 파워에 의한 관객 동원이 아닌 합작 투자나 글로벌한 프로덕션을 통한 성공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따라서 내년에 개봉될 유위강 감독의 <데이지>나 장즈량 감독의 <묵공>의 성패가 주목된다. 사실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률 둔화와 부가판권 시장의 쇠락을 감안하면 아시아 시장 진출은 2006년 한국 영화산업의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일본시장에서의 프리세일과 스타 마케팅의 지속 유무가 현실적인 첫 번째 관건이며 중국 현지 프로덕션에서 한국영화들이 계약과 현장 진행에 고전했던 과거사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중국 감독에 한국 배우가 기용되는 현재의 주된 흐름 외에도 다양한 프로덕션 형태를 고민해야 할 국면이다.

8. 예술영화, 그들만의 리그

김기덕, 홍상수 등 해외 및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 관객에겐 외면당해

1226명.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김기덕 감독의 <활>을 본 관객은 겨우 1천여명이다. 3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 또한 단관 개봉한 <활>보다 많은 12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된 것을 감안하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칸, 베를린, 베니스 등 해외 주요 영화제에 초청받고, 또 수상까지 해온 작가들이 국내 관객에게는 외면에 가까운 푸대접을 받았다. 이들 감독들은 해외 배급 경험을 염두에 두고 소수관을 중심으로 한 장기 상영 전략을 택했지만, 이들의 실험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간 듯하다. 얼마 전, <씨네21>이 영화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더라도, 이들 감독들은 해외에서 받는 후한 평가에 비해 국내에선 그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자신의 작품을 개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김기덕 감독이 울분을 터트릴 만한 상황이다. 임권택 감독 또한 얼마 전 <천년학> 투자에 어려움을 겪어 촬영 시작이 내년 3월로 미뤄진 것을 보면, 예술영화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됐다. 그러나 올해 예술영화의 고전을 단지 관객의 편식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들을 텃밭으로 갖고 있는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지나치게 흥행 위주의 식단을 짜면서, 예술영화의 입지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해외 자본이 아니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허우샤오시엔과 직접 영화 표를 파는 차이밍량의 고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2005년의 한국 영화시장은 대만의 상황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9. 스탭 노동자들 뭉치다

스탭노조·스탭조합 출범

지난 11월30일 감독(DGK), 시나리오작가(sgk), 미술감독(PDGK), 촬영감독(CGK)들이 동업자 조합을 결성했다. 제작 현장에서 각 파트를 책임지는 수장인 이들은 앞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조합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규약을 지켜나갈 계획이다. 이에 화답하듯 현장 스탭을 중심으로 한 전국영화산업노조(이하 영화노조, M-U)도 12월15일 출범했다. 촬영, 조명, 조감독 지부를 산하에 둔 영화노조는 클로즈드숍(노사간의 협정에 의해 조합원만을 고용하는 제도. 조합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한 자는 고용할 수 없다), 단체교섭, 4대보험 등 영화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이로써 프로덕션의 합리화와 스탭 처우 개선에 대한 최소한의 초석이 연말에 마련됐다.

영화노조는 먼저 단체교섭의 대상을 확정하고 추진할 전망이다. 노사라는 기초적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단체교섭의 시작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노조의 단체교섭에서 쟁점은 클로즈드숍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제작사 혹은 투자사 입장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고, 영화노조는 절대적으로 관철하려는 태도라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성의 문제는 영화노조와 조합에서 공히 다루게 될 사안이다. 조합은 출범자료를 통해 노조나 협회와의 성격차를 규정했지만 현안을 다루는 주요 사업항목에서는 감독, 촬영, 미술감독 공히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를 주요 쟁점으로 지적했다. 이는 향후 조합과 영화노조의 연대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고병철 영화노조 조감독지부 임시지부장은 “신생 노조이므로 조직을 안정화하고 지부 총회를 여는 것이 급선무다. 조감독지부에서는 단체협상안을 제출할 때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계약 정착과 인건비의 현실화를 우선 현안으로 제시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10. 독립장편, 상업극장에 진입하다

<목두기 비디오>부터 <용서받지 못한 자>까지, 독립영화 개봉 러시

2004년 독립영화계는 디지털 장편의 왕성한 제작이 화두였다. 2005년은 그러한 독립장편영화가 상업영화관으로 진입하는 원년으로 기억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윤준형 감독의 <목두기 비디오>를 시작으로 2004년 <송환>의 성공으로 고무된 인디스토리가 옴니버스 3부작 <동백꽃>과 채기 감독의 <빛나는 거짓>을 개봉시켰다. 또한 인디스토리는 HD프로젝트 <8월의 일요일들>과 <눈부신 하루>를 자체 제작해 곧 개봉할 계획이다. 스폰지가 배급한 <거칠마루>도 영화제를 거쳐 극장가로 진입했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배급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와 안슬기 감독의 <다섯은 너무 많아>를 개봉했다. 하반기 독립장편 돌풍의 중심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한몸에 받은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청어람이 배급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1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으며, 하이퍼텍 나다에서 아직 상영 중이다. 베를린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도 진출한 상황이다.

이러한 각개약진에도 불구하고 독립장편의 극장 진입이나 저변 확대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독립장편은 아직도 아트플러스, 필름포럼, CGV인디영화관 정도를 제외하면 극장 진입에 근본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교차상영으로 대표되는 상영의 불안정성과 상업영화보다 극심한 자금조달의 어려움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관객 저변의 확보를 가로막고 있다. 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는 “개봉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독립장편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승했고 기대치도 높아졌다. 다만 상업영화와 독립 및 예술영화의 간극은 갈수록 심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을 비롯한 기존 수익창구는 위축되는데 새롭게 생겨난 윈도들도 상업성만을 중시하는 관점이 독립장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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